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 마을 해남에서 서울까지.
무려 19박 20일간의 대장정을 다 소화 해 낸 둘째.
발바닥은 다 헤져 너덜거리고
몸무게는 무려 5kg 이나 줄어들었단다.
35도가 넘나드는 한 여름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38km나 걸어서
도착한 서울이 그렇게도 시원하다는 둘째.
첫날 20여 km를 걸으면서 해 낼까 의심스러웠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완주하고 돌아가겠다며 다부진 목소리를 날리던 둘째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좋아하는 책이나 읽으면서 이 여름을 보내도 되련만
굳이 고생을 찾아 나섰던 둘째.
자신의 인내심도 키우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장식하고프다던 둘째는
국토대장정을 시작하기 전에 창녕 집에서 이것 저것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갔다.
최대한 천연소재로 된 편안한 옷이며
쿨 팔토시에 챙이 넓은 밀짚모자며 편안한 런닝화 두켤레까지.
발의 물집이 생기고 난 다음에 바를 파우더며 무릎용 압박붕대
비상약 서너가지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면서
참 부러웠던 나였다.
얼마나 좋았을까....
싱싱한 젊음을 무기로 그 먼 거리를 오로지 두 다리의 두 발로 밟으면서
내 나라 내 산하를 누비며 터뜨렸을 그 맑은 웃음이며 땀방울들.....
어영부영 놀면서 실업자처럼 흐물거리며 보내는 무의미한 여름 방학이 아니라
내가 사는 나라를 내 두 발로 밟아볼 겸
국토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19박 20일 동안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사람을 알아가는 인생공부도 하는 그 기간 동안에 얼마나 의미가 좋을지....
기쁨도 함께 괴로움도 함께 즐거움도 함께 하면서
캠퍼스 내에서만 알아가던 친구들의 또 다른 모습도 보는 중요한 일정이었을 것 같다.
딸 아이였어도 늘 씩씩한 둘째는 혼자서 뭘 잘 결정하고 실천에도 잘 옮기는 편이다.
오히려 막내 아들이 더 딸스러울 정도이다.
완주하고 찍어 보낸 완주증이며 다 헤진 발바닥 사진을 보고 가슴이 찡..했었다.
여자애 발바닥이 이렇게 다 헤져서는...ㅉㅉㅉㅉㅉ
그래도 즐겁게 전화해 주던 둘째가 믿음직하다.
세상 어디 내 놓아도 제 한 몫은 하지 싶고.
세상이 어렵고 고달플수록 스스로를 다독여야하겠지만
인내심 테스트에서는 일단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도중에 탈락한 애들도 상당수가 된다고 들었다.
마음은 완주하고 싶었겠지만 몸이 안 따라준 탓이리라.
탈수에다가 어지름증까지 동반하고 다리가 다 풀어지도록 걸었다는데......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대학생들의 국토대장정을 볼 때 마다 대단한 학생들이다 싶었는데
정작 둘째가 하게 될 줄이야....
내일 모레면 집으로 돌아 온다고 했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오겠지?
더 까만 얼굴로??ㅎㅎㅎㅎ
둘째는 일부러 선탠을 한 사람같게 까무잡잡한 얼굴색이다.
우리집에서 남편 다음으로 까맣다.
남편이야 워낙에 맨 얼굴에 간단한 모자조차도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렇다치더라도
둘째는 애기때도 까무잡잡한 피부였다.
특별히 잔병치레도 안했다.
아주 건강한 신체조건을 선물처럼 받고 태어난 셈이다.
어릴 적에 집에서 날카로운 쇠붙이에 베여서 무릎부분에 십여센티미터나
쩌억....벌어진 사고가 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하고 여러 바늘이나 꿰매었고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무릎부분이라 접혔다 폈다 하면서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병원에 가서 재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끝까지 안 가겠다고 버티며 그냥 빨간약만 발라 달라던 둘째.
벌어진 무릎에서 진물이 나고 피고름이 나와도 끝까지 병원을 거부하더니
그냥 아물었고 그 자리에는 보기에도 험한 흉터가 굵은 지렁이처럼 생겼다.
그래도 안 아프다고 호호거리며 잘 놀던 둘째였다.
나중에 부자되면 제 손으로 성형을 하겠단다.ㅎㅎㅎ
해남에서 올라 오는 도중에 있던 대학을 여럿 둘러 보고 잠도 자게 되었더라는 이야기.
같은 대학생들이라 마음이 푸근했을 것 같다.
국토대장정을 끝내고 몸도 마음도 다 지쳤을 둘째가 돌아온다.
막내도 알바를 끝내고 돌아 올 예정이고.
둘 다 좋아하는 고기를 좀 구워 주고 냉면도 말아줘야겠다.
그 동안 전화로 잠깐씩만 들었던 에피소드로는 감질났으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들어야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착각이 들 정도로 세세히 들어야지~~ㅋㅋㅋ
엄마가 묻는대로 조잘조잘 재잘재잘 재미나게 얘기 해 주는 입담 좋은 둘째가 기다려진다.
나도 이번 여름 휴가를 남편하고 지리산 올레길이나 걸어볼까?
느긋하게 산림욕하는 기분으로.
오로지 쉼만 생각하며 느린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