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은 18년 전? 나에겐 세번째 중매의 결실이며
내가 한 말이 씨가 되어 결혼하게 된 지인의 결혼 기념일이다.
마침 그날은 회사의 중요한 일정이 있어 충남 공주에서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선물만 보냈지만 결혼은 중매쟁이의 ‘능력’이 아니라 신의 계획이 아닌가 신비롭던 기억이다.
친한 선배 하나가 덕수궁을 사이에 두고 나는 광화문, 선배는 서소문쪽에서 근무를 했다.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던 우리는 바쁜 일정이 없는 날이면 서소문 뒷골목에 있던
부대찌개 집을 자주 찾았다. 식사 후 덕수궁 뒷길과 영국문화원 근처를 걸으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가끔은 법원 벤치에 앉아 휴식하던 그때
간혹 선배의 직장동료들과 마주치면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나누게 되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편해진 사람이 있었다.
흰색 드레스 셔츠가 잘 어울리는 그는 부드럽고 교양있는 말씨와
친근하면서도 정중함을 잃지 않는 예의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저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행복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을 만큼
늘 한결 같던 그는
비서실에 근무하는 아가씨와 요란한 사내 연애를 하고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이상하게 퇴근 후 선배와 들른 바, 커피숍, 횟집… 어디서든 자주 부딪치던 그,
혹여 총각이었으면 ‘이게 인연인가?’착각 했을 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가까운 거리라는 이유치고는 우연이 너무 잦던 어느 날,
증권사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그와 우리는 합석을 하게 되었고
첫 만남에서도 대화가 잘 통했다.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음 헤어진 이후, 퇴근 길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하고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직장이냐 창업이냐 진로를 탐색해 보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아내를 동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은 한 번도 아내와 참석하지 않아
내심 궁금하기도 했지만, 물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대기업 비서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지적인 외모와 똑똑한 여자라는 것이 선배의 귀뜸이었다.
그러던 언젠가부터 선배와 그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내가 나타나면 입을 다물었다.
무슨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일을
굳이 묻기도 껄끄러워 모른척 했다.
그러나 혹시 건강상 심각한 문제이거나 여자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넌지시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선배가 그 사람이 이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금시초문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즈음 얼굴도 초췌해졌고
이틀씩 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도 떠올랐다.
다시 한번 잘 해보려고 해도 부인이 친정으로 가버리고 없어 어협다고도 했다.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커피숍으로 그가 들어섰다. 더운 날도 아닌데
이마와 얼굴에 비오 듯 땀을 쏟는 그는 하루종일 굶은 듯 헬쓱해 져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미 결정을 하시고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숨기고 싶었던 일을 들킨 그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혼은 막아보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부 사이는 본인들만 아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날이 법원으로 가는 날이라며
그간 마음 고생이 떠오르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남자도 그렇게 서럽게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자의 눈물 앞에서
외간 여자가 할 수 있는 위로가 참으로 한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잡아 줄 수도, 등을 토닥거려 줄 수도 없는....
적절한 몇 마디조차 떠오르지 않아 민망하고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분과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나 봅니다. 또 좋은 인연이 있을 거에요. 저라도 찾아볼 테니 힘내세요.”
곧 이혼하러 법원으로 가야 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과연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이며
힘을 낸들 또 이혼 도장을 찍지 않고 해결 될 다른 방도가 나올 리 없건만
그저 도장 찍고 돌아서는 길에 설렁탕 한 그릇을 해치울 수 있는 일상으로
재빨리 회귀할 수 있도록 바랄 뿐이었다.
말을 하고도 부질없고 한심하다는 생각에 잠시 패닉 상태에 빠진 나는
허공에 겉도는 한마디를 겨우 한 다음, 얼음 냉수 한 잔을 시켜주는 게 전부였다.
할 말이 없기는 선배도 마찬가지인 듯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구청에 서류접수까지 마쳤다는 그와 사흘 만에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오히려 이혼 직전보다 한결 편안해 진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밝아졌다.
그를 위로하기 위한 모임이었던 만큼 모두들 한 톤이 높아졌고
잠시라도 외로울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에게 온통 술잔을 몰아주고 있었다.
“힘내! 건배”
“친구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연이어 돌아 오는 술을 몽땅 받아 마신 남자가 약간 취한 듯 비틀거리며
갑자기 의자를 들고 내 앞에 와서 앉았다. 사람들도 예상치 못한 그의 돌발 행동에 놀라며
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00씨! 저를 책임 자세요.”
“에? 에~~? “
“책임 지시라구요.”
“무슨 말이에요??”
기절할 뻔 했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책임 운운할
일은 아니다. 그가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긴 선배와 모임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 어떻게 뭘 책임지라는 말이죠?”
“이혼하러 가던 날, 사랑엔 사랑이 약이라면서 새로운 사랑이 생기면 상처는 금세 잊혀 진다고….
내가 못 찾으면 …… 찾아 준다고 약속 했잖아요.”
난 또,….
취중진담처럼 중매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그가 힘들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이혼이 흠이 되는 시대도 아닌데 어울리는 인연을 ‘꼭 찾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와~~~~ 건배!!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건배!”
누굴 위한 축배인지 ….
이혼으로 고통스러울 그의 아픔을 위로하려던 모임이 그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로 바뀌어
이른 축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약속을 5개월 만에 지켰다.
그것도 예쁘고 현명한 전문직 아가씨와 행복한 결혼이었다. 1년만에 예쁜 딸도 태어났다.
물론 다섯 번의 맞선을 주선하며 나도 한계를 느낄 즈음
상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이미 부부의 인연이 예정되어 있던 신비한 힘에 의해서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너무 길어서 진짜 중매에서부터 결혼까지 이야기는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