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짐정리가 어느 정도 끝이 보인다.
두 아이들 살림을 내 준 뒤 우리 집은 들쑤셔 놓은 두더지 집 같았다.
옷장이란 옷장은 다 열려져 있었고 다용도실이며 거실까지
아이들이 짐을 챙기면서 펼쳐 둔 짐이 완전 남대문 덤핑가게 같았다.
둘째의 원룸에 가져 갈 짐
막내의 기숙사로 가져 갈 짐
한꺼번에 빠져 나갈 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거실.
박스박스 각자 이름을 적고 짐 종류별로 구분 되어 있던 짐들이
한날 한시에 빠져 나가고 남은 풍경은 우후~~~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뒷끝이라해야할지....
유난히 짐이 많은 둘째.
나 몰래 그릇찬장에서 이쁜 다기까지 다 챙기느라 짐은 더 많고
작은 양념그릇까지 내가 아끼는 것으로 몽땅 숨겨갔다.
나중에 학교마치고 돈 벌어 더 ..더...이쁜 걸로 사 준다면서.
국내에서는 호텔연회부 알바와 캐나다에서는 일식집에서 알바를 했다던 둘째는
보고 들은게 있는지 음식을 곧잘한다.
전혀 못할 것 같은데 제법 먹을만도 하고 보기에도 그럴싸한 요리를 한다.
둘째가 유치원 다닐때부터 엄마가 조리장을 해서 그런가?
아들 짐은 단촐한가 싶었더니 누나 짐을 보더니 자꾸만 조금씩 늘어났다.
한두주간 지나보고 짐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우선에 불편하단다.
그래 그럼.
이것도?
저것도?
큰 종이 박스를 서너개 갖다 놓고 속옷이며 양말 세면도구 이불 바지랑 웃도리
구분지어가며 짐정리를 곧잘 한다.
고등학교를 기숙학교에 다녔으니 짐 꾸리기 선수가 다 됐다.
딸방 아들방 난리가 났고 짐들을 꺼내 놓은 거실 또한 난리통.
그렇게 펼쳐 두고 있다보니 산만하고 복잡했다가 아이들이 떠나고나니 시원섭섭하다.
이왕 산만한거 며칠만 더 참자싶어서 내친김에 봄맞이 대청소다~~!!!
몇년째 그 자리에 붙박혀 있던 아이들 침대위치를 바꾸고
삐그덕덜그덕
볼품없는 서랍장은 아래층 창고로 내치고
비싸기만하고 오래 살지도 못하는 잉어통 대형 수족관은 이제 그만.
나무쟁이 장인이 만들었다고해서 거실 입구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소여물통도 봄꽃이나 심게 밖으로 내치고.....
또 책꽂이에서 숨도 못 쉬고 있는 참고서들이며 고3 책들도 밖으로.
작아지고 미워진 두 아이들 옷가지도 박스에 담고 담았다.
그렇게 꺼내고 꺼낸 짐들이 옥상에 또 중고가게를 차릴만큼 많다.
나도 돈 안 벌었단 이야기 못하겠다.
왠 책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왠 옷들이 그렇게도 많이 작아지고 못 입게되었던지...
구석구석 이쁜 쇼핑백이며 작은 선물박스들.
짝 안 맞는 양말들.
이번만큼은 과감하게 처분하리라 마음먹었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옆에 두고 두번 미련 갖지 않고 담았다.
이번에 정리 못하면 또 안고 살아야 하는 것들은 눈 질끈 감고 다 버리기로했다.
가방이며 옷 중에서 그래도..싶은 것은 할머니들한테 필요한데로 드리고.
가구들까지 위치를 바꾸면서 정리를 하자니 거의 이사 수준이다.
차라리 이사라면 좋겠다.
몽땅 다 내면 되니까.
이건 이 짐 정리해서 저기 두고 저 짐 정리해서 여기다 갖다두려니
몇날 며칠을 밤잠 설쳐가며 정리를 하다보니 몸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이왕 마음낸거 제대로 하자싶어서 남편도 같이 바쁘고 힘들다.
힘이 달리면 남편을 불러댄다.
전에는 어째도 혼자 끙끙낑낑 짐을 올렸다내렸다했는데 이젠 겁이 난다.
꽤가 난게 아니라 철이 든 모양이다.ㅎㅎㅎ
그렇게 짐 정리가 거의 다 되고보니 이번엔 벽에 점점이 있는 못자국이 보기 싫어진다.
