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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 아들의 편지


BY 그대향기 2012-02-18

 

 

 

 

지난 달 16일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아들한테서 세 번째의 편지가 왔다.

아들이 입대하던 날에도 큰 행사가 있어서 같이 가 주지 못했던 엄마였다.

입대 하루 전 날 외갓집이 있는  경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푸짐한 대접까지 받았고

입대하던 날은 외삼촌과 사촌형 그리고 남편의 동기생들인 원사들의 환영까지 받으며

결코 쓸쓸하지 않은 입대를 했었다.

현역에 남아있는 남편의 동기생들까지 환영식을 해 줘서

외롭기는 커녕 오히려  거한 입대식이 된 셈이다.

남편의 10년 군 생활이 고스란히 박제 된 그 해병대 그 부대로 아들이 입대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조카가 휴대폰으로 찍어서 보내 준  부대 정문 앞에서의 짧은 동영상으로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날 따라 겨울비는 내렸고 우산을 쓰고 짧은 머리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던 아들

저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행사하느라 추우실건데 엄마아빠 건강만 잘 챙기시라던 아들

믿음직하고 건강한 대한 해병대가 될 것임을 약속하던 아들

3대째 해병대 가족의 명예를 위해서 훈련생활 잘 적응하겠다며 거수 경레로 필~~ 승~~을

외치고 끊어진 짧은 동영상 속의 아들

 

지금 우리집에 와 있는 외손녀를 어르다가도 외손녀의 이름 대신

막내 아들의 이름을 불러서 딸을 섭섭하게 만드는 이 엄마다.

위로 두 누나들보다 몸이 약했던 아들이라 어린 시절에는 걱정을 많이 했던 아들이었다.

열경기로 응급실에 실려갔었고, 뱀한테 물리는 사고에 유도와 태권도를 하면서 자주 겪었던 골절상,

중고등학생 때는 축구와 다른 운동까지를 너무 좋아해서 다리며 온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훌쩍 자라서 공식적인 성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편지 속 글들이 맘 약한 엄마였다면 눈물샘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저를 정신적으로 약하게 키우지 않았던 엄마가 감사하고

엄마아빠가 사랑받는 아이로 저를 행복하게  키워줘서 고맙다고 했다.

식사 시간마다 엄마가 해 주시던 집밥이 많이 그립긴 하지만 군대 밥도 안 남기고 잘 먹는다는 이야기

특등사수가 되지 못해서 아빠한테 조금 미안하지만 동기생들하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에

훈련복이 선배에 선배들이 입던거여서 좀 낡았지만 덜 낡은 걸로 지혜롭게 잘 골랐다는 이야기까지

꼭 딸들이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처럼 차분하게 가슴을 적시는 편지였다.

마치 안방 침대 내 옆에 나란히 누워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가만가만 하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지막 인사글에서는 훈련을 마치는 날

부모님들하고 같이 외출해서 점심 먹을 음식점까지 미리 알아 뒀다고 하는데서는

빵~터지고 말았다.ㅋㅋㅋㅋ

아마도 저 여자친구가 올 것을 감안해서 분위기 좋고 좀 비싼     음식점을 알아 둔 모양이다.

어제도 남편의 휴대폰으로 여자친구한테서 전화 가 온 모양이었다.

그날 같이 만나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첫번째 편지에 여자친구의 편지도 들어 있어서 내가 따로 부쳐주었다.

쿨하게 헤어질 것 처럼 이야기하고 가더니 보고싶다는 솔직한 내용이 곱게 담겨 있었다.

 

짜씩.....

겉봉투를 따로 해서 저 여친한테 직송하면 될 걸

안 보고 보내기가 얼마나 힘겨운지도 모르고...ㅎㅎ

사실 여친한테 보내는 편지를 다 읽어보고야 말았지만 ㅋㅋㅋㅋㅋ

내가 남편하고 연애하던 그 때 그 시절  내용하고는 많이 달랐다.

우린 무슨 철학자 흉내를 낸다고 어렵고 고상한 말들을  총집합해서 보낸 반면

아들의 연애편지는  경쾌하고 밝고 아주 투명했다.

군에 가면서 여친이 과퀸카라면서 선배들이 걱정된다고 했던 아들이다.

며느리감이 될지 말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아들이 예뻐하는 여친이니 나도 사랑스럽다.

 

군에 입대하던 날도, 입고 간 민간인 사복이 오던 날도, 첫 편지가 오던 날도

독한건지 사랑이 부족한건지 계모기질이 많다는  이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냥 반가워서 남편하고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나 설레긴 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약한 우리집 할머니께서 곁에 있다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서당을 보내면서 아들하고의 이별을 자주 경험했다.

방학이 다 끝날 무렵 데리러 갔을 때 그 어린 아들이 품에 안겨 반가움의 눈물을

꾹꾹 눌러 뒀다가 소리도 없이 많이도 흘렸었다.

그것도 단 한번으로 끝났고 두번 세번 해마다 이어지면서는 서로 싱글벙글 웃으며 헤어졌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도 기숙학교로 보냈고 대학도 멀리로 갔으니 이별이 일상적인 일이되고 말았다.

 

이제 열흘 정도만 더 있으면 아들의 훈련병 생활이 끝 마치는 날이다.

무엇보다도 다시 강추위가 이어져서 안스럽지만 잘 견디리라 믿는다.

인터넷으로 보내는 내 편지에도 격려와 응원의 글만 보냈다.

어느새 남자가 되어가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행사가 끝난 날 집에 있게 되면  어깨며 팔다리를 주물러 주던 아들의 약손이 없어 많이 서운하지만

아들은 지금 대한의 해병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니 참아야 하느니.ㅋㅋㅋ

아들이 남자가 된다는데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