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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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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어려운 이야기 1


BY 선 물 2010-07-19

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해 볼 시점이다.

그런데 나를 딱 잘라 규정하기가 어렵다.

내가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앞으로의 내가 지금의 나와 또 다를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확 달라진다는데 그 말이 은근 신경 쓰일 만큼 변화의 폭이 큰 요즘이다.

호르몬 분비, 뭐 그런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교적 많이 듣는 평 중에 얌전하다거나 새침하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이 평은 단지 첫 인상에 대한 것일 뿐 일단 내가 입을 열면 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그것으로 나를 말할 수는 없을 성 싶다.

그래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맘먹고 얌전을 떨거나 내숭을 떨면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그런 모습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 살짝 새침을 부리기도 한다.

분명 과거의 나는 그것이 가능했고 더러 그것으로 실리를 취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예로는 취업시 면접을 볼 때나 어른 계신 자리에서 맞선을 볼 때처럼 좀 어렵고 예를 갖춰야 하는 자리가 그렇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내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내게 이런 저런 복합적인 면들이 조금씩이라도 깃들어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학교 다닐 때 응원부장을 하고 오락회나 야유회 같은 모임에서 뒤로 빼지 않는 나를 보면 수줍음 별로 없고 제법 배짱 두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나서면서도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주춤거려지는 내 속내를 들켰을 수도 있다.

편히 앉아서 우스갯소리 하는 것에는 소질 있었는지 모르지만 막상 멍석 깔아주고 재주 부리라 하면 뒤로 진땀나고 두려웠던 나였으니까.

그래도 딴에는 그런 어리석은 모습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분명 그들의 기대치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니 이런 저런 성향들 모두 조금씩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학생 시절과는 달리 철도 좀 들고 과년한 처자답게 조신할 줄도 알게 되자 나는 내 속에 잠자고 있던 얌전하고 정숙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특히 결혼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에서는 그 카드가 상당히 주효했고 빛을 발했다.

 

백번도 넘게 선을 보며 정말 각양각색 이유로 퇴짜만 놓았다는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내가 꺼내든 바로 그 카드였을 것이다.

나이차이가 제법 되는 맞선남 앞에서 굳이 자신의 본모습을 다 보인답시며 별로 내키지도 않는 억지 행동거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보인 언행은 극히 정상적이고 무난한 것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내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그렇게 엄청나고 대단한 것일 줄은 정말 꿈에도 짐작치 못한 것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면 난 지레 숨 막혀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후일 남편의 맞선녀 퇴짜의 기막힌 이유들을 듣고 보니 오히려 퇴짜를 당한 그녀들의 행운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나도 연애하면서 남편으로부터 제법 많은 언행을 지적당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속 없이 이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좋기만 했으니 내 발등 내가 찍은 꼴이다.

남편은 그야말로 깔끔하고 예의바르고 자상한 사람이다. 아무 남자나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매너가 너무 좋은 남자는 경계해야 한다지만 이 남자의 매너는 그런 과시용 매너가 아니라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었다.

지금도 딸아이가 손이 부었다고 하면 손수 기른 허브 잎으로 차를 끓여놓는 사람이다.

무거운 것 절대 못 들게 하고 내 전동칫솔 건전지도 약해지기 전에 먼저 갈아 놓는 세심한 사람이다.

 

사실 남자의 친절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특히 내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남자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면 거부감이 들고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성향이 강했던 나였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홀리듯 이끌렸다. 그는 산뜻한 매력남으로 다가왔다.

때로 언짢은 일이 있으면 얼굴이 굳으면서 몹시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상쇄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사람 좋은 웃음도 지니고 있어 그를 경계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사귀면서 그의 숨 막힐 만큼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면들을 보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을 뺏긴 나는 오히려 그를 대신해서 변명해주고 합리화시키며 내가 나를 이해시키고 있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까운 친구 하나가 내가 끝내 뿌리치고 만 다른 인연들과 지금 남편을 비교하며 했던 말이 남자 인물을 너무 밝힌다는 것이었는데 정말 인물 하나에 혹하여 모든 분별력을 잃고 만 것일까.

잘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남편의 얼굴이 너무 많이 늙고 못해졌다는 평들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까지도 내 눈엔 여전히 내 남편 이상 잘난 인물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 부분은 내 눈에 안경이고 내 연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딴엔 좀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일까, 자꾸 사설이 길어진다.

 

각설하고,

맞선 후 일주일 만에 남편은 시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냐는 말로 청혼을 대신했고 나는 배시시, 발그레, 뭐 대충 그런 귀여운 웃음으로 고개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약혼하고 그 두 달 뒤에 결혼을 했다.

온전히 함께 한 계절은 여름 한 철이었다.

서로 한껏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너무도 짧은 시간.

뭔가 아닌 것 같다라고 서로를 느꼈을 땐 이미 결혼이 코앞이었다.

 

결혼 후, 나는 마를 수 있는 것은 다 말라버렸다.

살이 마르고 피가 마르고 눈물까지 말랐다.

남편은 내게 계속 실망하고 있었고 그런 남편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정리 정돈의 달인인 남편.

비누에 물기가 있는 것도 못 견디는 남편.

몸이 조금이라도 끈적거리면 반드시 샤워해서 보송거리는 느낌을 가져야 개운한 남편.

어느 날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가 되어서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사투리를 섞어가며 <이년, 그동안 와 그래 연락 안했노>라는 말을 했었다.

지나가다 듣게 된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내가 그런 욕을 할 수 있는 여자라곤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담배를 물고 베란다로 나가선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남편은 나와 각방을 썼다.

어이없음과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내 베개는 흥건하게 젖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그런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밥이 죽이 되던 떡이 되던 타박 없이 달게 먹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들 목욕은 혼자서 도맡아 해주었다.

알뜰했고 가정적이었다.

지나칠 만큼 알뜰한가 싶었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우리 형편 이상으로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따뜻함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만 했던 것은 차츰 차츰 내게 동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강한 것은 나보다 남편이었지만 내가 아무리 해도 남편에게 맞추지를 못하자 언젠가부터 이 사람이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힘든 일이 있었어도 그런 고마움이 있어 또 견딜 수 있었다.

속상했던 지난 일들 다는 아니지만 조금씩 꺼내면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요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