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생태탕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다른 식당보다 천 원이 더 비싼데도 점심시간에는 서둘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서 못먹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가끔식 가서 먹곤 하는데 도대체 육수의 비밀이 뭘까 궁금할 정도로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어느날 나는 식당표 생태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명색이 직업이 전업주부인데 생태탕 하나를 맛있게 못 끓여서 식당에 가서 사먹는다는 건 전업주부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이다.
오전에 운동을 끝내고 대형 할인마트 지하 식품매장에 갔더니 마침 싱싱한 생태가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동태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이지만 식당에서 사먹는 것 보다는 싸기 때문에 큼직한 놈으로 한 마리 사고 바지락, 새우,미더덕도 넉넉히 샀다.
저녁식사 준비할 때가 되어 냄비에 멸치 다시마 무를 넣어서 육수를 끓이고 물이 끓어오르자 깨끗하게 손질해둔 생태와 해물들을 냄비 가득 넣고 각종 양념들을 넣어 보글보글 정성을 다해 끓였다.
마지막에 송송 썰어둔 대파를 넣고 좀 더 끓인 뒤에 간을 맞추기 위해 조심스레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그런데 어째 내가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간도 약간 싱겁기도 했지만 이건 생태탕도 아니고 해물탕도 아닌 어정쩡한 맛이었다.
간이 안 맞아서 그런가 싶어 소금을 약간 더 넣고 다시 맛을 보았지만 맛은 변함이 없었다.
기운이 쭉 빠진 나는 가족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은 남편 앞에 두툼한 알이 차 있는 생태 한토막과 해물을 사발에 담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가득 부어 대접하고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남편은 \"와, 맛있어 보이는데.\"하며 한 숟갈 떠서 먹더니 그 뒤로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때? 별로 맛 없어?\" 하고 묻자 남편은 \"아니, 먹을만 해 맛있어\"하며 무표정하게 다른 반찬들을 집어가며 식사를 마쳤다.
워낙 식성이 좋은 남편은 정말로 못 먹을 음식이 아니면 웬만하면 다 맛있다고 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시식평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이었다.
아이들에게도 한 그릇씩 떠주자 생태살이랑 해물들만 건져먹고 국물은 절반 이상 남겨놓았다.
모처럼 마음 먹고 정성들여 끓인건데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한 나는 그냥 스스로를 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감히 내가 어떻게 식당표 생태탕을 흉내내겠어. 그러니까 전문가가 따로 있는거지.\'
그 뒤로 한 동안 생태탕을 멀리 하다가 어느날 마트에 갔더니 생태를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다.
지난 날의 악몽이 생각나서 사지 말아야지 하다가 싸면 무조건 사둬야 한다는 전업주부의 직업의식이 발동을 하여 또 다시 한마리를 사고 말았다.
이 번에는 해물들은 사지 않았다. 어차피 같이 넣어서 끓여봐야 내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없을테니까. 멸치 다시마 육수도 안 만들고 그냥 맹물에 무와 생태와 기본 양념만 넣어서 끓였다.(물론 마지막에 대파는 필수)
국물이 다 끓은 후에 간을 맞추려고 맛을 보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바라던 생태탕 맛이었다. 물론 식당에서 파는 그런 맛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굳이 식당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사먹지 않아도 집에서 끓여먹어도 되겠다 하는 정도였다.
남편과 아이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야, 식당에서 사먹는 것처럼 맛있다.\"
\"엄마, 다음에도 이렇게 끓여줘.\"
우째 이런 일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여기에 적합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요리란게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 왈 \"음식은 간만 맞으면 되는것이여.\"
이 말씀이 진리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유쾌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