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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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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화약고


BY 그대향기 2010-11-05

 

 

 

내가 간 큰 짓을 하고 말았다.

남편의 최대 약점이자 화약고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화가나도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다른 말로는 싸우더라도 끝끝내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단 한마디 내 뱉는 순간 남편은 폭발하고야 말았다.

 

\"당신 아버님하고 어쩜 그리 닮았어?\"

 

단 한마디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말자 눈빛마져 달라져서 폭발하고 말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건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하는 당신아버님 닮았다는 이야기는 나쁜 의도였으니까.

그 의중을 아는 남편도 기분이 많이 상했고 드디어 큰 소리까지 났다.

 

\"다른 말은 다 참는데 아버지 닮았다는 이야기는 그만하지~~??

 자꾸 하면 가만 안 있는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남편은 그 화를 주체하기 힘든 듯

가만있던 운동기구만 냅다 걷어차고 휑~하니 나가버린다.

그제서야 내가 한 말 한마디가 남편을 얼마나 화나게 했는지

그 말이 남편의 자존심을 얼마나 크게 긁어버렸는지 알았다.

나도 어지간히 화가 난 상태라 끝내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했고

남편은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 난 것이다.

 

남편의 좋지못한 생활습성을 여러번에 걸쳐서 고쳐 줄 것을 당부했고

매번 작심삼일에 가깝게 무산되고 또 당부하고...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나도 어지간히 화가 났었다.

그러니 좋은 말 부드러운 말은 뒤에 숨었고 가시 돋힌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갈 밖에.

애교작전도 하다가 명령조로도 하다가 나중에는 협박까지도 했지만

건강에 나쁜 식습관이나 생활태도가 쉽게 고쳐 지지 않았다.

약이 오를데로 오른 내가 한마디한다는게 그만 아버님 닮았구나....였다.

 

아버님은 건강에 나쁜 음식도  본인의 입맛에 맞으면 자제를 안하신다.

남편은 참 많이 닮았다.

아버님은 화가나면 눈빛이 참 무서우시다.

남편도 화가나면 눈에서 불이 팍..팍....진짜 무섭다.

아버님은 기분파시다.

남편도 기분이 좋으면 아주아주 기분파다.

아버님은 생모를 참 많이 힘들게 하셨다.

남편도 좀 까다로운 성격이 다소 있어 날 힘들게도 하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아버님은 무척 이기적이시다.

그런데 남편은 그건 좀 안 닮았다.

본인보다는 아내와 가족을 우선한다.

참 고맙게...............

 

그런데 그날은 건강에 나쁜 음식이나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태도를

좀 고쳐 줄 것을 당부하다가 짜증이 썩인 말로 아버님 닮았다고 했다가 그만.....

너무 화가 난 남편은 밤인데도 밖으로 나갔고 난 너무 늦은 후회에

이 밤에 나간 남편이 어딜 갈까...

벌써 기온이 많이 떨어졌던데...

혼자서 우두망찰 하고 있자니 밖으로 나갔던 남편이 곧 바로 들어오는게 아닌가?.

화가 난 남편은 안방으로 안 들어오고 비어있던 아들방으로 자러 갔다.

 

당장 무슨 말을 해도 남편의 화가 안 풀릴 것 같기에 한참을 안방에서

두 귀를 토끼처럼 쫑긋하게 세우고

남편의 움직임을 감지해도 너무나 조용......했다.

아들방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안방에서 가만히 들으니 남편의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서 아들방 문을 열어도 기척이 없다.

침대옆으로 가서 가만가만 남편을 불렀다.

\"00아빠~00아빠~~**씨??\"

 

대답이 없.......................다.

반복해서 또 불렀다.

\"**씨.\"

어둠 속에서 남편의 돌아 누운 등을 흔들며 한번 더 부르니

\"왜~~에~~\"

낮은 한마디 대답이 들렸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혼자서 못 자겠어서 같이 자려고....\"

그러면서 아들의 싱글 침대에 오르면서 좁은 침대를 비집고 올라가

억지로 남편을 등 뒤에서 안았다.

 

못 이기는 척 남편이 밀쳐 내지를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자리 좀 만들어 줘 봐..

싱글이라도 좀 광폭인 아들의 싱글침대지만 두 성인이 자기에는 좁았다.

그래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며 화해를 청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남편은 별다른 대꾸는 없었지만 내가 팔배게를 해도 가만있어주고

이리저리 안으려해도 맞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모르는 척...있어줬다.

 

마주 안아주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화가 좀 누그러 지는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숨소리만 크게 듣고 있다가

\"난 좁아서 안방에 가서 잘래.

 내일 아침에 봐요~

 잘 자고...... 사랑해요....\"

그러고는 안방으로 돌아 와 잠을 청했지만 에휴....

그 밤 어떻게 잠을 잤는지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았다.

이튿날 남편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많이 풀어졌고

저녁에 한가한 시간에 나더러 자기도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자기도 크게 잘 한 것이 없는데 내가 한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남편은 본인 성격이 아버지를 참 많이 닮긴했어도

그 성격을 최대한 안 나타내며 살고 싶은데도 부지불식간에 나타나게 된다며

앞으로는 본인도 자제를 더 잘하겠지만 아버지 닮았다는 이야기는 나도 자제하란다.

아버님은 이러는 아들의 심정을 아시기나 할런지...

생모를 너무 힘들게 하신 아버님이시라 남편은 아내를 최대한 많이 사랑해 주면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인데 자기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나는 남편하고 말싸움을 한 날에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화해를 한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손찌검을 하는 남편이 아니니 해 봐야 말싸움이지만.

남편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둘 다 너무 심심해서....ㅎㅎㅎ

둘이 만나기만 하면 싱거운 소리 한마디씩은 하고 지나치다가

맹숭맹숭 소 닭보듯 관심없이

호랑이 사자 만난 듯 으르릉 거리면 무에 재밌냐구~~

최대한 빠른 시간에 내가 먼저 화해를 자주 하는 편이고

어떤 날은 남편이 심심하니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다.

한번쯤 삐지는 척..하다가는 금방 돌아선다.

 

다시는 남편의 화약고를 안 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