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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아내들만 떠난 여행


BY *콜라* 2010-08-21




 

<사진>에메랄드빛 빙하수가 녹색과 청아한 빛깔로 마음을 사로잡는 레이크 루이스.

록키마운틴을 보지 않고 캐나다를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지난해 이어 두 번째 떠난 록키 여행.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녹색의 나무들과

투명한 하늘 위로 힘차게 솟아 오른 록키의 실루엣이

화창한 늦여름 맑은 햇살에 발가벗기운 누드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망원렌즈와 광각렌즈를 동원, 갖은 기교와 술수를 동원해도

물빛 고운 빙하 호수와 그 위에 얼비친 록키의 힘찬 웅지를

담아 내려는 노력은 가소로운 인간의 몸짓으로서 한계만 느껴질 뿐

답답함을 지나 절망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카메라를 던져 버리고 감각의 날을 세워

내 온 몸의 세포를 열어 담기로 작정했다.

 

여행은 오염된 생각을 씻어주고

자연은 내 오만한 마음을 다스려 주었다.

 

<사진>녹아내린 빙하수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한여름 겨울 파커를 입고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는 빙하 설원 아이스 필드는 록키의 명소 가운데 한 곳.

 

 

저녁식사 초대를 한 후배가 식탁에서 우연히 제안해

갑자기 떠나게 된 여자들만의 여행….

 

무언가 은밀한 즐거움이 있을 것만 같은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떠난 34일은  

발길 닿는 대로 눈 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다니던 여행에서 겪지 못한 구속감과

그 구속감의 결과로 얻어 진 또 다른 편안함이 

생소하지만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게 했던 몽환적인 시간이었다.

 

사소한 것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던 남편의 부재에   

자연의 경이로움과 더불어 다소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챙긴 것 보다 잊어버리고 온 옷가지며 물건들이 더 많아

크고 작은 것에서 실수 연발이던 것은관심과 배려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보이는 분리불안 증세 같은 것이었다.

 

후배는 카메라를 질색하는 나와 반대로 잠을 자다가도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면 벌떡 일어나 배시시 웃으며 아이처럼 즐거워 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족들을 위한 고단함을 보람으로 엮어 살아 온

지난 시간이 단 나흘간으로 만회될 순 없었지만

완전한 자유를 주기 위해선, 습관처럼 아이들에게 머물러 있는 그녀의 시선과 모든 촉각을 아이들로부터 떼어놓는 게 좋을 듯 했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정에 따라

모닝 콜을 받으면 고등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 순으로 깨우고

행선지의 기온에 따라 두꺼운 옷, 얇은 옷 챙겨 입힌 다음

간식과 물을 준비해 놓은 후 엄마인 그녀를 깨웠다.

 

아이가 없는 내가 엄마 흉내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엄마와 같은 어투로 이런 저런 참견에 식상해 져 있을 아이들을 위해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함께 다니던 나흘 동안 

\'하라. 하지 마라’결정하고 지시 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 아침엔 5 모닝 콜을 한다는데 너희들 피곤해서 일어 날 수 있을까? 단체 생활엔 늦으면 민폐가 될텐데 차라리 이모가 불침번 설까?

“이모, 그럼 알람을 4시30 맞춰 놓으면 어떨까요?

“그게 나을까? 차라리 푹 자고 모닝 콜 받은 다음 다시 잠들지 않게 1분 간격으로 우리 모두 동시 핸드폰 알람 해두면 어때?

 

\"이모 생각엔, 오늘 기온은 20도 이지만, 산 속의 자연 폭포는 물보라 때문에 체감 온도가 훨씬 내려갈 것 같아. 어떤 옷 입는 게 좋을까?

“그럼 긴 바지 입고 점퍼 챙기면 돼죠.

 

계기만 만들어 주면 척척 알아서 판단대로 움직였다오히려 엄마가 문제였다.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갖는 듯, 그러나 실제로는 그녀가 아이들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를 분리하지 않고는 엄마의 여행은 가사의 연장이며 엄마 노릇의 연장선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였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수영을 하면서도 눈길은 언제나

엄마의 관심이 귀찮은 나이의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엄마의 사랑인듯, 아이를 구속하고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박탈하는.......

  

남매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 하나까지 개입해

엄마의 잣대로 해석하고 판결, 결론을 지으려는 행동과

특히 아들을 향한 감정의 기울기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무조건적인 아들 사랑을 보여주며 질기게 따라다녔다

 

 

사진>엄마 왜 그래.... 고등학생인 딸이 아이같은 엄마가 칭피하다며 얼굴을 가렸지만, 40대에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그녀, 아름답다.  

 

투어 버스 앞쪽에 아이들을 앉혀 지켜 봐야 한다고 우기는 후배를 

억지로 앞 자리에 앉히고, 먹을 걸 챙겨서 엄마의 시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뒷 자리에 아이들을 앉혔다.

 

아이들이 직접 보고 느낀 감정대로 의문과 대답을 찾아가며

스스로 조절하며 내면의 감성을 채워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쉼을 주는 시간을 가지라고

그것은 곧 엄마에게도 여행다운 여행이 될 것이라는

우격다짐에 가까운 설득 끝에 비로소 목장지대가 많은 캘거리에서부터

마음을 열어 이국의 목가적인 풍경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돌아 오는 차 안에서 그녀가 말했다.

“언니, 가슴에 뭉쳐 있던 덩어리 하나를 빼낸 듯 해…고마워.

 

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중매로 만난 남편과 두 달 만에 결혼,

시부모님과 위 아래층에 살면서

신혼다운 신혼시절 한 번 보내지 못한 채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에게 자신의 전부를 쏟아 온 그녀에게

여자들만의 이 여행은

나의 십 수년만큼 길고 소중해 보였다

스스로가 찾아 준 자유를 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