나만 가면 무조건 그냥 가져가라고 하는 맘씨 좋은 지물포로 갔다.
운전면허시험을 같이 본 인연 밖에는 없는데 지물포 여사장님은 인심이 후하다.
그냥...
내가 한 직장에서 오래 있어 주는게 좋아뵌다며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이번에도 안방 침대 머리맡에 바를 벽지와 아들 방 침대 옆에 바를 벽지를 좀 사러왔다니까
안방 벽지는 다른 공사를 마치고 남은 거라며 그냥 가지라고 한다.
광폭에다가 벽지도 제법 고급인데....
아들방거랑 풀만 돈 받겠다면서 풀값도 큰 걸로 주면서 적은 풀값만 달란다.
풀솔까지 덤으로 주면서.
늘 고마운 이웃이다.
자잘한 물건이야 어쩌다가 한번씩 사지만 큰 공사를 한번도 준 적 없는데
언제나 물건값을 다 안 받는 것 같다.
분명히 몇천원 정도는 인심을 쓰는 눈치다.
남편 힘을 빌지 않고 혼자서 안방 도배를 하는데 영 시원찮다.
침대가 넓은 돌침대라 옮기지도 않고 도배지를 자르고 풀칠을 해서 바르다보니
찌글찌글 울퉁불퉁 공기주머니까지 여기저기 잡혀있다.ㅋㅋㅋ
옛날에 아버지는 엄마하고 도배를 하시면 늘 싸우셨다.
아버지 키는 엄마보다 머리 하나 이상으로 크시니 키가 안 맞아서 언제나 도배가 이상했다.
아버지는 위로 올라가시고 엄마가 밑에서 풀 바른 도배지를 머리에 이다시피해도
언제나 짧고 아버지 신호에 못 따라가니 큰소리가 났었다.
나야 뭐 혼자서 찌글거리거나 말거나....ㅋㅋㅋ
평면보다는 입체형이 좋지 뭐......
안방은 침대해드 부분이라 그럭저럭 쉬웠는데 아들 방은 긴~~~옆 부분.
이건 면적이 너무 넓다.
남편을 불러서 아들 방 도배를 하자니
\"왜 꼭 이 밤중에 도배야?
그냥 깨끗하고 좋구만......
해 놓고 후회 안하면 해 줄께.\"
\"아니아니 절대로 후회 안해.
밤하늘에 별도 만들어 줄거고 깊은 바다도 넣어 줄거야.
나중에 아들이 오면 환호성이 터지도록~~\"
푸른 벽지에 점점이 별도 있고 물방울도 있는 벽지를 골랐다.
한장 두장 발라가는데 아~~~
이건 완전 내 스타일이야~~
별이 빛나는 푸르디 푸른 밤하늘도 바다도 다 있어.
지금 아들 침대 옆은 별도 있고 섬도 있다.
불빛에 반짝이라고 크리스탈조각을 붙히는데 맘데로 안 붙는다.
하나 두개 세개....
벽지에 보석알갱이를 붙히는 엄만 나 밖에 없을걸?ㅋㅋㅋㅋ
반짝이게 하려면 알전구를 달아야 하는데 천장등은 부드러운 형광등에 갓까지 쉬워진걸 뭐.
그냥 두자.
아들의 어린시절 팽이치기 사진을 걸어줘야겠다.
아이들이 다 떠난 빈둥지증후군을 이렇게 보낸다.
딸방을 정리하다가 둘째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먼지투성이 방바닥에서 한참을 읽었다.
처음 아빠의 이야기를 읽은 날 인 듯.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적혀있다.
아빠가 수술하고 몇년이나 지난 이야긴데.....
제딴엔 큰 충격이었나보다.
그러면서 꼭 성공해서 엄마아빠께 큰 자식이 되어 줄거란다.
그 때까지는 엄마아빠한테 다른 일은 없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중학교 때 적은 일긴데도 참 대견하고 기특하다.
아들의 일기장도 읽었다.
엄마같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고..
일 잘하고 요리 잘하고 착한 엄마란다.ㅎㅎㅎ
제 눈엔 그렇게 보였나보다.
언제든지 심부름 잘하고 안마 잘 해 줄거라던 아들.
벌써 보고싶다.
아니 도배한 방을 보여주고 싶다.
과연~~~
나와 같은 해석을 하고 꿈을 꿀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