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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인생(8)] 극단적인 선택


BY KC 2010-12-08

짧은 기간, 값비싼 선물, 그리고 눈물 속의 아버지 산소 성묘와 어머니께 올린 절로 대변되던 이상한 휴가 얼마 후 형은 춘천에서 부산으로 자대를 옮겼다. 부대를 옮겼다는 소식은 형의 편지를 통해서였다. 보통 우리나라 군대는 신병 훈련을 받고 나서 배치되는 자대라는 곳에서 제대할 때까지 거의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형은 그 이상한 휴가 뒤에 새로운 지역으로 자대를 옮긴 것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는 가족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특별한 의문을 갖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참 후에 정기휴가를 나온 형으로부터 그 이상한 휴가가 마지막 휴가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형의 그 이상한 휴가는 월남전 파병 부대에 자원한 후 갖게 된 휴가였던 것이다. 형에 의하면 월남 파병에 자원하면 죽음의 위험만큼이나 보상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월남에 가면 적지 않은 목돈을 모을 수도 있고, 설혹 잘못되어 월남에서 목숨을 잃는다해도 국가에서 나오는 보상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아서 목돈을 모아오든, 죽어서 보상금을 받든 그 돈들은 궁핍한 우리 생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월남 파병에 자원하였고, 이런 저런 이유로 월남 파병에 자원한 각기 다른 부대의 군인들과 함께 몇 주간의 훈련을 받았다 한다. 그리고 그 호된 훈련을 마친 후 월남으로 떠나기 전 각자에게 짧은 기간의 휴가가 주어졌던 것이었다. 죽음이 도처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땅 월남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휴가가 주어졌던 것이었다. 그 휴가를 형은 포상휴가라고 했었다. 죽음을 예견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과의 시간을 그렇게 이상한 휴가로 보냈던 것이다.

 

값비싼 선물을 가족 모두에게 안기고, 비싼 외식을 두차례나 하고, 아버지 산소에서 눈물로 성묘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 귀대하는 날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어머니에게 큰 절을 하고 떠났던 것이었다. 형의 마음 속에는 그 시간들이 불쌍한 가족들과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위험한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가족들이 자신만을 바라본다는 생각, 그렇지만 언제 죽을지 모를 전장으로 가게 된 자신 안위에 대한 걱정, 그리고 혹시 자신이 죽었을 때 남아 있을 가족들에 대한 염려 등을 혼자만 안고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니 그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과의 외식에서, 아버지 산소의 성묘에서, 그리고 귀대하는 날 어머니께 큰 절하면서 그렇게 울었던 것 같았다. 사람이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본능과 가까운 성향이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최소한의 인정이라고 할까. 그런데 형은 죽음의 위험 속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서도 그 배경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행한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조그마한 위안보다 자신에게 기대는 가족들에게 걱정거리를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위험 조차도 혼자서 감내하고 안고 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월남 파병을 위한 혹독한 훈련,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휴가 등을 모두 마친 형은 다른 군인들과 월남으로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서 월남 파병은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월남전의 사정상 더 이상 파병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파병한 군대마저도 철수를 준비하던 막바지여서 대기를 하고 있었지만 파병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대기하던 군인들은 다시 각기 다른 부대로 뿔뿔이 떠나갔고, 형은 이미 떠난 춘천의 차트병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부산지역의 새로운 부대로 배치를 받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형의 선택에는 어쩌면 두 가지 동기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에 대한 위험마저도 자진해서 받아들이면서 가족의 궁핍을 해결하면 좋겠다는 실질적인 가장으로서의 자기희생적 결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너무나 어려운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지난친 압박감으로부터의 일시적인 일탈욕구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차트병으로 비교적 편안한 생활에서 자주 갖게 된 가족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여건을 벗어나 경각에 달린 목숨만을 주로 생각해야 하는 전장에서 가족에 대한 걱정을 어느 정도 외면할 수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그 선택을 하였던지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갖는 책임감과 부담 때문이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바라지 않은 시기에 갈 수 밖에 없었던 군대생활에서도 이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적 노력을 다하던 형이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지게 된 것은 형이 제대를 하고 다시 공무원으로 복직한 후 현장에 발령을 받으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