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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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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병대


BY 그대향기 2011-09-25

 

 

 

지난 금요일에 남편의 해병대 입대 동기가 찾아왔었다.

선배와 후배 9명 해서 일개 소대병력이었다.

너무나 반갑고 또 반가워 더는 내 놓지 마세요 할 때까지

저녁 대접에 후식까지 해 드렸다.

남편이 군대를 제대한지도 벌써 20년이 후딱 지나갔는데

제대 후 딱 한번 밖에는 못 만나 본 동기생이었다.

서로의 위치에서 한창 바쁠 시기에 헤어졌다.

20대 초반에 군입대를 하고 그 지독하다는

해병대 지옥훈련과 군 생활을 동고동락했던 전우??

전시가 아니니 전우가 아닌가?

 

큰딸이 다섯살 둘째가 막 백일을 지나고 떠나 온 포항 해병대였다.

남편의 해병생활 10년만이다.

막내는 제대 후에 낳은 아들이었고.

얼룩무늬 해병대가 그렇게 멋져 보였던 철부지 경주 처녀

직업군인 하사관 월급이 얼마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저 사랑 하나만 있으면 세상 뭐든 다 이길 것 같았던 푸르른 우리들의 젊은 날

그리고 해병대 얼룩무늬.

 

하사관은 가난하다며 우리들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외사촌오빠

새둥지같이 가난하게 시작한 우리들의 신혼생활을 듣곤

그래도 사랑만은 넘치고도 남는다며 씁쓰레하게 웃곤 했다.

박력과 절도 빼고나면 남는게 없다는 해병대지만

싸나이 정열 또한 남달랐다.

동기생들간의 우정 또한 끈끈하다 못해 피로 맺은 혈맹같고.

요즘 해병대는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20 여년 전 우리가 포항 해병대에 있을 때는 그랬다.

 

퇴근 후에 동기생들 신혼집에 예고없이 들이 닥치기는 양반 축에 속하고

자정이 넘어서도 골목길에 군화소리 요란하다 싶으면 동기생들이 우르르르....

애기도 없던 신혼 새댁이었으니 야샤시~~잠옷을 입고 서방님을 기다리다가

왁자~하니 폭풍처럼 산적떼처럼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한 무리의 동기생들 때문에

허둥지둥~~

이불을 걷어낸다~ 훌러덩 잠옷을 벗는다~겉옷을 입는다~

부지불식간에 노점단속반이 들이 닥쳐도 이보다는 덜 바쁘겠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스럽게 난리 번개춤을 추고 맞이한 동기생들을

냉장고에 들어있던 비상식량까지 닥닥 긁어서 차려내고 나면

우리 둘은 일주일간은 쫄쫄...ㅎㅎㅎㅎ

 

그래도 그 시절은 그게 폐가 아니라 정이었고 동기생들간의 사랑나들이었다.

가난한 하사관 마누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내 집 살림같이 훤~히 알고들 있었다.

비밀스러움도 내숭도 별로 없었던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너무나 맑았던 우리들의 신혼.

그러다가 하나 둘씩 애기가 생기고 부부싸움도 잦아지고...

애기때문에 싸우고 잦은 회식비 때문에 싸우고 다른 문제로도 부딪히고.

우리가 제대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게중에는 이혼한 동기생들도 있다했다.

가깝게 지냈던 친동기같았던 동기생들의 아내들이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참 그 시절에는 무슨 회식이 그렇게나 잦고 푸짐했던지 원.

신참이 온다도 회식, 고참이 제대한다고 회식 ,전출간다고 회식회식 또 회식..........

월급날이면 줄줄이 뜯겨나가는 회식비 때문에 월급 봉투가 너덜거리도록 가난해졌다.

월급날에 다음 월급날까지 감당이 안돼 한숨이 저절로 나왔던 시절이었다.

부대 앞 동네는 다른 동네보다 물가가 많이 비쌌다.

 

그러구러 살다가 우린 제대를 했고 그 동기는 아직 현역이다.

정년을 얼마 안 남겨두고 있지만 군에 말뚝을 박았다던 그 동기와 같이 온 선배들이

오히려 우릴 부러워 했다.

일찍 제대하고 전원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말이다.

규격화된 군 생활의 나른함과 아파트문화의 단절감에서 느끼는 부족한 여유가

우리집에서는 없어뵌다며 알싸한 시골의 밤공기가 부럽고 확 트인 옥상의 시야가 부럽다고도 했다.

마침 미풍에서도 청아하게 울려 주던 풍경소리도 더 없이 고왔다.

그렇게 봐 주니 고맙긴한데 지난 20여년 동안 얼마나 고단했다고요~~

지금에사 이렇게 자리 잘 잡고(?) 꽃이며 집이 그럴듯하지만

어린 삼남매 데리고 깨지고 찢어지고 넘어져가며 고생도 무쟈게 했다우~~

 

경험도 없이 사업이랍시고 시작했다가 퇴직금 다 흩어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보증금없는 달셋방부터 오토바이에 어린 삼남매 업고 지고 달고

10여 km 떨어진 시골5일장을 봐 와서 일하는 아저씨들 밥해 주던 밥순이까지

다리에 난 종기가 덧나 열이 40도가 다 되도록 오르내려도 병원 한번 안가며 버티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에사 꽃이 보이고 좋은 화분이 보이지 그 땐 그저 피고지는구나...그렇게만 보고 살았었다.

취미?

그딴건 고상한 싸모님이나 하는 값비싼 여가선용쯤으로만 알고 살았다.

산에 들에 저절로 피고지는 공짜 꽃구경도 할만 했으니까.

 

현역동기생은 정년을 다 채우고 제대하면 연금이라도 있지만

우린 그때까지 부지런히 개미처럼 모으고 쌓고 절약을 해야한다.

남편은 요즘도 현역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해병대의 추억이 그리도 좋은지 ...ㅎㅎ

해이해진 군기강이 늘 걱정이라는 남편이지만

군대의 악습도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육해공 어느 군대에 가든지 아들도 곧 입대를 해야 한다.

해병입대를 원하는 아들이 남편은 그저 흐뭇하기만 한가보다.

솔직히 난 좀 그런데......

남편의 입대 동기생이 다녀 간 후 가난했지만 모든게 새롭던 신혼시절이 생각나

우린 둘 다 그 시절로 돌아가 풋풋함마져 맛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