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남편의 손톱 ,발톱을 깎았다.
내 손톱이 길때쯤이면 남편손톱도 같이 자르는데
나보다 훨씬 많이 자라는것 같다. 손 쓸일이 없으니 신나게 자라나 보다.
옛말에 게으른놈 손톱만 기른다는 말이 맞는가?
순한 양처럼 손, 발을 내미는 남편이 차라리 귀엽다.
지난번 다니러온 언니가 손톱깎아주는걸 보고 나를 툭 치며 별짓을 다한다며 자기가 하게 두라고 했다.
그 다음에 남편더러 직접 깎아라고 했더니 한참을 들여다 보고 깎았다.
오마나~ 손톱밑의 살까지 잘라 피가 나고 엉망이었다.
오른손이 쉬원찮으니 ...
얼마나 아플까. 에구 차라리 내가 깎아주는게 낫지.
남편 몸에 피나는건 못 보겠다. 가슴이 아파서.
요즘 탁구를 열심히 친다.
남편이 아프면서 이런저런 운동을 시켜보았다.
기억이 사라져 모든 기구를 다루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직장에서 테니스, 탁구를 잘 쳐 장년급 선수였다.
그런데 라켓을 쥐는 방법조차 모르니 자신은 물론 나도 안타까웠다.
테니스를 다시 렛슨을 받으면서 시작했지만 힘이 들어가는 스매싱에서
한계가 왔다.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좌절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등산을 했다. 추울 때, 더울 때가 문제였다. 다시 중단.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체육관을 둘러보고 탁구를 선택했다.
오른손으로 렛슨을 받았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않자 또 다시 좌절했다.
코치와 짰다. 왼쪽은 성하니 왼손으로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남편을 꼬셨다. 의외로 순순히 왼손으로 탁구를 치기시작했다.
6개월정도 렛슨을 받으니 비록 똑딱탁구지만 어느정도 상대방과 같이 칠 실력이 되었다.
됐어. 이제 부터 탁구로 시작하는거야.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동안 점심먹고 오후에 탁구장에 가다가 재미가 붙으면서
아침먹고 탁구장으로 출근(?)하면 저녁때까지 집으로 오지 않는 것이다.
점심이 문제다.
5분이면 집으로 오는데 집에서 먹고가면 내가 탁구장에 가지 않아도 되고
반찬 신경을 쓰지 않아도 참으로 편할것 같은데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
짜증이 나면서 차라리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을때가 더 낫지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탁구장이 쉬는 날, 하루종일 동네를 배회하며 놀이터 의자에서
담배만 피우대는 남편을 보니 내 머리 내가 쥐어 박았다.\' 나쁜 여편네\'
그래, 생각을 바꾸자. 그리고 같이 즐기자.
아파트 단지안에 체육관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조건이냐.
실내 운동이니 겨울에 따뜻해,
여름에 뜨겁지 않아,
집 가까워,
이처럼 좋은 여건에서 마누라가 짜증을 내다니.
나도 탁구 렛슨을 받기 시작했다.
교회옆에 사는 사람이 찬송가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진다고 화를 내다가
본인도 교회를 다니니 그 찬송가가 너무나 듣기 좋다는 이야기처럼
나도 같이 탁구를 치면 탁구장 가는일이 즐겁지 않을까.
렛슨을 받으며 다른 아줌마들과 어울려 탁구를 치니 재미도 있다.
이것저것 간식거리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남편이 좋아하는 국수를 삶아 다시물을 따로 만들어 가져가기도 하고
햄버거가 매뉴가 되기도 하고,
어제는 시원한 냉면을 만들어 가니 국물을 하나도 안남기고 다 마셨다.
탁구장 사람들이 나더러 지극정성 열녀라고 했다.
그 말이 듣고싶은건 절대 아니다.
한동안 갈등이 심해 눈만 뜨면 탁구장을 안가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었다.
아침을 일부러 늦게 주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고
빵을 가방속에 몰래 넣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대로 다시 돌아오는 도시락과 빵.
나도 내 시간이 갖고 싶었다. 하고싶은 취미생활도, 친구도 만나 수다도 떨고싶고,
늘그막에 남편에 매여 이게 무슨 짓인가. 자꾸 화가 난다.
에이 모르겠다. 마눌 말 안들으면 당신만 손해지 뭐. 내버려두고 내 볼일을 봤었다.
그래서 편했을까. 절대적으로 아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괜히 안절부절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않고
엉덩이가 들썩 거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어도 목에 걸리고, 내 마음이 지옥이면 다 무슨 소용이랴.
내 마음이 편해야지.
남편과 평생을 같이 가야 할 길이라면 같이 즐기면 되지.
부부는 평생 친구라 하지 않는가. 남편을 새로 사귄 친구로 여기자.
남편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남편이 행복해 보이면 나도 행복한걸..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공연히 혼자 골머리를 앓다니...쯧쯧
요즘은 탁구장 사람들과 손을 들어 인사도 잘하고, 젊은 아줌마들과 팔장을 끼고 장난도 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는 남편을 보는것만도 내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것을 괜히...
원래 운동신경이 좋아서인지 왼손으로도 숙달이 되어 잘 친다.
저~쪽 잘 치는 아줌마가 남편에게 라켓을 흔들며
도전을 청하면 잽싸게 가는 남편이 즐겁다.
이제 남편은 탁구를 통하여 다시 세상과 소통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내가 마음을 바꾸니 이렇게 즐거운걸.. 괜한 갈등으로 혼자 가슴을 앓았네.
평생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고생했는데 지금부터는 내가 남편을 위해
희생하면 되지. 아니 같이 즐기면 되지.
그려,인생이 별건가.
내 영원한 동반자, 우리 영감과 함께 탁구 인생을 즐기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