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봤냐. 뭐라고 하더냐..”
“에에? 에 ~ 누가요? 아 ~ 가봤어요.”
시계를 보니
비몽사몽에 받은 전화에 횡설수설 할 때가 많지만
아버지는 한 밤에 수시로 전화하셔서
잠을 설치게 하신다.
한국과 캐나다의 시차 계산을
굳이 하려고 들면 못할 분도 아닌데
궁금하면 참지를 못하시기 때문에
미국, 캐나다에 사는 우리 자식들은 참아 낼 수 밖에 없다.
목소리만 클 뿐, 섬세한 성격의 아버지가
어제 새벽 또 전화하신 이유는
부인과 검진을 받았던 내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조금 기다렸다가 한국과 캐나다의 낮 시간이 겹치는 때
통화를 해도 되는 일이지만 궁금하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성격이기에
나는 이제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적응하지 못한 오빠는 가끔 내게 화풀이를 해댄다.
“야! 너 아버지께 한국시간으로
죽겠다 죽겠어. 한번 잠 깨면 다시 잠이 안 와서 다음날 일을 못하겠다. 앙~ 알았재”
좀 어이가 없었다.
연세드신 아버지가 시차계산 못하셔서 밤중에 전화를 하였기로
뭐 그렇게 화를 낼 일이며, 또 화가 나면 직접 말씀드릴 것이지
동생을 통할 건 또 뭔가 말이다.
싫은 소리는 뭐든 꼭 막내를 중개인으로 활용하고
좋은 소리, 생색날 만한 일은 직접 하는 오빠가
은근 얄미웠다.
그런데 엄마의 투병이 시작된 이후부터
병원 예약날짜, 약 드실 시간, 드시면 좋은 음식, 나쁜 음식,조리법까지
그 목적도 다양한 아버지 전화가 밤낮 구분 없이 몽땅 내게로 돌려졌다.
예전이었다면 나도 짜증을 냈을 지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 전화가 너무 좋다.
미주알 고주알 딸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엄마 치료에 도움될까 애쓰시는 아버지가 고맙고 귀엽다.
정신없이 자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면
혹여 아버지가 미안해 하시지 않도록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버지, 나 안잤어~~~ ..”
하면서 옆에서 잠든 남편 눈치 보며 살금살금 대화를 나눈다.
젊은 시절, 같은 방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동침을 했을 만큼 뻔뻔한 바람끼에
도박에 폭력, 가장으로도 남편, 아버지로도
어느 것도 무책임과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얼마 전 엄마에게 고해성사를 하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시며
“여보!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엄마 손을 잡고 용서를 빌었다는 것.
그래서 엄마를 위한 아버지의 뜨거운 애정과 관심만큼
딸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도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져 밤마다 나를 깨우는 것이다.
어젯밤에도 아버지는
“자냐?”
“아니 아버지, 이제 자려고 했어…”
ㅋㅋ
말해 놓고 보니 나도 참 거짓말 선수다.
잠들었다가 깰 시간인데 얼떨결에 둘러대고 나니 웃겼다.
요즘 엄마, 아버지 두 분이의 모습이 딱 신혼부부다.
19살 어린 색시를 데려다가
세상에 있는 고생이란 고생은 종합선물세트로 안겨준 아버지지만
엄마가 수술실에서 생사를 오갈 때
가장 후회스럽고 미안했다는 고백을 하셨다.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주의라고 미워하던 아버지가
어떻게든 엄마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에
연세로 따지면 엄마보다 연로한 당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지극정성 간병하는 요즘, 걱정스럽기 까지 하다.
어린 나이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시집와서
며느리, 형수, 올케,엄마로만 살았던 엄마...
61년 만에 남편 사랑을 듬뿍 받는 \'아내\'가 된 엄마.
차라리 암이라는 병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세월 고단함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시집 오던 열 아홉살처럼 맑고 화사해 진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늘 밤
나도 행복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