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어나더+ 아이함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227

친절한 봉자씨


BY 봉자 2010-08-28

봉자 성격은 꾹꾹 눌러놓은 잠재된 다혈질이라

몸에 착 감기지 않는 친절을 죽어라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장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땐

좀 같잖다 싶은 사람에게 제대로 끓지 않은 성질머리 내지르다

지꼴내꼴 할 것 없이  모양새 얄궂고 사나워보였지만 속은 참 시원했다는 거지요.

오 년째 졸며깨며 지키는 구멍가게에서 주인성질  손님성격 으깨고 버무리다 보니

이래서 장삿돈은 개도 안 물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에게 5초간 묵념이라도 하고 싶어진답니다.

 

이 동네 아줌마들은 봉자보다 부지런한데다 이성적이고 지혜로워

입은 닫고 물건 파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며

아이들에겐 유난을 떨어 다정해야함은 물론                  

진득한 인내심은 문을 나설 때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봉자에게 친절이란 매상을 염두에 둬야하는 장사속이 그 하나요

둘로는 어릴적 구멍가게에서 입은 외상후 스트레스(ㅎㅎㅎ)에 기인하지요.

 

그옛날 구멍가게란 동전 몇 푼에 맞춰

군침도는 과자를 겨우 한 두개만 골라야하는 고통이 따르는 곳이지만

내 돈을 접수하고 온갖 눈치로 다그치는 주인의 불친절함에 주눅이 들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봉자는 아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상거래와 자유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게에 들어서는 아이만 보면  작정하고 입꼬리를 귀에다 걸어놓습니다.

 

올여름, 

5,6학년쯤 돼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가게에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친구가 유별나게 롤러 브레이드를 끌고 가게 안을 휘돌면서

낮게 진열된 과자 상자를 뒤엎어 봉자 신경을 쓰이게 하였지요.

아이는 주인의 반응이야 어떻든

엎어진 과자를 아무렇게나 담아놓고 다른 과자를 집더니

 

\"아줌마 이거 얼마에요?\"

 

\"이거는요?\"

 

\"\"이거는  얼마죠?\"

 

잡히는 대로 값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봉자는 메뉴얼대로 입을 귀에다 걸어놓고 다정하게 값을 뱉어냅니다.

\"그건 천원이야, 오백원. 삼백원. 칠백원이지~잉\"

 

따라다니던 한 아이는 눈치가 보였던지 말리는 시누이처럼

친구 옆구리를 툭툭 쳐봅니다.

롤러 탄 아이는 웃기지 말라는 듯 당당한 얼굴로

이거는 얼마죠? 를 반복하며 한참 동안 진을 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화 내면 지는 것, 마무리 코스 인내를 철근같이 씹으며

기어코 300원짜리 과자 하나를 팔고 말았죠.

아이들이 나가자

봉자는 끝까지 잘 참아준 친절했던 봉자를 칭찬해주며 열심히 아컴의 글을 읽고 있었겠지요.

얼마나 지났을까.

\"안녕하세요!\"

땀냄새를 풍기며 아까 그 아이들이 또 들어왔습니다.

봉자의 친절과 인내 배틀로 다시 한 판 붙자는듯

두 아이가 아이스크림 통에 착 달라붙더니 종류별로 아이스크림 하나씩 꺼내 또 묻기 시작했습니다.

\"오백원. 칠백오십원. 사백원. 이천오백원\"

봉자 입에서 아이스크림 값들이 줄줄이 불려져 나옵니다.

 

\" 아줌마한테 아이스크림값 자꾸 불리게 하면 값도 불려서 받는다?\"

 

냉기가 올라오는 아이스크림통 문을 젖혀 놓은 채 묻기만 하는 아이에게

전기세 물릴 기세로 농담 한 판 때리니 못내 아쉬운듯

35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고는 뜨거운 태양빛이 쏘아대는 거리로 뛰쳐나가버렸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봉자네 가게는 냉장 쇼케이스 문을 반쯤 열어놓아 실내가 더없이 시원합니다.

도로를 따라 상가는 줄지어 있지만

호프집, 미장원, 다이어트 샵, 피부미용실, 건강식품판매소, 부동산집 옆에 부동산 가게...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다 더위를 식히러 뛰어들 곳은 눈 씻고 봐도 봉자네 가게뿐이죠.

시원한 실내 공기 쐬며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 저것 물어가며 눈치 없는 아줌마의 친절을  애용하는 아이들,

봉자는 그 아이들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구멍가게 주인이 두려웠던 어린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자가치료(?)란 그럴싸한 이유도

밀어버리는 강력한 상대, 손님=왕

그들이 아이든 어른이든 봉자는 예전의 성질머리 꾹꾹 밟아주는 구멍가게 시간들이 고맙습니다.

천성이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에겐 쉬운 장사, 그게 아니었던 봉자에겐 간난신고 정신수양의 길,

 

\"얘들아, 봉자아줌마 구멍가게 접는 날 아줌마 몸에 \'친절 사리\' 나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