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휴가를 떠나기 위해 이것 저것 챙기다가 내가 물었다.
\"첫날은 아버님 댁에서 하룻밤 자야겠지?\"
난 당연하게 물었더니 남편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니...
부산에는그냥 인사만 드리고 바로 경주 올라가서 장모님댁에서 자.
부산 부모님한테는 인사만 드리고 용돈만 드리고 나오지 뭐...\"
헐~~~~~~~~~~~~~~
며느리인 내가 안 잔다고 해야하는거 아냐?
자식인 남편이 안 잔다고 하니 이거야 원...
왜 안자고 그냥 나오려는지 너무나 잘 안다.
어쩌다가 한번씩 만나는 자식들인데도
아버님은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얼굴 인상은 찌그러지시고
말끝마다 여기가 아프니 저기가 아프니
생활비가 얼마가 들어가는데 돈이 없니 있니.......
솔직히 현금은 애들 공부시키는 우리보다 아버님댁이 더 많다.
부산에는 본인들 집에다가 여기 집 세 놓은것 조금씩 들어오는것도 있고
원호청에서 또 보조금 조금씩 나오는 것도 있다.
두분이서 호화롭게는 못 사셔도 알뜰하게만 사시면 보통의 생활은 하실만한데도
말끝마다 징징징......
꼭 갓난쟁이들이 엄마한테 젖달라고 보챌 때 처럼
앉는 순간부터 집 나오는 순간까지 같은 톤으로 조르시는 형국이다.
그러나저러나 그래도 일년에 명절하고 휴가 때 그리고 생신 땐데
중간에 갑자기 일이 생기면 가 뵙지만 스무번도 안되는 방문일인데
자고 와야 하는게 도리인 것 같아서 물으니 노~~~
그냥 인사만 드리고 나오잔다.
아들이 들어도 짜증나는데 며느리인 내가 들으면 휴가 망친다고 그만 두잔다.
우리가 십년이 넘도록 모실 때는 당연히 해 드려야 되는 줄 알고
이래도 예...
저래도 예...
가능하면 다 들어 드리려고 애를 썼는데
이젠 그만 하고 싶단다.
그래도...
숙식비 하루치 아끼려면 자고 오자고 했더니
다른데서 아껴쓰고 그러지 말자니 좋은건지 나쁜건지....
아버님은 뭐든지 자식들이 다 해 드려야 하는 줄 아신다.
아버님이 자식들한테 베푸시는 것은 무슨 큰 일이 나는 줄 아신다.
형제들이 다들 고만고만하게들 사는데
큰 부자도 그렇다고 크게 가난한 형제도 없으니 다행이다.
부모님한테 기대지 않았고
부모님이 주실거라 믿고 게으름 피운 형제도 없었다.
성실하게 각자의 가족들을 보살피며
한푼두푼 모으며 미래를 꿈꾸며 사는데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늘 뭔가를 바라신다.
많이 있어서 풍덩풍덩 해 드리면 좋겠지만
고만고만한 살림들에서 아버님의 소원을 다 들어 드렸다가는
소시민 살림살이에 커다란 구멍이 뻥~~~뜷리고 말리라.
몇해 전에도 멀쩡한 텔레비젼을 두시고 또 커다란 텔레비젼을 사 주시라기에
건방진 이 며느리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말았다.
\"아버님~
아직 쓸만한 텔레비젼 두시고 뭔 텔레비젼을요?
아버님 이사하시고 가구들 다 새걸로 바꿔 드렸죠~
주방기구들도 새로 바꿔드려서 저희 돈 없어요.
나중에 좀 더 고물이 되면 그 때 사 드릴께요.\"
못 할 형편인데 해 드리고 속 앓이 하는 것 보다는 아예 못한다고 못을 박고 말았다.
그 덕분에 욕은 한바가지 얻어 먹었지만 돈은 굳었지 않았나~ㅋㅋㅋ
그런데...
나중에 결국 어머님까지 합세해서 남편을 조르는 바람에 새 텔레비젼을 사 드렸지만
내내 야속하고 찜찜했다.
아버님하고 어머님이 다른 채널을 고집하시다가 싸움이 나서 각 방을 쓰시게 되었고
그 결과 텔레비젼이 두개여야 한다는 결론이 났더라는 거.
아버님 생각에는 열개 이야기 해서 서너개만 건져도 그게 어디야???
아버님의 징징거림이 싫은 남편은 오랫만에 들리는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도 안자고 그냥 휭~~나오자니 나도 모르겠다.
오죽 그 분위기가 싫으면 그럴까 싶어 그러자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썩.....좋진않다.
하기사 지난해 휴가 때도 영도에 시댁을 두고 송도에서 잠을 잤으니...ㅎㅎㅎ
영도하고 송도는 버스 몇 정거장 거린데.
우리가 휴가를 부산에서 지낸다고 말 안했고
잠시 들려서 인사만 드리고 용돈을 드렸던 걸로 안다.
나중에
진짜 나중에 나는 우리 애들이 다 출가하고
오랫만에 제 짝들하고 집에 오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그냥 즐겁고 행복한 말만 해 주고 기분 좋게 반기고
또 오고 싶은 친정, 자주 오고 싶은 시댁이 되도록 하고
집으로 돌아 갈 때에는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말고 뭐라도 손에 들려서 보내야지.
비록 아이들이 다 떠났던 빈 둥지라도 그애들이 올 때는 어릴 적 우리 아이들이 자랐던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던 그 옛날 그 둥지가 되도록
나는 .......
나는...........
뭐든 다 물어다 주는 씩씩한 어미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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