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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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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에 잠이 깨어....


BY 그대향기 2010-12-04

 

 

 

쏴아아~~

쏴아아~~

평소에 안 듣던 낯선 소리에 이른 아침에 잠이 깨었다.

펜션 넓은 창으로 침대에 눠있어도 다 보이는 동해안 바다.

어제 심하게 불던 바람탓이었는지 오늘은 파도가 많이 높다.

바다 저 멀리서 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해서 해안가 가까운 곳에서는

상어의 아가리처럼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다가

바위를 온 몸으로 쓸어안다 부서지고  모래를 핥으며 쓰러지는 파도. 

 

저 멀리 붉으스럼한 지평선.

새벽에는 시커먼 바다가 파도만   일으키며 몸부림 치더니 

조금전 어느 순간 갑자기 불쑥 떠 오른   해.

낮게 떠 오른 해는 온 바다를 황금빛 보석밭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어났다가 쓰러지는 파도의 몸부림이

수도 없이 흩뿌려져 있는 보석들이 반짝이 듯 바다는 지금 두 얼굴로 태어나고 있다.

악마의 파도와 황금빛 보석들의 변신까지.

 

엊그제 출발한 휴가는

작년에도 11월 말이어서 이만큼 추었던 것 같고 올해도 춥다.

여름휴가가 늘 겨울 휴가가 되고 있다.ㅎㅎㅎ

첫날인 엊그제는 세 가지 일을 다 해 치운 바쁜 일정이었다.

오래전부터 초대해 주셨던 진해의 언니를 만났고

인터넷인연이었지만 꼭 친정언니같은 알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우리 부부를 맞아 주셨고

점심은 물론 돌아 다니면서 가끔 숙소에서 밥을 해 먹을 요량이었다 하니

길양식에 반찬까지 살뜰히 챙겨주시는 사랑을 주셨다.

그 날이 그 언니의  따님이 출산 예정이라고 나중에 우리가 헤어질 시간에야 일러 주셨다.

그 말을 먼저하면 우리가 안 찾아 올까 봐....

작년부터 여러번 초대를 해 주셨지만 시간이 여의치 못했고

남편이 남의 신세를 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 이유도 있었다.

여행중에 읽을 월간지와 언니의 글이 수록된 책 등....

우리 차 짐칸 한 부분을 톡톡히 차지하게 된 언니의 여러 가지 선물들....

넘치는 사랑을 받고 헤어졌다.

 

진해를 떠나 부산 시댁으로 갔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들었고 그냥 부산에 잠시 외근 나왔다가 들렀노라고...

시어머님 특허에 가까운 맛있는 식혜 한잔만 얻어 먹고

시어머님께 용돈만 드리고 나왔다.

머문 시간은 약 한시간 정도?

여전히 아버님은 레파토리가 같으셨고 어머님조차도 뭘 달라는 말씀만 하셨다.

나는 조금 나쁜 며느린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만 했고 남편은 그래도 여운을 남기고 알아보겠다고 그런다.

저녁을 먹고 가라셨지만 낮에 너무 많이 먹은 회가 아직 소화도 덜 된 우리는

점심을 늦게 먹었노라고만 말씀 드리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만약에 휴가 나온걸 아신다면 분명히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셨을테고

하룻밤 자는 동안 내내 요구사항을 꿰야 했을거다.

고마운 남편..ㅋㅋㅋ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경주 친정에 도착.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경주 방문을 알려드렸는데도 엄마집에서는 벌써 저녁밥을 다 해 놓으셨다.

우린 둘 다 배가 너무 불러서 저녁을 사양했고 엄마나 오빠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시다.

오랫만에 온 딸하고 사위가 저녁도 안 먹겠다니....

푸짐한 해물전골이 거실 한 복판에 차려져 있는데 너무 미안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하고 쉬다가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올케랑

동네 노래방을 가자고 오빠가 제의했다.

우리 오빠는 노래를 참 잘하신다.

특히 나훈아의 그 어려운 노래를 잘도 넘어가고 감칠맛나게 잘 하신다.

그 노래솜씨를 뽐내려고 아마도 우릴 끌어 들이신걸게다.ㅋㅋㅋ

우리야 가요를 자주 접하지 못하고 있는 생활이라 알아도 옛날옛날 아주 먼~~옛날 노래 몇곡 정도?

노래방 책자의 그 많고 많은 노래들이 온통 난해한 암호문만 같으니....

어렵게 어렵게 몇곡 찾아서 불러봐도 영~어색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걸까?

빵빠레가 울리는게 아닌가?

빵빠라빵~~~~~빵빠빠빵빠라빵~~~~

당신은 가수체질이십니다~~

\"100\"점 이라니~~

노래방 기계가 술이 덜 깬 모양이다.ㅋㅋㅋㅋ

 

노래방을 나와 밤 늦은  친정동네를 걷는데 참 즐거웠다.

