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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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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아픔


BY 서진 2011-06-16


  휴일도 없이 두 아이대학 보내고 학자금 갚고 빚도 갚고
이제 아이들과 생일 날은 여행을 하기로 하고 큰아이 생일
오이도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회도 먹고 등대에서 열린
라이브로 노래도 따라 부르고 이제 이 정도는 누리고 살자.
이제 휴일을 같고 쉬기로 등산을 결심하고 갔다 오는 차 안에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직감으로 올 것이 왔구나.
난 20 년 전쯤 헤어진 아이들 아빠
전 남편의 사망을 통보 받았다.
친정도와 줫다고 위자료도 안 주고 일하는 미용실 까지 정리하고
아이들 까지 데리고 갔다.
그과정에 우울중에 빠져 병이 들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아이들만 보내고 지금까지
양육비도 안 줬다.
이제 겨우 여유란 걸 시작하려고 했더니
형사가 유품이라고 핸드폰과 만 천원을 주셨다.

  우린 또 조금 모은 돈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일 년 후 난 다시 등산을 시작하고  일 년
이달 그가 간지 이 년이 된다.
 
  천주교 신지인 나에게 이혼은 걸림돌 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정말 정신까지 자유로이 놓여 났지만
가끔은 아주 깊숙한 곳으로 부터 숨을 뱉어낸다.


  그렇게 원수같이 젊음을 미움으로 보내고
이제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음이
왜 ?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냐고
나에게 그에게 묻곤 한다.

  시원하고 후련 할것 같았는데 아니다.
가기 몇 일전 에 와서  아이들 잘 길러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쳐다도 보지않고 패악을 떨었다.
그런말 하지말라고   그런말에 나약해서 이 년동안 동네 사람  부모형제 모르게
몇 개월씩 몇 번을 병 수발 해서 보내고 끝을 낸것이다.


  영원히~~~~~영원히~~~~~

 

  그를 뿌리며 이제 정말 우린 끝난거야 저 세상에선 아는 척 하지마
그러면 서 뿌렸지만
어느 것도 아직까지는 상처 다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는말
나보다 더들 거품을 물어서 내 상처를 말도 못한다.


 가슴 한켠이 아리고 먹먹 하다.
고개도 돌리지 않던 그 곳을 기일에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