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단풍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지만 찾아 나설 형편이 못되니 듣고만 만다.
언제쯤 여유롭게 자연의 변화에 구경꾼이 될수 있을까.
어께는 아직 완치는 아니지만 운전을 할수 있고 밤에 통증없이 잠을 잘수 있으니 큰 산을 하나 넘어온 듯하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또 얼마나 많은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동행이 없는 길을 혼자 넘어 설 기운은 있을지..
어느날 지쳐 쓰러지면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겠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수도 없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을 수도 없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불신의 시작은 어디쯤이었는지..
가을을 닮은 나이다.
곧 낙엽이 되어 거리에 떨어지고 말 그런 나이..
사람에 대한 불신은 누가 심어준 것일까.
이별에 대한 면역..
나는 그것을 배웠다.
만남 앞에서 항상 이별을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강한척..도도하게..
그렇게 떠나보낼 준비만 한다.
내가 등을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바라본 등에서 느꼈던 아픔이 이젠 면역성을 길러주었다.
등을 바라볼 자신이 생긴 셈이다.
그 쓸쓸함과 그 비참함..
그것이 힘이 될줄은 몰랐다.
어느 구석에서도 얻을 것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제는 오랫만에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강남 고급 음식점은 아들 장가를 보냈던 친구가 한턱 내는 자리였다.
오랫만의 포식..오랫만의 수다..오랫만의 폭소.,
이런 것을 그리워한 것이 분명하다.
열네명의 친구들이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고 시끄러웠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
충청도 노부부가 자리에 누워서 한 대화란다.
영감이 묻는다.
\"할껴?\"
\"혀어.\"
할머니의 대답.
\"워땠어?\"
할아버지가 다시 묻는다.
\"한겨?\"
할머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오산을 떠나온지가 이개월이 되었다.
내 영역을 벗어나서 남의 영역을 내것인양 살다보니 나도 일산인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도움을 청하기에 도움을 주기위해 머물고 있는 것에 불과하거늘 내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다음 주에는 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다시 내 것을 찾기위해서 하루 하루를 보낼 날들을 계획해 본다.
아무도 나와 동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현실이다.
실제상황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