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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20대 여성의 조력 자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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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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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BY lala47 2010-12-04

마음이 스산하던 십일월을 보내고 이제 달력이 한장 밖에 남지 않았다.

시작 한 소설은 진전이 잘 되고 있지 않지만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하는 시간들이다.

무엇을 위하여 살것인가..새삼스럽게 그런 의문이 찾아들지만 않는다면 그런대로 혼자의 공간에 행복을

느낄수 있다.

 

가끔은 허허로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그 부분은 내가 감당해 나가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감당해야할 짐은 있는 법이니까 나만의 아픔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작품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코트를 걸치고 초겨울의 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걸어다닌다.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 두터운 칸막이를 만들면서 과거가 현재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집이 생겼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과 기흥 콘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남편과의 작은 불평들을 이야기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이겨내지 못한 부분들이 새삼 떠올랐다.

남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대입 시켜보는 못된 버릇은 언제나 고쳐질런지...

비교는 금지되어야 한다.

상대적 빈곤..상대적 불행..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갖는것이라는 충고를 자신에게 하기도 한다.

 

윤지를 만난지가 이주일쯤 지났다.

며늘아이의 교육기한이 끝나니 갈 일이 없어졌다.

자식의 집에는 자식이 필요로 할때에만 방문해야 하는 것이라는 지론때문에 내가 먼저

방문 하는 일은 좀체로 없다.

가족이 괌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접했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당부를 했었다.

\"어머니는 참 씩씩하세요.\"
\"씩씩하지 않으면 어쩔건데?\"

내 말에 며늘애가 웃었다.

씩씩을 과장하고 사는 나를 며늘애는 모를것이다.

며칠전에 며늘애의 전화를 받았다.

\"엄니..불고기가 좋으세요? 도리탕이 좋으세요? 좀 오세요.\"

윤지네 들어서니 할머니이..하며 달려드는 윤지가 품에 안긴다.

비행기를 탔으며 어푸 어푸 수영을 했다는 수다를 늘어놓느라고 윤지는 눈망울이

초롱 초롱하다.

그랬어? 재미있었어? 비행기 안무서웠어?

나는 연상 질문을 해주었다.

 

할머니 식사 하셔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내 손을 잡고 숨바꼭질을

고집하던 윤지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는 내 손을 놓았다.

\"어머니 생신에는 밖에서 우리 식사 해요. 윤지 아빠도 그러자고 했어요.\"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며늘애의 말이 고마웠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흐믓하고 안도의 감을 가져오지만 한계선을 벗어나는 짐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윤지야 할머니랑 샤워할까?\"
며늘애는 드라마를 보게 놓아두고 윤지와 나는 샤워를 했다.

이태리 타올에 비누를 묻혀서 손에 끼고 내 등을 밀어주는 윤지를 보며 큰소리로 웃으니

윤지는 더 신이 났다.

\"할머니 이렇게 좀 해. 할머니도 찌찌 있네.\"
\"그러엄..할머니도 찌찌 있지.\"

 

졸린 윤지가 내게 묻는다.

\"할머니 갈거야? 할머니 집에 가지마.\"
\"할머니 오늘 윤지집에서 자고 갈거야.\"

 

할머니를 친구로 오인하는 버릇을 없애기 위해서 며늘애는 윤지와 나란히 서서

고개를 깊이 숙여서 공손하게 내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윤지엄마도 잘 자고 윤지도 잘 자라.\"

 

하룻밤의 충전이 끝나고 돌아오니 깍아진 연필들과 노트의 빈공간들이 나를 기다린다.

또 시작해야겠다.

또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