1월 가장 추운 계절에 너를 칼바람 부는 바닷가 훈련소로 보내놓고
이 엄만 수련회로 바쁘다는 핑계로 너를 잊고 살았구나.
현관에서 잠깐 포옹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었지?
그 날은 참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는 날이었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이 곳에서 자란 너는
당연히 받아야 할 부모님들의 사랑까지도 양보하고 자랐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음마를 배운게 아니라
네 키보다 더 큰 삽자루를 끌면서 걸음마를 익혔지.
너른 마당에 비가 오면 폴딱거리는 개구리를 쫒으며 자랐고
누런 황톳물이 흐르는 도랑에 네 작은 신발을 띄우며 뱃놀이를 했지.
뒷산에 아카시아꽃이 만발하면 언제나 집 옆에 놓여지던 벌통때문에
거의 날마다 연한 이마가 벌에 쏘여 퉁퉁 부은 얼굴로 울곤했지.
친구가 없는 외딴집에 살다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네 주변에 있던 모든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놀기를 좋아했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는 데려 와 잠까지 재우는 일을 즐겨했고.
주말마다 서너명씩은 꼭 달고 오던 일 기억나니?
통닭이며 피자를 시켜주고 만두국이나 떡볶이를 해 대느라
바빠도 보통 안 바쁜 이 엄마가 무지하게 바빴던 일 알기나 하는지......ㅎㅎ
일주일치 용돈은 친구들 간식이나 밥 사 주는 일에 다 써 버리던 너
엄마 욕심에는 좀 아껴쓰고 너를 위한 작은 준비를 해 주길 바랬거든.
옛말에 부모팔아 친구산다는 말도 있다던데 넌 부모를 판게 아니라
네 용돈으로 스스로 친구를 산 현실적인 아들이었구나.ㅎㅎㅎ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서클에 가담하지 않은 것도 어디야?
유치원서부터 배운 태권도니 유도, 합기도가 널 지켜준 셈인가?
어쨋든 무사히 대학에도 잘 들어가 줘서 고맙게 생각하는데
훈련이 고되다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무사히 기초훈련을 잘 마치고
김포 어느 부대에서 수색대 이병이 되어 군복무를 잘 하고 있다니 더 고맙다.
엄마가 널 잊어서 잊은게 아니라 일부러 기억하지 않고 산단다.
시간이 넉넉해서 자주 면회 갈 형편도 못되고 거리도 멀거니와
요즘 우리집 할머니들의 건강이 많이 걱정스러워 장거릴 삼가하고 있단다.
며칠 전에도 심장이 멈추기 직전까지 간 사건이 있었기에 더더욱 조심스럽구나.
엄마가 못 가더라도 섭섭하게 생각 안 할거지?
6월 세미나 준비로 이불빨래를 하느라 엄마 어깨가 몹시 힘들단다.
조물조물 안마를 잘도 해 주던 네 손길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그리운 요즘이란다.
가끔씩 들려 주는 네 목소리 정말 멋있어~~`ㅎㅎㅎㅎ
삽자루를 질질 끌며 기저귀에 넘치도록 오줌을 싸던 그 시절의 내 아들이 아닌거야.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최강의 해병대 이병인거지~
어딜가든 친화력이 좋은 편인 너를 엄마는 믿는다.
선임들한테 깍듯이 하고 후임들한테는 더 친절한 군인이길 바란다.
네 첫 휴가 때 엄만 맨발로 뛰어 나갈 까? 앞치마를 두르고 나갈까?
네가 근무하는 군 부대 안에도 봄은 왔겠지?
요즘 우리 집은 옥상의 엄마꽃들하고 감미로운 라일락이며 자잘한 꽃잔디에
우아한 자목련과 영산홍이 만발했고, 신비로운 붓꽃도 개화하기 시작했단다.
무늬둥굴레가 앙증스러운 하얀 꽃들을 조롱조롱 매 달고 있구나.
너의 첫 휴가 때는 어떤 꽃들이 피어있을지.....
휴가 나오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이야기 해 주렴.
엄마가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면 가능한 준비해 주마.
엄마표 밥상이면 뭐든 다 만족한다 해 주면 좋겠구나.ㅎㅎㅎ
아침 저녁 일교차가 심한 요즘이구나
감기 조심하고 넌 열에 약한데 특히 조심해라.
버티기에 들어가지말고 즉시 조치하도록 하고
언제나 널 위한 기도를 잊지 않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