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신혼때 조금 행복했지 아픔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십여년전 그때는 건설 경기가 호황을 누릴때라 인부 30명을 거느리는 사장이엇다
그 당시는 사람 거느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일 잘해달라 고기 구워먹여 술 사주고 나면 담날 출근도 않고 심지어 가불해주고 나면 어디로 도망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었고 또 건설 업자가 돈을 떼어 먹는 일도 많았다
얼마나 먹성들이 좋은지 식당에서는 돈 감당하기 어려워 고기파티는 늘 집에서 내 몫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행복이라 여기며 내 성심껏 최선을 다했노라 말할수 있다
실명제가 도입된후 우린 큰 타격을 입었다
인건비가 어음으로 나왔었는데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몇개월 후 반은 건질수 있었기에 다시 일어섰다
지금에 경기도 시흥시 쪽에 아파트 공사를 맡았다
그곳은 어음이 아닌 당좌로 준다기에 그리고 그 공사를 소개한 사람이 돈은 현찰로 바꿔주면서 몇 프로 떼는 조건으로
몇개월은 그런데로 돈이 잘 융통 되더니 당장 내일 인건비 지급날인데 현찰을 바꿀수 없어 여러 아는 지인 그당시 그업을 하던 분들에게 연락을 취해놨던 상태인데 백방으로 뛰어도 안된다며 풀이 죽어 집에 와 있는데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좌 바꿔줄테니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새볔 두시 따르릉 요란한 전화 벨소리 차도 안갖고 나갔기에 교통사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교통사고란다
병원이 집에서 십분 거리였는데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 응급실 문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추운 겨울이 오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 쳐진다
몇년도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날짜는 잊을수가 없다
뼈가 몇 조각으로 부서진 바람에 3차 수술 까지 해야만 했고지인들이 봐 주겠다던 현장은 엉망이었다
관리자가 자리 없으니 일이 제대로 됬을리 만무이지요 우린 또 한번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인건비 해결해주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