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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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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어려운 이야기 2


BY 선 물 2010-07-19

나에게 남편은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 사람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지금도 두근두근할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머물러준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자신이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남편은 다른 이들에겐 이미 늙고 인물도 훨씬 못해진 남자다.

그런데 유독 내게는 변함없이 멋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나도 이 사람도 행운이다.

하지만, 그게 행운이라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 오는 불운이 있으니 바로 나의 매력 없음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보다 남편이 나를 더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그러니 문제가 크다.

그나마 최근엔 한꺼번에 늙어버린 느낌이다.

아이들조차 울 엄마 참 예뻤는데 최근에는 그 모습이 다 사라졌다고 난리다.

그러고 보니 예쁘다는 말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뿐만 아니다.>

언제부턴가 아줌마의 힘이라고 할 때 느껴지는 그런 당당하고 멋진 아줌마가 아닌, 지하철 자리다툼하는 뻔뻔아줌마 쪽에 가까운 의미의 아줌마가 되어 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 정말 그러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도 다 잃고 만 것 같다.

지금 글 쓰는 이 순간 퍼뜩 드는 생각이다.)

 

방귀 틈의 여부와 여자로서 지녀야 할 성적 매력과의 상관관계가 간혹 화두가 되기도 하는데 나 또한 이것을 아직도 완전히 트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수로 방귀 뀔 일이 잦아지고 처음에 미안요, 하며 수줍어했던 것이 횟수가 잦아지면서 점차 그러려니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참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 마음 놓고 뀌라지만 그것은 아직도 내가 수줍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줍은 척 하면서 은근히 그 작업이 시원하고 재미있어지고 있다.

속옷 갈아입는 일도 그렇다.

내가 남편 앞에서 속옷 갈아입는 일은 거의 없다.

화장실 들어가서도 문을 잠그고 볼일을 본다.

큰일을 본 뒤 냄새라도 날까봐 조심하게 된다.

남편은 별꼴이라는 듯 반응하면서도 은근히 그런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친정에 가서도 속옷 바람으로 있어본 적 한번 없는 사람일 만큼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행동이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이번 여름엔 처음으로 런닝만 입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만큼 점점 편한 것이 좋아지고 있다.

 

또 한 번의 <뿐만 아니다.>

뿐만 아닌 일들이 연신 터지고 있는 것이다.

호수 공원 광장에는 섹시뮤직이나 헬로 미스터 몽키 같은, 때 지난 팝송들을 틀어주면서 에어로빅 강습 봉사 하는 여자 분이 계신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따라하고 있다.

그런데 따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다.

운동은 되겠지만 점잖지 못해 보이는 동작이 많아 그동안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가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곳을 지나면서 음악을 듣는데 아니 웬 일, 내 몸이 리듬에 맞춰 절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함께 산책길에 나섰는데 내 발길이 절로 그곳으로 이끌려가더니 엉거주춤 꼴 사나워 보이는 동작들을 열심히 따라하는 것이다.

딸아이가 자지러지게 웃는 것을 보았는데 잠시 뒤돌아보니 남편도 딸아이도 흔적이 없다.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보니 내가 하는 꼴이 창피해서 옆에 못 있겠더라 는 것이다.

따라 해서 건강해지면 좋지 뭐 라며 그것도 못 기다리겠냐고 하자 남편이 딱 한마디를 했다.

스스로 하는 꼴을 거울로 한번 보고 그런 말 하시지.

그런데 어쩌랴, 그 말 듣고도 아무렇지 않고 그 뒤로도 내 걸음걸이는 흐느적거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으니.

 

심상치 않은 나의 변화는 얼마 전 어머님과의 관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단순히 부끄러움만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심성도 변하기 시작했다.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는 감도 있지만 내 속에서 분출되는 사나운 기운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의 이런 변화를 남편도 조금은 감지했을 것이다.

그래도 웃어주고 긍정적으로 보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드디어 일이 크게 터진 것이다.

아래에서 언급한 생리대 일이다.

뭐 잘한 일이라고 지금 이렇게 트인 광장에서 나 이랬소, 광고하고 다니는지 사실 글 올린 뒤 혼자 실소했다.

마찬가지, 그 일을 뭐 잘한 일이라고 그렇잖아도 그런데 결벽증 있는 남편에게 말한 것이다.

남편은 음담패설 같은 것도 참 쓰잘데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완전 아줌마인 누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며 깔깔거려도 정말 조금의 흥미도 없는 사람이다.

야동 같은 것 단 한 번도 빌리거나 보는 것을 보지 못했고 어쩌다 영화에서 야한 장면이 나오면 그냥 심드렁해하는 남자다.

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한다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가끔 그런 것 같이 보고 싶기도 하던데 그런 표현을 하면 날 아주 웃기는 여자로 알 것이 분명하기에 내가 오히려 더 질색하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남편은 스스로 정숙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긴 이야기를 그럭저럭 가벼운 맘으로 썼다면 지금부턴 매우 무거운 마음이 되어 글을 쓴다.

생리대 이야기 전에는 환하게 웃던 남편이 생리대 이야기를 듣던 순간 얼굴이 순식간에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리곤 아주 모진 목소리로 한 마디했다.

<그건 아니지, 정말 그건...>

그리곤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 되더니 나를 벌레 보듯 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지 하는 짧은 말 속에 남편의 엄청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반응이다.

그 후로 며칠째 남편은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한상에서 밥도 먹지 않으려 한다.

늘 함께 다니던 미사에도 혼자 휭 하니 가버린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물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금까지 살며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남편을 본 적은 없다.

 

혼자 궁리해보았다.

둘 중 하나다.

나를 정숙치 못한 여자로 보아서 화가 났거나 아니면 남자직원에게 엄청난 실례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 그 남자 직원이 모멸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하는 일에 대해 아주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만약 둘 중 하나라면 차라리 후자이기를 바란다.

전자라면 나도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내가 느낄 모멸감은 왜 생각지 못 하는가

 

실은 이 글을 쓰기 전부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기본적으로 여자의 생리대가 이처럼 터부시 될 물건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히 그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 내가 올리는 글에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그런 차원의 것과는 다르다.

젊은 남자에게 그런 종류의 여성용품을 거리낌 없이 내 뱉는다는 것이 왠지 우리의 정서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오자 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고 말을 멈추고 만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매장에 직원으로 있는데 남자 손님이 콘돔 어디 있어요. 한다면 당황하고 불쾌해질 수 있는 일 아닐까 하는 차원의.

그렇다 해도 이건 많이 심하다.

 

사실 주말이 지나면 어떻게든 감정이 누그러지리라 기대했다.

스무 해 넘게 살아오면서 겪어 온 남편이라 알 만큼 아는 것 같은데 이번 일은 너무도 의외이며 혼돈스럽다.

현재 이 시각 남편은 나와의 마주침을 피하기 위해 외출하고 없다.

지금은 나조차 화가 나서 서로가 서로를 피하는 형국이다.

뭔가 좋게 매듭이 지어지면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을 것 같다.

부디 내가 남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움을 갖게 될 것이니.

 

남편과 나를 보호하고픈 마음에 글이 엄청 길어졌음을 이해바랍니다.

요즘 저 자신이 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한데다 이런 일도 생기고 해서 정말 다른 분들의 경우는 어떨까 궁금해서 아랫글을 올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