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 그동안 잘계셨나요.. 담주 월요일이 아주버님 생신이더군요..
생신이 돌아오니 요즘 부쩍 더보고 싶네요.. 살아계셨음 지금나이 46인데..
5년 동안의 투병 생활도 무색하게 뇌종양이 재발하는 바람에, 우리곁을
떠나셨죠.. 벌써 올해가 아주버님 가신지가 4년째 접어 드네요.
4형제로 있다가 갑자기 3형제가 되버린 형제들... 울남편이 아주버님 병원델고
다니느라 고생좀 했지요. 그래도 얼굴한번 안찌푸리고, 하나뿐인 형이기에..
아버지 대신이기에.. 동생들은 형을 참 끔직히도 아끼고, 형말이래면 말대꾸들도
별로 안하고 형과 뜻을 같이 했었는데.. 부모 잘못만나 어려서부터 맘고생. 몸고생만
지지리 하다가 결혼하고도 참.. 힘들게 살다가 ..별난 엄마덕에 맘고생도 많이한거
다른 동서들은 몰라도 저는 알아요.. 남편과 병원 다녀 오는날은 울집으로 와서
아주버님 좋아하는, 글고 저도 좋아하는 울동네 칼국수집 가서 오징어 두부 두루치기
시켜서 점심 드시고 가셨지요.. 어머님이 자꾸 동기간에 이간질을 시킨다며.. 저에게
오셔서 저보고도 그랬지요. 엄마말 믿지말고 우리 의좋게 지내자고.. 저는 그래서
아주버님께 서운한거 있어도 제가참고 저는 원래 제가좀 손해보자 주의 거든요.. 글고
울남편이 형이라면 끔찍한데.. 제가 감히 어찌 시숙에게 덤빌수가 있었겠나요..
근데 정말로 한번 대게 서운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땐 정말 저희도 힘들때였어요.
아주버님이나, 저희나 맨몸으로 동거부터 했던 결혼 생활 이었죠. 그전부터 남편과 둘이서
들었던 투자신탁 적금을 저희가 나머지 부금을 부어서 만기가 되어서 돈을 탈날짜가
되어서 아주버님이 저희가 사는 서울로 오셨었지요. 그때 은행이 강남쪽에 있었지요.
울집에 와서 통장을 가지고 아주버님은 돈을 찾아서 시골로 내려 가셨지요.
전그때 아주버님이 저에게 돈한푼 안주고 내려간게 두고 두고 서운했어요.. 그래도
남편에게만 내색하고 아주버님껜 말도 한마디 안했어요. 아주버님도 꽁하는 성격인거 알기에..
그랬다가 형제간에 싸움날가봐요.. 제가 참고 넘어 갔지요.. 저금을 넣은건 우린데..아주버님이
넣은건 몇번 되지도 않았기에.. 3년동안 한달에 10만원씩 넣은 돈인데.. 그때 .. 참..정말로
서운하데요.. 나도 살기 어려운데..제가 아주버님이 재수씨 과일 좋아하는데 사먹으라고
10만원만 주고 내려 갔어도... 참 맘이 무척 서운하고 아주버님이 많이 괘씸했었어요..
어째그리 형님이라는 사람이 자기 실속만 챙기나 하고요.. 근데 사실 아주버님도 욕심은 있었지요..
울남편이나 욕심이 없지요. 참..제남편이라 이러는게 아니라요..울남편 같은 동생도 세상에 아마도
없을걸요.. 사람이 자기 실속은 뒷전이고.. 언제나 형님, 동생들 먼저 챙기고, 자기 엄마 챙기고...
마누란 언제나 뒷전이고... 어느땐 남편에게 언제나 내가 1순위가 되려나...참 ..서운했지요..
암튼 ..ㅎ 아주버님 생신이 돌아와서 생각난김에 주절거려 봤네요..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꼬..
참..복도 지지리 없는 시숙이였다... 집사서 살만하니 가셨으니..병도 완치가 됐었는데.. 하긴.. 첨에
뇌종양 발견 됐을때 첨갔던 동수원 병원에선 3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맘의 준비들 하라는거 ...그래도
서울 원자력 병원으로 델고가서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1년이래도 우린 수명을 늘려보려고..참..
온가족이 매달려서 맘고생들좀 했었다.. 마지막에 가실땐 사람들도 제대로 못알아 보고 그러다가
가셨는데.. 장레식때 울시엄니땜에 ..성질나서 죽겠는거 참느라고..참..ㅎ 내염장을 질러서리..그래도
내가 참았다.. 왜냐 자식 앞세운 이기에..에혀..참...소갈딱지가 밴댕이인 울시엄니다....ㅎㅎ 어쩌리요
그래도 내가 젊은뇬이고 사고방식 고리 타분한 70대 노친네랑 신경전 벌여 봤자지.. 싸워서 이긴다고
누가 나에게 상을 줄것도 아니거늘... 그냥 젊은게 좀 마추고 살아 주는거지...에혀..참...사람이 살면서리
서운한거 따지자면 한도 없는게 인생이다.. 아주버님 안녕히 계시고요.. 저도, 건강이 좀 안좋아요..
저아픈거 더이상 나빠지지 않게 저좀 보살펴 주이소.....ㅎㅎ 저그래도 괜찮은 재수씨 아녀라...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