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가 고팠다.
실컷 수다를 떨다 보니 저녁 아홉시가 되어 있었다.
강남구청역에서 칠호선을 타고 일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가산 디지털 단지역에서 내렸다.
다행히 천안가는 급행 열차를 만날수 있었다.
경로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묵주신공을 드렸다.
집에서는 잘 하지 않는 묵주를 왜 나오면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내 옆자리에서 할아버지가 내게 묻는다.
할아버지는 칠십쯤 되어 보였다.
얼핏 보기에 내 전남편과 닮은것 같았다.
\"다음이 수원이라는데 정말인가요?\"
\"네.\"
\"난 성균관대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양이 금방 지났는데 다음이 수원이라는게 이상하잖아요.\"
\'급행이라 그래요. 잘못 타셨네요. 수원에서 내리셔서 반대편으로 가셔서 완행으로 타셔야 해요.\"
당황한 할아버지는 어쩔줄을 모르신다.
\"일곱정거나 그냥 지나쳤단 말인가요?\"
\"급행은 그래요.\"
\"내가 술을 한잔 해서 더 정신이 없어요.\"
\"그러시군요.\"
얼굴이 붉으레한 할아버지는 술을 조금 마신것 같이 보였다.
내 전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술에 취해 버스를 잘 못내려서 길을 잃고 길에서 넘어지기까지 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난 여기가 어딘지 몰라.\"
하는 전화를 받고 아들과 차를 가지고 찾아다니다가 흙투성이의 그를 발견했을때 마치 엄마를 만난것처럼
반가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줄 알았어? 어떻게 알았지?\"
그날의 그의 모습은 헤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어쩌면 이 할아버지처럼 술을 먹고 지하철을 잘못 타고 다니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자
혼자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렉서스에서 BMW로 바꾸었다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내가 우스꽝스럽다.
윤지가 좋아하는 새우튀김을 일류 일식집에서 사서 가지고 오는 할아버지라는데
괜한 걱정을 내가 한다.
수원역에서 내리는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웠다.
\"조심해서 가세요. 에스카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셔서 출구로 나가시지 말고 반대편에서 애스카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셔야 해요. 출구로 나가시면 안돼요.\"
\"내가 좀 헤맬것 같아요.\"
따라 내려서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그 할아버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내리는 젊은이에게 부탁을 했다.
\"저 할아버지가 반대쪽 지하철을 타셔야 하는데 좀 도와 드리세요.\"
내가 수다가 무척 고프긴 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산역에서 내리니 잘 만나지 못했던 우리집 가는 버스가 서 있었다.
오늘은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되겠구나..
반가운 마음에 올라타니 운전사 아저씨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집까지 가지 어디로 가겠느냐고..
버스 정류장 이름따위를 내가 알게 뭐냐고..
종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