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솔솔 불고 TV에서는 설악산이니 무슨 산이니 단풍구경 인파가 몇 명이라고 떠들어 대고 나는 산이고 들이고 돌아다니면서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쐬고 오고 싶었지만 함께 갈 친구도 없고 하여 따분하던 차에 배낭을 메고 친정에 다녀오기로 했다.
방어진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남마산에 내려 오랜만에 여고 동창생을 만날 생각이었고 연락은 가면서 하려고 미리 하지 않았다.
방어진에서 마산으로 가는 차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처음이라 차 시간을 적고 있으니 청소하는 아줌마가 차 시간 표 옆에 통이라고 써 둔 것이 남마산 지나 통영으로 가는 시간이란다.
그 시간에서 가장 빠른 차를 타고 가면서 차비는 어디에선가 아줌마가 와서 받아가셨다.
나는 마산까지 차표를 끊고 요금이 좀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가면서 만나고 싶었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근데 그 친구가 그날은 만날 수가 없다는 거다.
나는 조금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멀미가 날거 같아서 한숨 잠을 자고 나니 부산 노포동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운전기사 아저씨께 남마산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으니 차표를 좀 바꿔달라고 했다. 근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1시에 차가 출발할거니 내렸다가 다시 타라는 거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서 내려서 오 뎅 국물을 좀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오 뎅을 한 개 두 개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4개를 먹고 국물도 3컵이나 먹으면서 점심 겸해 요기를 하고 육수를 어떻게 만들어서 이렇게 맛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국물에 둥둥 떠 있던 조그만 싱가폴 고추 한 개 손에 들고 시계를 보니 1시 8분쯤이었다.
나는 아저씨가 1시에 출발한다는 말을 1시 10분이라고 했던 거 같은 착각에 빠져서 느긋하게 버스가 줄을 서있는 곳으로 나오니 내가 타고 가야하는 버스가 없는 거다.
나는 조금 놀라서 거기서 일하는 아저씨 한분께 그 버스가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갔다는 거다. 이일을 어쩌나...
나는 그 버스에 천 가방을 두고 내렸는데...
그 가방 속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선물로 들고 온 고구마가 너무 맛있어서 언니에게 요리 시간에 배운 고구마 맛 탕을 해주려고 7개를 넣고 배웠던 요리를 연습하느라 해본 약밥을 자랑하려고 마지막 한 개 남은 거하고 닭 가슴살과 당근을 함께 다져 만든 돈가스2개는 아버지를 드리려고 넣고, TV에서 며칠 전에 보았던 요리연구가 선생님 풋 고추에 바늘로 찔러 구멍을 내서 간장에 담가두었던 장아찌를 보여주려고 조금 넣었었는데...
물어보니 그 버스 사무실이 저 끝에 있으니 거기 가서 찾으란다.
나는 남은 차비는 떡 사먹었구나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사무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 천 가방을 들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 아저씨는 부산에서 교대를 하는지 남아 있었고 마산시외터미널까지 가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소개해 주면서 같은 회사 버스라 그 차를 연결해서 타게 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천 가방만 남겨두고 사람이 안 나타나더란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점심이라도 한 끼 사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 친구하고 차를 한 잔 하러 가자면서 터미널 안 허름한 노점에 서서 대추차2개와 냉커피1잔을 시키고는 대추차를 한잔 마시라고 내밀었다.
나는 차는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뭔가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찻값이라도 내가 내겠다니까 2,000원을 벌써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친구에게 잘 모셔다 드리라면서 당부까지 하면서 헤어졌다.
새 차를 타고 기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에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싱가폴 고추 한 개를 대추차 마시고 난 빈 컵 속에 담아 천 가방에 넣었다.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흐뭇했다.
친정에 도착하니 약밥이 부서져서 풋고추 담긴 간장이 조금 흘러서 범벅이 되어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다른 음식들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잘 들어 있었다.
내가 돈을 벌 때는 엄마한테 반찬을 얻어 오면서 돈 몇 푼 던져주고 오면 편했었는데 이젠 이런 음식을 들고 다니니 진짜 아줌마 다 되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정집에 들어서니 언니가 “너 이젠 완전 아줌마다. 퉁퉁한 아줌마” 이러는 거다. “그래 나 아줌마다. 몰랐나?” 이러면서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니까 가족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고 언니한테 요리솜씨를 뽐내면서 1박2일을 하고 돌아 왔다.
그 천 가방을 잊어버렸더라도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겠지만
그 기사 아저씨의 배려와 친절이 잊히지가 않아서 글을 쓰면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정말 고마워요 금호고속 박충규 아저씨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