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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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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상속


BY 그대향기 2011-05-12

F

 

 

지난 어버이날은 그 어느 해 어버이날보다 특별한 어버이날이었다.

일주일 전에 친정엄마는 미리 만났고

시댁에는 쉬는 날이 아니어서 못 가 뵙고 사골곰거리를 보내드렸다.

큰딸이 입덧이 심해져 일하는 엄마가 별 도움이 안되는데도

친정이라고 찾아왔다.

큰딸은 핼쓱해진 얼굴로 물만 먹고 사는 금붕어가 되어 있었다.

뭘 먹어도 조금 뒤에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안스러움에 이것저것 바꿔가며 해 줘도 도리도리....

2주일간을 친정에서 몸조리라고는 했다지만

엄마가 입덧을 안해봤으니 별 큰 도움은 못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사위 혼자 두기도 그렇고 해서 어버이날을 하루 앞 둔 지난 토요일

큰딸을 데리러 온 사위와 어버이날이라고 달려 온 둘째와 막내까지

모처럼 우리 온 가족이 다 한자리에 모여 어버이 날을 보낼 수 있었다.

큰딸은 편지를 적어 우릴 울렸다.

마냥 어린앤 줄로만 알았던 큰딸은 임신을 하면서 어버이 은혜를

진정으로 알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크면서 잘못했던 점들을 구구절절 적어서 읽느라 어지간히도 울었다.

솔직히 저 닮은 딸은 낳고 싶지 않다고까지해서 웃었지만..ㅎㅎㅎ

 

무뚝뚝했고

짜증이 많았고

자발적으로 부모님을 진심으로 도우지 못했고

센스도 애교도 부족했고

똥고집을 부렸던 그런 딸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매력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그런 딸을 정성껏 길러서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저 하고 싶다는 결혼을 (형편껏 넘치도록 해서)보내준

부모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철없는 소리로 흘려 듣지 않고 무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훌쩍이다가 콧물까지 주르륵 흘리다가 목이 매여 더는 못 읽던 큰딸.

 

어린 시절에

인라인스케이트를 사 달라고 조를 부모님이 계신 것만도 행복했었더란 딸.

잘못했을 때 혼내줄 부모님이 계신 것만도 행복했다고

생일에 부모님으로부터 뭘 선물받을까 고민하게 했던 것도 행복했었고

야간자습을 마치면 데리러 와 줄 부모님이 계신 것도 행복이었던 딸.

수능이나 졸업식에 함께 할 부모님이 계신 것으로도 행복했던 딸.

대학시절 때마다 자취방으로 먹을거리를 택배로 보내줄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너무 행복했었더란 딸.

살아가면서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의 기준을 가르쳐 줄 부모님이 계셔서 행복했고

애완동물을 키우다가 죽었을 때

같이 슬퍼 해 주고 예쁜 고양이를 데려다 주던

부모님이 계셔서 큰 위로가 되었던 딸.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 줄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했었던 딸.

남자친구가 있는지 작은 표정 변화에도 함께 수다를 떨며 웃고 울어주시던

다정다감한 부모님이 계셔서 행복했었노라던 딸......

 

힘든 직장 일을 하면서도 저희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던 엄마아빠에게

어린 시절에는 철이 없어 부모라면 당연하다 생각하며 받아들였는데

대학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이 반성했단다.

그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입덧을 하느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애가 언제 그런 편지는 다 적었는지.

인쇄까지 해서 읽던 큰딸은 훌쩍임이 잦아들고

부스럭부스럭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엄마아빠~

아직도 흐느낌은 남았는데 어색하게 씨익~웃었다.

변함없는 큰딸의 사랑이라며 내밀던 빨간 상자에는

세상에나~~

난생 처음보는 순금으로 도금된 카네이션이었다.

조금 무리는 되었지만 사위하고 마음을 합해서 꼭 해 드리고 싶었다고.

그러고는 앞으로는 해마다 카네이션은 끝이라나뭐래나??ㅎㅎㅎ

황금빛으로 빛나는 카네이션에 그저 놀라고  황홀했다.

이쁜 꽃받침과 이파리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큰딸의 속 깊은 편지에 충분히 행복했는데 이런 귀한 카네이션까지

받으니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둘째도 뭔가를 부스럭거렸다.

뭐지?

얘는 또 무슨 편지로 우릴 울리려고???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야겠단다.

