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부부 싸움은 칼로 물배기라고 한다.
정말 아무런 흔적도 상처도 없을까?
만약
칼이 너무 날카롭거나
칼 자루를 쥔 손에 너무 강한 힘이 들어가 있거나
무딘 칼이라도 반복해서 내려친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담긴 그릇이 반 토막 날 수도 있고
그릇 바닥에 칼 자욱이 남을 수도 있고
그릇의 물이 흔들리며 쏟아질 수도 있다.
물리적인 파손없이 기술적으로 물만 배고 말 지라도
자주 내려친다면 칼에서 나온 쇠에 물이 산화되어
수질이 변할 수도 있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정말 글처럼 남편과 그렇게 살아요?”
“남편을 많이 좋아하나봐요.”
내 대답은 하나다.
“그 놈이나 저 놈이나 살아보면 다 같아유~”
처녀적부터 20년 지기 후배조차 최근에 조심스럽게 미안하다며 말했다.
“언니… 나는 형부가 언니를 즐겁게 해준다고 할 때마다 사실은 안 믿어졌어.
늘 언니가 형부를 훨씬 더 좋아하는 걸로 보였거든..”
그런데?
“요즘 가까이서 지내보니까 형부가 더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오래 묵은(?) 신부를 그 남편이 사랑한다면 얼마나 약빨이 남아있을 것이며
닭살 스러워 봤자 닭이지 삶은 계란 흰자처럼 보드라울 수는 없다는 걸
싱글인 후배가 어찌 알소냐.
후배가 말한 닭살스러움은 남편의 멘트를 말한다. 사실 유머도 뭣도 아무 것도 아니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조용한 사람이, 한 번씩 던지는 말이 보통 남편들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과
조금 다르다보니, 듣는 사람들이 ‘빵’ 터지듯 나도 그래서 웃는 것 뿐이다.
볼이 미어지도록 밥알을 물고 뽀뽀를 해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 남자 죽으면 따라 죽어 버리고 싶다는 순애보의 주인공을 그려 본 적도 있다.
이 다음에 태어나서 그의 부인이 아니면 그의 애견으로라도
인연이 닿길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로 싸우고 나서 위자료 나눌 시간조차 아까워서
‘당장’ 이혼하고 싶은 때가 한 두번일까.
부부 누구나 겪는 일상사를 나도 겪으며 산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내치는 쌀쌀한 한 마디에 상처받아
정나미가 떨어질 때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남의 남편은 안그런데 꼭 내 남편만
그런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래서 겉 이미지만 보고 사람들은 \'저런 남편이랑 살면 싸울 일이 없지 않냐\'고
부부싸움의 이유도 묻지 않고 원인을 나에게 고정시키고 듣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픈 경상도 사투리가 있다.
“델 꼬 살아 보소!”
중요한 건, 결국 후배가 본 건 우리 남편의 전부가 아니라,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이다.
말 몇 마디에 \'전부\'를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부부 사이의 말 한마디는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만 냥 빚을 갚고
보너스로 오백냥을 더 갚는 가치라고 해도 좋겠다.
특별히 싸울 일도 아닌데
무심코 던진 배우자의 말 한 마디가 불씨가 되어
작은 다툼이 쌓여 화산처럼 폭발하는 분노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대로 부부사이의 살가운 말 한마디가 서로에게 힘이되고 용기가 되고 격려가되어
부부 애정이 에펠탑처럼 쌓일 수도 있고
바벨탑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무심한 말 한 마디가 부부사이의 존경과 신뢰에 찬물을 끼얹고
서로에게 습관화 된 퉁명함이 부부를 \'룸메이트\'로 변질시킨다.
어느 부인이 남편에게 섹스를 요구했더니 ‘근친상간’이라며 거절하더라는 말이
우스갯 소리만이 아니다.
평소 말뽄새가 고운 남자, 여자라면 다소 미운 짓 해도
그렇게 절절이 밉지는 않을 터. 아무리 허물없는 부부 사이라 해도
상대가 싫어할 것 같은 말은 삼가하고
이 말이 상대에게 유익할 것인가
이 말이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을까
한번 더 생각하며 어휘 선택보다 먼저 말투를 부드럽게 하는 연습이
곧
부부 사이의 신뢰와 사랑을 지켜주는 조건이 아닐까.
상대의 실수를 콕 꼬집어 가르치지 않아도
꼭 자존심 상하는 말로 상처 주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알고, 또 그 일에 미안해 할 줄도 아는 성인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생리 중에 아무리 조심해도 꼭 한 두 방울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생리기간에는 남의 집에 가서 잠을 자지 않고 남의 화장실도 사용하지 않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두 번 하는 실수도 아니었으니
만약 남편이 ‘여자가 칠칠맞게” 어쩌고 했다면
내 잘못인 줄 알지만 화가 나서 남편의 어떤 실수를 절대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복수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 나는 한 방울씩 떨어진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변기를 닦고 있었다.
“갑자기 왜 변기를 닦아?”
잠시 망설이던 남편...,
“응, 변기도 생리를 하나 봐”
아차, 내가 그랬구나…. 다음부터 더욱 조심을 하게 되었었다.
언젠가는 또 가스가 차면서 계속 방귀가 나왔다.
민망해서 짐짓 아무일도 없는 척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남편이 한 말은 ….
“어, 감기가 걸렸나 엉덩이가 계속 기침을 하네..”
마음은 ‘꼭 그렇게 짚어야 하냐’고 화를 내고 싶은데
웃음이 나와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 다음엔 슬쩍 내가 먼저 말을 하고 가스를 방출한다.
“자기야, 엉덩이가 기침하려고 하네?”
ㅎㅎ
세상 어느 부부도 미친듯 중독된 사랑으로 평생 살아지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부를 만드실 때 첫번째 의도인 \'외로움\'을 채워주려고 하셨듯
서로 외롭지 않게 살기 위한 일상에서의 연습이 필요하다.
나도 글에서처럼 늘 24시간 알콩 달콩 살아지는 게 아니다.
짜네 싱겁네 하는 남편과 식탁에 앉아 투닥거리기도 하고
침대서 컴퓨터 하지 말라는 남편과 몇 년째 접전을 벌이지만 나는 여전히 하고 있고
귀가하면 열쇠는 열쇠고리에 걸고 동전은 작은 바구니에 담으라고 해도
남편 또한 여전히 아일랜드 키친 위에 열쇠를 팽개쳐두고, 세탁할 때마다
바지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동전이 달그락 거리며 신경을 건드린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한 가지다.
매일 아침 남편이 던지는 평범한 말 속에서, 눈길 가운데서
오늘 나의 하루를 이끌어 줄 따뜻한 한 마디와 느낌을 찾는다.
그 느낌을 음미하며 하루를 즐긴다.
마치 내내 내게 자상하고 따뜻하게 해 주고 있는 것 처럼.
그래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말, 내가 원하는 행동들을 수시로 주입하지만
남편도 나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금세 잊어버리고 투닥거리기에
날마다 연습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302호나 402호나 710호도 다 같은 모양으로 살아지는 게 부부이고
작은 차이지만 이런 연습을 통해
부딪침을 조금 줄이고,
애정이 휘발되는 시간을 조금 더 지체시키며 산다는 것…
이왕 살아야 한다면, 사는 날 까지 기분좋게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줌마,
나의 발버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