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게 있다. 천성이라고 해도 될 채질이란게 있다. 예를 들어 휴식을 취할때 어떤 사람은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춤을 춰야 스트래스가 풀리는 사람이 있고 산사와 같이 조용한 곳에 쉬어야 되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휴식메커니즘은 전혀 다르다. 서로 바꾸어 휴식을 취한다고 하면 도리어 피곤이 쌓일 것이다. 또 사람을 만나면 기운을 얻는 사람이 있고 사람과 떨어져야 기운을 얻는 사람이 있다.서로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보통 다름을 인정하고 타협하면 별 불편함이 없는데 특정인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과도하게 권유하는 경우에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로운것을 떠나서 생지옥 같을 것이다. 분명 취향의 차이이지 정의 불의 잘한일, 잘못한일은 아니다.
나이가 들거나 직위가 높아지면 편한일만 찾게 되는 습관이 있다. 혹은 자기 아래 사람에 대해 나는 너보다 힘들었다 하면서 훈계아닌 훈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고생했으니 누려도 된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다른이의 필요와 의견에 둔감해 진다.
나도 편하고 우리도 편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는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원은 늘 부족하고 원하는 수요는 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군가 희생이 필요 할때가 있다. 내가 좀 들편해도 내가 희생하면 다수가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보통 직위가 높은 꼰대들 중에는 오직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종종 보인다. 나도 편하고 우리가 같이 편할 수 있는 상황인데 고약한 꼰대들은 \"어린놈들은 좀 고생해도 돼\" 하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또 자기가 좀 불편하면 모두가 편해 질 수도 있는데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또는 모두다 불편한 상황인데도 모두에게 불편을 주면서 자신만 편해지려 한다. 한사람 때문에 모두가 피곤해지는 상황이나 그런데 본인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알아도 별 신경쓰지 않는다.
진정 존경받는 어른이나 리더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편해질 순위를 최하이로 두는 것이다.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다. 거기서 나아가 자신의 이득을 제일 마지막에 두는 것이다.
편함을 쫒다보면 존경은 커녕 민패만 끼칠 뿐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 존경을 얻을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꼰대는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자세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