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일산에서 보냈다.
음식을 만들면서 예전의 추석 모양세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나물거리를 잘 다듬어주던 남자..
뒷설거지를 깨끗히 해주던 남자..
그 남자가 곳곳에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음식을 만들다보니 그런 망상이 떠올랐나보다.
언니는 흰 목장갑을 끼고 이삿짐 싸기에 매일처럼 바쁘다.
고로 부엌은 내 차지였다.
명절이 쓸쓸할것 같아서 고기랑 과일을 샀노라고 갖다주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일산에 있을 줄 알았어. 내 짐작이 맞았군.\"
그런 전화가 왔었다.
선물을 놓고 가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내 웃음에 그도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고마워요.\"
\"그래.\"
고마웠지만 그의 자상함에 조금 당황했다.
언니의 SOS에 이주일간 일산에 머물렀다.
나는 주방장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음식을 잘 잡수시니 보람은 있었다.
추석 연휴 동안 며늘아이의 사랑니 진통이 끊이질 않아서 내게 SOS가 왔다.
\"광화문으로 나와라. 내 친구네 칫과에 가자.\"
친구 남편은 친절했다.
무료라는 말에 당황하긴 했지만
\"돈 받으면 나 한테 혼나지\'
하는 친구의 말에 웃었다.
발치를 하고 아파하는 며늘아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수지로 차를 몰았다.
윤지가 나를 반가워한다.
\"어쩌다가 무릎이 까졌어?\"
\"할머니를 빨리 보려고 막 뛰다가 넘어졌어.\"
\"아팠겠다.\"
\"울었어.\"
\"저런..천천히 오지.\"
아들은 내게 수고 했다고 말한다.
\"연휴동안 얼마나 아파하는지 정말 난감했어요. 엄마 고마워.\"
약을 먹을수 없는 임산부라는것이 문제였다.
저녁 식탁은 아들이 고기를 양념해서 구워주었다.
아들은 여전히 음식 만드는 취미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맛있지?\"
\"간장은 조금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지요.\"
마지막 남은 김치 한쪽을 잘라서 내게 주면서 아들이 말한다.
\"엄마 김치는 예술이야. 이제 다 먹었어.\"
\"아범이 김치 떨어졌다고 어머니께 전화하라고 했어요.\"
며늘아이의 말이다.
\"또 담그어줄게.\"
마트에 나간다는아이들에게 내 차 키이를 주면서 말했다.
\"엄마 차 가지고 나가서 기름 좀 넣고 오렴.\"
\"그럴게요.\"
기름 값을 김치값으로 계산하면 되는것이다.
약아지는 나를 본다.
아들네에서 일박을 하고 오산으로 돌아왔다.
빨리 다시 오라는 언니의 전화가 신경이 쓰였지만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었다.
집을 버리고 떠돌아 다니는 내게 방랑자라고 놀리던 며늘아이의 말이 생각이 났다.
글은 언제 쓸거냐고 퉁방을 주는 친구의 말도 귓가에 맴돌았다.
올해 안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오산을 떠날 차비를 한다.
나는 누구에게 SOS를 칠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