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옛날을 추억하며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웃음이 나온다.
하나.
간혹 비가 내리는 날엔 그 사람이 생각난다.
결혼 전에 그사람을 너무 좋아했는데
표현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만
삭였다. 눈치를 보니 그사람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어느날,그사람이 머뭇거리며 쪽지를 건네주었다.
시간을 내서 나하고 차한잔을 했으면 한다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답장을 보냈는데
금방 \'좋다구나\'하고 만나면 헤프달까봐
지금부터 비가오는 날에만 어디어디에서 만나자고 했다.
왜 그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6월이기 때문에 곧 장마가 지리라고 생각되었고,
계속 비가올거니 매일 만날수 있겠지 싶었다.
아~. 그런데 그해는 가뭄이 들어 비는 내릴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사람은 내가 자기를 거절하는줄알고
내주위에서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는 내 자존심때문에 결국 그사람과 헤어졌고
나중에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예쁜 마눌과 병아리같은 자식낳아
알콩달콩 잘 산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비가 오면 옛날 그일이 가끔씩 생각나서
혼자 웃어본다.
둘-
고등학교때 첫 입맞춤을 했다.
내가 고3이었고 실험(?)상대는 고1 까까머리
귀여운 얼굴을 한 남학생이었다.
서클 2년 후배 이지만 동생이 없던 나는
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는 그애를
단순히 동생으로 좋아했고, 그애도 친누나처럼
나를 좋아해서 서로 방향이 다르지만
서클활동을 마치고 늦어지면 보디가드를
자청하며 우리집 대문앞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당시에 \'박계형\'의 청춘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는 \'키스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궁금도
하였지만 감히 누구와 해본다는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졸업을 며칠 앞둔 추운겨울이지 아마.
졸업생들을 위한 서클의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애는 또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다며 따라나섰다.속에서 엉큼함이
슬슬 꿈틀 거렸다.
이제 졸업을 하면 그 서클에는 나가지 않을것이고
그애와도 만날일도 없을것이다.
우리집 근처 으슥한곳에 이르러 주위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나서
그애더러 입다물고
눈을 꼭 감고 있으라 했고,
누나의 엄명에 착한 그 애는 시키는대로
차려자세로 눈을 감고 서있었다.
소설속의 여자주인공 흉내를 내며
나는 내 입을 그애의 입술에 살며시 갖다대었다.
그런데 소설에서처럼 감미로운 기분은 들지 않고
차갑다는 느낌외는 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계속 눈을 감고 서있는 그애를 등뒤로 \'잘가\'하고는
냅다 우리집으로 뛰어 들어왔고
며칠뒤에 뜻밖에 내 졸업식날 꽃다발을 안고 온 그애를
나는 천연덕 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볼이 발그레 상기된채 내옆에 다가서는 그애를
내친구들이 귀엽다고 되려 나보다 더 좋아하며
손잡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고 활짝 웃는 여학생들 사이에
금단추가 달린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그애는
해맑은 웃음을 띈채 내 앨범속에 몇장이나 들어있다.
그 애가...
20년이 흐른 후, 문화센타 사진반 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 그 까까머리 학생이 잘 생긴 중년으로,
사진작가로,
전문대학 사진학과 강사로,
주부대상으로 사진반 샘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
아지매로 변신한 내 모습에 실망했을 것 같아
사진반에 나갈때마다 거울앞에서 한 시간을 넘게 허비했다.
제 아무리 꾸며봤자 샘한테 애교부리는 미씨족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처량함에
항상 구석에 앉아 멍하니 윤기가 흐르는 그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ㅋㅋㅋ
야외촬영실습시간에 가끔씩
\"수련 아지매 앞에 나와서 모델 하셔\"
내 어깨를 잡고 자세를 고쳐주면서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못하게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누나도 늙는구나\"
\"짜슥\"
그 애는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시간강사에서 전임으로,조교수에서 정교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