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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작은 용서의 참(眞) 가치...


BY *콜라* 2011-03-23

벚꽃 활짝 핀 밴쿠버에서 출발,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미국 레벤월스를 가던 길에 만난 스키어들.

미국과 캐나다는 스키장이 아닌 보통 산의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서 산을 타고 내려오는 스릴을 즐기는 

보드와 스키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3월16일/콜라)

 

발을 다쳐서 침대에 누워서 지낸 지 8.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며 간질거리는 발과 함께 잠잠하던 마음도 간질거렸다.

 

어째 잘 참고 견디는 것 같더라며 웃던 남편은

컴퓨터를 부팅시켜 익숙하게 프린터를 뽑아

속옷과 양말, 소품들을 챙겨

여행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갈 거라며 여권과 비자를 챙기라는 말에

한국에서부터 핸드백에 넣고 다닌다고 했더니 

분실염려가 있다며 달라기에 내가 어린애인 줄 아냐고 퉁을 줬다. 

 

둘이 떠나는 여행반년만이다.

여행이 사람의 영혼과 마음에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호흡기라면

나는 몸도 마음도 저산소증을 겪던 터였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시애틀 국경까지는 130km

시속 100km로 달리면 한 시간을 살짝 웃돈다.

 

내가 잠시 잊고 지내던 세상은

내가 없어도 겨울을 보내고 어느새 봄 옷을 입고 있다. 

 국경으로 가는 초봄의 도로가에는

노란 꽃을 터뜨린 개나리가

망울진 벚꽃을 향해 유세를 부리고 있었다.

 

문득 여행지가 어딘지 궁금했다. 

? 납치 할까봐 무서워?

! 납치 당할 희망이 사라져서 슬프다 …”

 

솔직히 

부부사이가 너무 편해진다는 게 좀 싫긴 하다.

밀스러움이 없고 서로에게 무뎌졌다는 말일 수도 있고

익숙함은 매너리즘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무실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라 오해 해 달라고 억지를 부리다가

언제 철 드냐는 잔소리를 듣곤 한다. 

 

봄 햇살이 반짝거리며 차창 밖으로 따라오고

공항 활주로를 향해 하강하는 비행기가 그림처럼 허공을 가르는

리치몬드 공항을 지나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분은

납치되어 어디로 끌려가도 좋을 것만 같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은 그와

연애시절 전국투어를 다니던 날처럼 노래를 따라 부르며

드디어 국경에 도착했다.

 

4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전광판 안내에 따라

줄을 서기 위해 서행을 하던 남편이 패스포드를 꺼내며

내 여권과 비자를 달라고 했다.

 

……… .

여권과 비자는 한국에서 가지고 다니던 그 핸드백에 있다.

 

두 번씩이나 여권, 비자를 챙기라고 했음에도

확인도 하지 않은 건 ‘중.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기 미안한 실수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시 챙겨오려면 3시간30분 소요는 피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정말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캐나다방향으로 다시 차를 돌린 그의 표정은

마치 원래 목적지가 국경이었던 듯,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안절부절 하는 내게 그가 혼잣말 처럼 이야기했다.

앞으로 우리가 더 나이 들면 이런 실수는 비일비재 할텐데  

그때마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한다.

 

용서한다는 건

언젠가 나도 용서 받는 법이란 걸 알면서도

인간의 감정은, 특히 서로가 편한 부부 사이에 너그롭기란 더 어려운 법이다.

 

내가 저지른 일에 나 혼자 화를 삭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니 허탈하고 허기가 몰려와 

빨리 점심을 먹고 일어섰지만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시 국경에 도착하려면 무려 다섯시간을 허비 한 셈이다.

 

정말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네 말을 듣는 순간, 휴~~ 다행이다 싶더라

? 여행가기 싫었어?

 

그럼 억지로 떠난 여행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너 인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상상만해도 가슴이 철렁해서 그저 고맙더라.”

ㅎㅎㅎㅎ

 

그동안 나는 얼마나 포악하고 이해심 없고 못된 아내였기에

정당하게 화를 내도 되는 일조차 그를 이렇게 움츠리게 만들까

 

싸울 가치 없는 사소한 일까지 내 중심, 내 기준의 잣대만 휘두른 

이기적인 여자로 조금도 양보한 적 없던 나....

그래서 그의 이해가 더욱 미안하고 무안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어렵지만 

타인으로부터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다.  

  명백한 나의 실수이지만 남편이 만약 나를 비난하고 화를 냈더라면

잘못에 대한 미안함 대신 감정이 상한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 감정을 되돌려 줄테고   

     서로 생채기를 내며 엉망이된 기분으로 출발하는 여행은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감정의 골을 푸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다.

 

봄꽃 화사하게 핀 캐나다에서

겨울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나라를 돌아 온 3박4일의 시간은

부부사이에도 작은 용서와 이해가 가져다 주는 참 가치를 나에게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