뜨악~~~~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우리가 죽을 병이 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은 부모를 두고 유산상속이라니~

더러더러 돈 많은 부모를 둔 자식들간에는 영안실에 부모를 모셔두고

장례식을 치르기도 전에 재산싸움에 피 터졌단 소리는 들어봤지만서두...

상속이랍시고 해 줄 유산이라도 있었던가?

맹랑한 녀석이로고~

우리 부부가 뜨악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혀 앉았는데 놀라지 마시고 들어보라는

둘째의 상세한 유산 내역서.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유산

1..강인한 정신력

2..의를 거침없이 행하시는 가치관

3..역경을 이겨내는 뛰어난 유머감각

4..오차를 허용치 않는 치밀한 계산력

5..덜 가진자를 향한 포용력

6..올바른 남편상 제시

7..지칠줄 모르는 자기개발

8..맥가이버를 능가하는 응용력

9..흐트러짐없는 논리력

10..끊임없는 노력

 

엄마로부터 받을 유산

1..부드러운 카리스마

2..어떤 환경에서도 빛나는 친화력

3..마음을 움직이는 편안한 글

4..한발 앞선 배려심

5..최장금님의 요리실력

6..덩치를 커버하고도 남을 애교

7..다방면에서 번득이는 안목

8..남자를 고르는 탁월한 눈.ㅋㅋㅋ(왜 킥킥거리는지???ㅎㅎㅎ)

9..매사에 긍정적인 마음

10..깊이를 알수없는 인내심

 

일단은 휴.......

없는 재산을 상속해 달라는 소리가 아니어서 한숨 돌렸다.

이런 발상을 한 둘째의 재치에 놀랐다.

그리고 고마웠다.

엄마아빠 기분좋아라고 좋게만 적었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나중엔 어찌할망정 이런 무형의 재산만 상속해 달라는 둘째가 대견하고

손에 잡을 재산보다 가슴에 안을 재산을 탐하는 둘째가 자랑스럽다.

다 듣고 우리 부부는 큰 울림을 받았다.

애들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안보는 척 못보는 척 꼬맹인줄로만 알았던 애들이

언제 다 커서 이렇게도 우릴 행복하게 해 주는구나...

없는 재산을 상속해 달라는가 싶어서 순간 당황하고 기죽을 뻔 했는데

엄마가 주방에서만 산다며 전문 조리화까지 준비했다.

허리에 무리가 덜 가도록 설계가 되고 관절이 편안하다는 조리화였다.

기발한 상속을 하게 된 우리 부부는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자식들 앞에서 허투루 살진 않았구나...

막내는 편지가 서투르다며 미쳐 준비하지 못했고 아빠 화장품을 사 드렸다.

요즘 대세인 화이트닝이 기본이고 고기능성??

아무튼 그 제품 하나만 발라도 젊어진다는 믿거나말거나 정보지만 꽤 신중하게

선택했고 피부에 좋다고 막내의 형편에는 무리가 좀 따르는 선물이었다.

당분간 간식을 좀 줄이겠군...ㅎㅎㅎ

막내는 누나들한테 숙제를 안했다고 눈흘김을 당했다.

 

거실에서 무대를 옥상으로 옮겼다.

의자를 빙~ 둘러 놓고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큰딸도 구워주는 고기를 좀 먹었다.

저녁 후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다들 어린시절로 돌아가 이야기 꽃을 별들보다 더 많이

세상의 봄꽃들보다 더 풍성하게 피우느라 밤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밤공기에 놀라 거실에 들어가서 딸들 등에 가디건을 덮어줬다.

수박을 더 썰어 내주고 먼 발치서 우리 애들이며 사위와 남편의 떠들썩한

이야기소리와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온 몸으로 번지는 행복함에 눈빛이 흐려졌다.

아~~

이런게 진정 행복이구나.

큰딸을 데리러 오면서 장모가 좋아한다고 사위가 안고 온 화분이 싱그럽다.

사돈댁에서 보내주신 찰쑥떡의 따끈한 온기가 늦은 밤에도 느껴져 감사했다.

돌아갈 시간이 너무 늦으면 피곤할까 봐 그만 일어나라고 재촉은 했지만

며칠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과일가게에 전화로 미리 주문한 참외와 토마토상자를 사돈댁으로 갖다드리라

일러주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너른 마당에는

밤하늘의 별빛이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내려 앉았다.

아이들이 어린시절을 보낸 마당에는 추억의 융단이 견고하게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