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아사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엄살을 피우고 있을 즈음이면 영락없이 누군가 밥을
사겠다는 전화가 온다.
이상 한 일이다.
하느님이 듣고 계시나보다.
타고난 먹을 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서 어제 점심은 갈비를 얻어 먹었다.
갈비를 먹으면서 무우를 뽑으러 가자는 제안이 왔다.
하체가 튼튼하면 건강하다지만 나는 별로 건강하지도 못하면서 하체만 튼실하다.
쪼그리고 앉는 일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고로 밭에서 일을 해본 경험은 전혀 없다.
운전만 해주고 구경을 하리라 생각하며 따라 갔는데 흙속에서 하얀 몸둥어리를 내밀고 있는
무우가 너무 예뻐서 쑤윽 뽑기 시작했다.
고놈이 잘도 따라 나온다.
재미있다.
넙적다리 운운할 사이도 없이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무우 뽑기에 열중했다.
무우가 나를 닮아 동글동글하다.
이집 저집 무우를 잔뜩 차에 싣고 배달을 해주었다.
주공아파트에 들어서니 시장이 서 있었다.
더덕을 사고 있는 내게 잔치국수를 사주겠다고 한다.
시장에서 먹는 잔치국수도 맛있었다.
집에 와서 무우와 씨름을 하며 하룻밤 절구고 새벽부터 딤그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왜이리 욕심을 내었던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무청을 싱싱한 놈으로 골라서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멸치 넣고 된장 넣고 부글 부글 끓여먹어야지.
참 좋아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직도 다 지워지지 않은 기억 저편의 일들...
내친 김에 대청소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몸을 풀었다.
기온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냉수 물안마는 할만 하다.
어깨를 향해 집중사격을 했다.
곧 나을것 같은 예감이 든다.
더덕을 무치고 멸치를 볶고 오리고기를 구워서 저녁상을 혼자 받았다.
언젠가 며늘아이가 준 오리고기가 냉동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받는 진수성찬의 저녁상이다.
이런 아사도 있는가.
혼자 웃는다.
그래도 가끔은 아사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