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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하나님! 감사합니다.!


BY *콜라* 2011-03-02

친구 할머니와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기억력이 때로는 나보다 완벽해서, 나는 종종 엄마가

환자라는 걸 깜빡 잊곤 한다. 고운 친구 할머니와 엄마 두 분 모두 올해 팔순이다.   


아이고 선생님!! 우짜다가 다쳤십니꺼!! 우야꼬,,,!!

\"보드 타다가  넘어졌어요. 마누라한테 욕 먹느라 구정 연휴가 엄청 길었어요. 할머니.

으잉~ 보드가 뭐꼬! 많이 다쳤습니꺼!

깁스 했으니까 당분간 요~ 손가락으로 복강경 수술은 해요. 하하하\"

 

엄지와 검지를 들어 수술하는 포즈로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분은

엄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최중섭 교수다.

  

우리나라에서 산부인과 수술의 명의로 손꼽힌다는 소문대로

30말?40초?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 최교수님과 엄마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구정 연휴에 스키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본의 아니게 다쳤는데

구박하는 아내를 혼 좀 내달라고 투정하는 손주처럼

연신 ~ 을 강조하는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는

금방이라도 깁스 한 손을 만질 기세로 바짝 다가앉아 

마냥 즐거워 하셨다.   

 

환자, 그 중에서도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환자와 가족들은

검은 색 의자에 앉아 무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의사의

눈빛 하나, 무심코 내쉬는 한숨 소리에도 심장이 요동을 친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툭 내던지듯 질문하는 의사들과 달리

식사 잘 하는지 .... 물은 많이 마시는 지...

 평범하고 작은 한 마디도

부드럽고 자상한 말투와 따뜻한 눈빛으로 환자의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문진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팔순 엄마를 보면 

나도 외래진료 가는 날이 덩달아 즐겁다.

 

엄마에게 웃음은 어떤 명약보다 뛰어난 처방이기에

교수님 앞에 엄마를 앉혀 두고 곁에 서서 두 분의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날이 호전되는 엄마에게 항암제보다 더욱 강력한 치료제는 

이런 의사 선생님의 인성과 인품의 효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228,

혈액검사를 마치고 외래 진료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엄마는 교수님의 깁스한 팔목부터 확인한 다음

아이고 선생님! 손은 좀 괜찮십니꺼!!

진료하러 온 환자는 엄마이면서...

의사선생님 안부부터 챙겼다.

 

, 할머니! 이제 거의 나았습니다.

얼매나 불편하십니꺼. 지는 병원에 와서 교수님 못보고 가면 너무 섭섭합니데이!

\"알았습니다. 할머니. 조심할께요. 할머니도 밥 많이 드시고

절대 너머지면 안돼요.  운동도 많이하시구요~~\"

 

환하게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분의 대화는 

진정으로 서로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가족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할머니! 피검사 결과도 참 좋고 잘 하셨어요. 고기국물도 많이 드시고

체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물도 많이드셔서

탈수 되면 안돼요~ 아셨죠?\"

집으로 돌아가면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엄마는

연필 심에 침을 묻혀가며 꼭꼭 눌러 받아쓰기하는 초등학생처럼

새겨 듣고 계셨다.  

 

모니터를 돌려서 변화된 암 수치를 보여주시는 교수님은 

미국과 캐나다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형제들이 각각 귀국해서 궁금해 할 때도

귀찮은 내색 한번 없이 분만실 모니터 앞으로 데리고 가서 수술 자료 화면을 열어

일반인인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었다. 

 

우리나라 의술이 발전되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저런 의사선생님을 보니 정말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와 수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 하다”며 오빠와 나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난소암으로 예상생존기간 6개월이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에

슬퍼하고 좌절하며 우리 가족들이 하나님 다음으로 매달릴 사람은 

의사 선생님뿐이었다. 

 

환자와 가족이 겁에 질리지 않고

긍적인 생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마음까지 헤아리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낼 수 있게 해 준 지난 다섯 달...

의술은 우리가 감히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인품에서 우리 가족은 감동했다.  

 

지금처럼 잘 하시고 5차 항암일에 다시 만나요 할머니

운동 많이 하시고 그날 다시 건강하게 뵈요~할머니~

 

CT촬영 판독결과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가슴뼈까지 암 세포가 침입해 뼈가 녹았다\'는 의사의 직언을 들은 지인이

충격에 빠져 다음날부터 물도 마시지 못하다가 조기에 사망하는 걸 보았던 나는

간병인을 불러 엄마를 모시고 나가도록 한 다음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말을 꺼냈다. 

 

선생님. 혹시 더 진행되거나 전이 되진 않았는지요...\"

아니요!! 암이 거의 없어졌어요. 약간 남아 있긴 하지만 암 수치가 이렇게

뚝 떨어져서 소멸 확률로 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다시 모니터 화면을 내 앞으로 돌려서

상단 모서리에서 출발한 암 수치 측정 그래프가

오른쪽 하단 끝으로 내려 온 걸 보여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

 

입에선 감사의 말이 

눈에선 감사의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리면서

항암 치료 후

온몸의 뼈를 망치로 부셔 놓은 것처럼 아프다던 고통을 잘 견뎌 준 엄마가 고맙고

그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어 밤새 기도하며 울던 지난 다섯 달의 고생이

눈처럼 녹아 내렸다.

 

처음 암을 발견하고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은 지난 8월로부터

정확히 6개월이 지나는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수술전보다 뽀얗고 통통해진 엄마를 친정집에 모셔다 놓고 

잠시 집에 다녀오기 위해 밴쿠버행 비행기에 오른 내가

실신하듯 11시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 비행기는 잠시 후 밴쿠버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저희 대한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