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무실 병에 걸려있다
세상에 신경 쓸 아무일도 없이 그저 사무실에서
내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누가 그러지 말라는 사람은 없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것도 사업이랍시고 하고 있는 사람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700세대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단지다
하지만 사무실은 변두리에 위치해 그야말로 완전 전원 생활이다
육류를 하지 않는 남편과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선
별 수고로움 없이 찬거리들이 널려 있다
직접 또는 큰 창문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고
미루나무의 속살거림과 참새들의 지저귐 금새 명화들을 그렸다
지워내는 하늘의 변화무쌍함에 안타까워 하며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는 하루가 너무 짧어 아쉽기만 하다
사무실 마당 한 켠에 까만콩이 되도록 일구어 만들어 놓은
꽃밭은 이제 제법 어우러져 가꾸지 않아도 피고지고 피고지는
꽃들이 날 행복하게 하고
구석구석 부추며 상추며 고추며 파등을 심어 아무런 약도
치지않고 길러내는 푸성귀는 두 배 세 배의 맛으로 날 행복하게 한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글에 등장하는 사무실을 끼고 흐르는 개울이
글 속에 등장히는 것만 못 해 실망스러웠다고도 했지만
이제 시린 소리를 제법내며 흐르는 맑디맑은 그 개울은 나에겐
감춰둔 어떤 보물보다도 더 소중한 최고의 보물이다
코스모스 하늘거리고
붉은 고추잠자리 군무를 추어대고
봄이면 풀 숲에 야생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오는 곳
우렁이가 붉은 알들을 꽃처럼 풀대공에 슬어 놓는 곳
작고 터질듯 야무진 고마리 꽃이 하양,분홍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곳
때로는 물속을 거슬러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들도 보이고
개구리를 잡는 쥐를 잡는 모습들을 가만히 평상에 앉아 지켜보며
그래 이것이 바로 내셔널지오그레픽이야
한 편의 다큐를 만들어도 손색없을 광경들을 나 혼자서 바쁜
눈길로 쫒으며
안타까워 한다 개울을 따라 심어둔 키 큰 해바라기가
그와 키재기 하는 코스모스가 구름 모자를 바쁘게 바꿔쓰며
가을 단장이 바쁘다 너무 갑작스레 밀치고 들어와 자리 잡아버린 가을
은행잎이 노란 빛으로 살작 물들어간다
이제 곧 저 숲 속 새의 지저귐이 날카로워 질 것이고
저 곱고 부드러운 코스모스도 날카로운 씨방으로 바뀔것이다
저 우듬지 까치집도 헐벗을 것이고
잎들을 모두 떨궈낸 저 미루나무도 시린 계절을 맞을 것이다
내 가슴도 그렇다
저 보랏빛 곱디고운 쑥부쟁이의 전설을 알아서 일까
아니면 눈에도 가슴에도 오롯이 담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까
오늘도 저 여리고 시린 보랏빛 쑥부쟁이가 날 울린다
다음생에는 나도 저 쑥부쟁이로 태어나 저 언덕 어디쯤에서
하늘거리면 지나가던 어떤이 날 보고 지금 나처럼
애달퍼 해 줄까
가을탓이다 가을 탓이다 가을 탓이다
내가 외로운 것은 가끔은 저 길건너 당귀 농사 짓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할아버지,가끔 농사 지으시다 허리 펴시고
하늘도 한번 보세요 가을은 구름의 계절이고요 그 풍요로운
구름바다에서 펼쳐지는 저녁노을은 정말 환상이거든요\"
라든지~~~~~
\"할아버지 저 쑥부쟁이 정말 예쁘지요?\"
라든지~~~~~
누군가 묻지 않았음에도
나 잘 있어요
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