오빠 부부랑 우리 부부.

열심히들 사느라고 사는데 뭔가가 아직은 덜 이루어진 미완성의 단계.

오빠는 항암치료를 하고 계시느라 일하는 올케한테 미안한 눈치고

올케는 올케대로 늘 피곤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큰 조카는 한쪽 눈의 망막이 서서히 안 보이게 되는 치료가  불가능한

이상한 희귀병을 앓고 있고.....

설상가상이라고 하던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빠네는 힘든 일상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계셨다.

막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게 아니라    시제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신다.

아주 어릴적 엄마의 유년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신 모양이다.

딸이 오니 반가움에 그 이야기만 하시고 하시고 또 하시고.....

엄마는 사후세계도 가 봤노라고 하시며 우리 부부한테는 말년에 아주 잘 살거라고 하셨다.

아마도 늘 가슴에 아련한 딸이 안스러우신 모양이다.

애들 다 키우고 우리가 늙으막에는 풍족하게 잘 살거란 기분 좋은 예언도 다 하셨다.ㅎㅎ

평소에 얼마나 하나뿐인 딸이 잘 살길 바랐으면.....

 

친정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른 아침에 엄마를 깨워서 목욕을 가자시니

이젠 걷지를 잘 못해서 바깥출입을 못하신단다.

해마다 휴가 때는 엄마를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같이 가서 엄마를 씻겨 드렸는데

이번엔 엄마가 자신이 없으시단다.

엄마는   일하는 올케가 힘들어 하니 늘 집에서 혼자서 목욕을 하셨고

내가 가야 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을 가곤 했는데.....

그리고 무척 좋아하셨는데 이젠 못 걸으시겠단다.

그 시간 다른 가족들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차로 모시고 갔다가 차로 모시고 오면 되지만  오랫만에 휴가차 와서 쉬는 남편을 깨우진 못했다.

물론 가자면 일어는 나겠지만 어쩐지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남편한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올케나 오빠가 못하는 일을 하자고 하니 왠지 모르는 슬픔이 밀려왔다.

엄마방 창으로 밀려드는 새벽빛 아래서 엄마의  힘없는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다가

혼자 목욕을 가는 동네길이 왜 그리도 흐리게만 보이던지.....

짙게 깔린 안개 탓만은 아니리라.

 

엄마랑 같이 가면 동글동글한 엄마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엄마등도 밀어드리고

머리도 감겨 드리면서 깔깔대며 목욕을 하는데 이젠 엄마는 집에서만 하셔야하나?

차 타고 오르내리는 그 일 조차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어려우시단다.

나랑 같이 목욕가는 그 일을 참 좋아하셨는데.....

어느 해는 근사한 호텔 사우나 이용권이 공짜로 생겨서 엄마를 모시고 가서

때미는 사람한테 엄마를 호강시켜 드렸더니 몇해 동안 그 이야기를 하셨다.

안마도  웃돈 더 들여서 해 드린 그 일이 엄마는 내내 행복하셨나 보다.

얼굴에 제대로 된 맛사지도 생전 처음 받아보셨고..ㅎㅎㅎ

이제는 그런 날들이 영영 안 올 것 같은 생각에 혼자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집 골목이

목이 컥컥 메이도록 서럽기만 했다.

혼자 목욕을 다녀왔다고 야속하다는 남편은 그제서야 일어나 놓곤 나만 타박한다.

늦은 시간까지 (새벽 3시) 오빠랑 이런저런  집안 살림이야기를 해 놓곤 못 일어났던 사람이.

싱싱한  생대구탕으로 아침을 먹고 엄마한테 용돈을 드리고

조카한테는 용기를 잃지 말라는 위로의 말과  용돈을 좀 주고 나왔다.

엄만 마당에 벌써 뭘 챙겨 놓으셨는지 보따리 보따리 올망졸망 늘어 놓으셨다.

차가 복잡하다고 못 싣고 간다고 겨우겨우 말렸다.

오빠도 뒤에서 손사레를 치고 계셨고....

엄마가 내민 사과봉지만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목에서 뭔가가 컥~~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문밖에도 못 나오시고 문간에 서서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고 서 계신 엄마.

이 겨울은 무사히 다 넘기시려나....

 

경주를 나와 칠포로.

남편은 바다낚시를 하겠노라 별르고 별러서 왔건만 바람이 너무 쎄차게 분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는 아기자기 너무 앙증스럽게 잘 꾸며진 펜션인데

성수기 때는 12만원이나 하는 숙소지만 비수기라 좀 싸게 예약했고

또 흥해에 사는  친구가 일부러 미리 와서 탐방을 마쳤고 할인 혜택까지 받아 놓은 상태.

