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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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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푼수다.


BY ^*콜라*^ 2011-07-19

 

엄마를 간호하며 요양원에서 지내던 지난 겨울

난소암, 위암, 간암 등으로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서 투병 중인 젊은 언니들이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위인 언니들은

밝은 얼굴과 쾌활한 성격에

환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등산객처럼 보였다.

 

매일 두 번씩 산행을 하며 

하하호호 밝게 살아가는 언니들을 보면

암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분명 오진일거야...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방을 사용한 언니와 내가 나란히 있으면

밤새 엄마 소변 때문에 시간마다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에

세수도 제때 못한 채 사는 내가 더 환자 행색이었다.

 

어느 날 언니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자들의 관계는 아무리 친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존재한다.

언니들은 내가 건강한 것, 밝은 성격이 좋으면서도

가끔 내 단점을 꼬집으며 기를 죽이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막내인 나의 신체구조 가운데 가장 아킬레스 건은 

오리궁댕이다. 

 

흑인 여자들처럼 허리께 올라 붙어서

한국 여자들에게 흔하지 않은 체형이지만 

나는 이 오리궁댕이가 사춘기시절 가장 핸디캡을 느꼈던 부분이다.

 

하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은

하나쯤 장점 삼을 꺼리도 주셨다. 

 

남자들은 섹시하다나? 어쩐다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를 이뻐하고 좋은 의미로

점점 불어나는 몸무게에 대해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는 건 알지만 

엉덩이 살 좀 빼라

그것도 몇 번이나 하는 말에 몹시 자존심 상한 나는

의기소침해 있던 중 마침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아닌 게 아닌데 …… 언니들이랑 다퉜어?

-아니 그건 아니고 민자 언니가 나 엉덩이 살 좀 빼라잖아

-? 그 엉덩이에 반해서 남편이 결혼했다고 말해. 1g이라도 빠져서 돌아오면

이혼당한다고.

 

나는 푼수다.

홧김에 그 말을 대 놓고 언니한테 바로 진상해 올렸다.

 

-언니! 우리 남편이. …… 어쩌구 저쩌구.

 

 

푼수!! 둘이 똑 같다 똑 같애. 달리 부부겠냐 지눈에 안경이지.. 등등

복잡한 눈빛으로 째려 보던 언니,

 

-그래, 누가 말리겠니? 니 실랑이 좋아 죽겠다는데..

 

조금 전 기분도 깜빡 잊고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엉덩이 큰 게 뭐???

돈을 달랬어. 밥을 뺏어 먹었어

괜히 미운 구석이 없으니까 질투나가지구 말야

 

궁시렁대며 다음부터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외롭고 힘든 내게 언니들은 형제보다 더 힘이 되어 주었다.

 

엄마와 밤새 화장실 다니느라 깊은 잠 못 자게 해도

수면 안대를 쓰면서도 단 한번 군소리 하지 않았고

용인 집에 돌아와 있을 때도

자기도 항암치료 중이면서 세 번이나 찾아 왔었다.

 

인연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엮어진다.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오늘 문득 그 언니의 항암결과가 궁금해져서

한국 시간을 바라보며 통화 가능한 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가만히 메시지를 보내본다. 

 

언니.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엄마와 내게 힘이 되어 줘서 고마워

나도 누군가에게 언니처럼 힘이 되어 줄게.

건강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