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에 꽁꽁 얼은 수도는 무엇으로도 녹으려 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촛불과 전기난로와 드라이기를 동원해보다가 새벽에 해장국집에 가서 국밥 한그릇을 먹으며 생각해낸것이 집을 버리고 나가자는 결론이었다. 관리인도 없는 빌라.. 이웃집 얼굴도 모르는체 살아가고 있었지만 옆집 벨을 누를수 밖에 없었다, 학생이 나오더니 물탱크가 얼었나보다는 말만 하고 어른이 안계시다고만 한다. 한동에 여섯집..세동이면 열여덟집인데 아무도 알지 못하고 지내니 이런 경우 난감했다. 지하수이기때문에 수도값을 내지 않는 공짜 물이 얼어버렸으니 어디다 하소연을 할꼬. 세수도 해야겠고 화장실도 가야겠는데 물이 없으니 집을 버릴수 밖에..
내가 아쉬워서 찾아가는곳이 자식집일순 없기에 친정으로 향했다. 차에 옷가방이랑 노트북을 싣고 일산으로 오니 언니가 반긴다. 연말 연시를 함께 보내자고 하던 조카의 말대로 일산에 주저 앉았다. 이모..우리도 송년회 해야잖아.. 함께 영화관도 가야지요.
어제는 일산에 사는 친구와 만나서 점심도 먹고 어릴적 이야기에 둘이 하하 호호 했다. 중국에서 십년 이상을 살며 사업을 했던 친구에게서 듣는 중국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너 참 대단하다..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릴적 우리집에 칠판이 있어서 학교놀이에 내가 선생노릇을 하던 이야기를 친구가 들려줘서 많이 웃었다. 네가 털실뭉치로 칠판을 지웠잖니.. 그랬덩가.. 너 일산에 오래 있어..우리 영화관도 가자. 그럴까...
오뎅과 떡볶이와 순대를 사서 아버지와 언니와 조카랑 저녁으로 대신했다. 뭐든 맛있게 잡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언니와 마주 웃었다. 자리를 나란히 깔고 누워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지난 날이 호강이었나 아니었나에 대해서 말을 하다보니 헷갈렸다. 과연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 소용없는 대화에 언니의 한숨소리가 깊다.
며늘애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 어디세요? 수도가 얼어서 일산에 왔어 그럼 우리집으로 오셨어야지요. 연말연시는 일산에서 보내기로 약속을 했었어.
한해가 간다. 잘 살아온 한해인지 돌아본다. 오산에 자리잡고 장편소설을 출간 하였으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것 같다. 남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피해를 준 일은 없었는지... 남이 나로 인해서 지은 죄는 없었는지... 지울 일은 지우고 잊을 사람은 잊고 살수있기를 바래본다.
좀더 나은 날들이 오기를 바라는것도 과욕이라는것을 안다, 지금보다 나쁜 날이 없기를 바라는것이 분수에 맞다. 이대로 더이상 발전이 없이 죽는다 해도 만족해야한다는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기로 한다, 단지 나태함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해동안 내게 힘을 실어주고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기를 기도하며 2010년과 이별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