일 다니느라 바쁜 그 친구는 자기 일도 바쁠건데 일부러 칠포까지 와서 펜션 곳곳을

사진까지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주는 성의를 보였다.

광고하는 사진하고 막상 숙소에 도착하면 다른 상황이 벌어질까봐 그랬노라고.

만족한 펜션에 짐을 풀고 남편은 바로 낚시를 가더니 곧 돌아왔다.

아무리 낚시가 좋고 그래도 바람이 너무 불어서 도저히 낚시를 못 하겠노라고.

진해 언니가 챙겨주신 햇반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집에서 가지고 올라 온 햇김치에 갓김치 김을

꺼내서 거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는 휴식 또 휴식.ㅎㅎㅎㅎ

펜션을 예약 해 준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저녁은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우린 그 때 이미 저녁 쌀을 다 씻어 둔 상태였고 흥해 읍에 나가서 김치찌개용 돼지고기도 사 둔 뒨데

그 친구는 소방소장인 남편이 비상근무를 끝내고 3주만에 집에 오는데도 남편을 뒤로 하고

우리랑 저녁을 먹자며 밥은 먹지 말라고 몇번이나 전화로 확인을 했다.

남편은 그 친구를 아끼고 좋아하지만 오랫만에 오는 친구남편을 생각해서 그만두라고 일렀지만

친구는 이쁘게 단장을 하고 밤길을 달려 칠포까지 왔고

우린 해안가 바위 위에 올라 선 멋진 선상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친구한테 신세 질 생각은 아예 없었는데 친구는 그렇게 하고 떠나보내면 섭섭하다며 그런 소리 말란다.

내가 준비해 간 작은 선물꾸러미를 내 미니 또 그런다며 툭~치곤  웃었다.

고마워 친구야~~

네가 이 바닷가 마을 근처에 살아줘서....

그리고 이쁜 집 빨리 짓고 멋진 주인이 되길.

 

오늘 아침.

난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에 놀라 잠이 일찍 깼고

남편은 아주 많이 늦잠을 잔다.

처음 이 글을 쓰던 시간은 이른 새벽이었는데 중간에 화장실 한번 가고

느린 독수리타법으로 치다보니 허걱~~

아침 밥 할 시간이 훨씬~~지났다.

휴간데 뭐 늦게 먹지 뭐..ㅋㅋㅋ

휴가 나와서도 밥순이라니 에이~~~~

그래도 숙소는 좋은데 자고 싶어서 밥값을 아끼자며

이런저런 부식들하고 쌀을 싣고 나왔다.

지방 특식은 한번씩만 먹기로 했다.

솔직히 여행 중에 식비하고 숙박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친정에서 자는 것 이외는 전부 다 남의 집에서 자야하니...

가능하면 신축건물로 찾아들고 깨끗한 곳을 선호하다보니 늘 가장 큰 부담이다.

호텔은 못 잘 망정 깨끗한 숙소는 자야한다는게 여행 중 제 1철칙이다.

콘도이용권을 주겠다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었지만 남편은 노...를 과감하게 선언했다.

남의 신세를 지는 걸 무지하게 싫어하는 남편.

깨끗하게 포기하고 홀가분하게 다닌다.

 

오늘은 남편의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어서 도로 창녕으로 내려가는 이상한 일정이다.

몇년만에 우리가 맡은 계모임인데 하필 휴가와 일정이 맞아 떨어져서 하는 수 없이 도로 내려간다.

부산 친구들인데 날짜를 바꾸기도 그렇고 장소도 마찬가지.

우리가 보고싶어서 창녕으로 오는 친구들인데

일부러 휴가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그냥 진행시켰다.

여러사람 불편해 할까 봐.

그런 다음 다시 북진이다.

이 펜션의 가장 큰 매력은 작운 다락방이 아늑하게 마련돼 있다는 점.

두평 남짓??

난방도 잘 돼 있고 작고 앙증스런 창도 바다로 나 있다.

침구가 따로 준비 돼 있고 하늘하늘한 커텐까지....

나중에 우리 집을 짓게 되면 꼭 다락방은 요렇게 이쁘게 지어야지~

컴퓨터도 이 방에 있다.

숙소 안의 또 다른 숙소.

여러명이 와서 자도 전혀 안 불편할 것 같은 공간이다.

애들 방에도 안방에도 만들어야지...ㅎㅎㅎ

이러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또 띠리리리....

\"점심 먹지 말고 우리 농막에 와라.

 자연산 물회 사 줄게.

 우리 남편하고 넷이서 먹고 떠나...알았지?\"

친구야 그만.

자꾸 네 지갑 안 열고 싶어.

우리 남편도 아마 거절할걸~~ㅎㅎ

고마워 그 마음.

먹은걸로 하고 즐거운 휴가 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