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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요양원에 가세요 (2)


BY 오월 2010-07-19

너무 가난한 친정 때문에 기죽어 있던 어린 새댁에게

숟가락 몽댕이 하나 사 주신적 없는 어머님은

누구네 며느리 시집올 때 시어머니 금팔찌 해왔다더라

큰며느리 시집올 때 받은게 없어 둘째 며느리 시집 올 때는

제대로 갖춰 며느리 보고 싶다

아직 장가안 든 시동생 까지 합세해서

살다하는 결혼이라고 못마땅해 하시는 친정 엄마가

그래도 시어머님 이부자리 등등 갖춰 보내주시는 것들을

시원찮게 바라 보시며 혀를 끌끌 차시며

금팔찌 못해온 며느리를 기죽이셨다.

 

내가 어머님께 뭘 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미처 해 볼

사이도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도 사실 못했다.

시동생이 날 들으라는 듯 \" 엄마는 며느리 보면서 팔찌도

하나 못 얻었느냐\" 하는 말에 죄인인 듯 입을 꼭 닫았던

세월 아이들 돌잔치를 치르며 들어온 금붙이로 그 죄를

씻 듯 금팔찌며 돼지 목걸이며 반지며 귀걸이며

보석 다운 보석도 하나 없는 어머님이 걸려 내 것 챙길줄도

 

모르고 모두 해 드렸다 낡아서 가늘어진 아버님 반지도

금 두둑히 붙여 해드렸더니 어느 날 논에가서 두 분

멱살잡이 하시며 그 돼지 목걸이를 논두렁에서 잃어 버리셨다고

두 다리 뻗고 앉아 통곡 하셨다.

난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 것 금붙이 있는 것까지 모두 합해 해드렸지만 일단 내 손을

떠난 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내 마음을 부모님께 드린 걸로

족한다.

 

내가 어머님께 진실한 마음 열지 못했듯 어머님 역시

없는 이야기를 지어 내시기도 하고 어머님께 비싼 옷을 사드리고

친정 엄마랑 함께 가서 친정엄마는 싼 옷을 사드려도

집에 돌아 가셔서는 지들 친정 엄마는 비싼것 사주고 난 씨구려

옷 사주더라는 없는 말씀을 하셔서 함께간 남편과 실소를

하게 하시기도 했었다.

달력에 시댁에 가야할 날을 빨간 동그라미로 쳐 놓고 그날이

돌아오면 꼭 도살장 끌려가는 소 심정이 되곤 했었다.

사십두 살에 큰며느리를 보시고 살림에 손을 놓으신 어머님은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멀미로 초죽음이 되어 집에

도착해도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일을 해야 며느리의 도리를 한다고

생각 하시는 어른이였기에 지금이야 내 차를 끌고 다니기도

하고 멀미도 거의 하지 않지만 한 정거장을 옳게 가지 못했던

 

심한 멀미는 시댁에 가기 싫은 또 다른 이유였다.

내가 처음 남편을 따라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던 날

하얀 양은 솥에 풀도 아니고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것을

본 순간 속이 아파서 늘 그런걸 드시며 사는 어머님이 참 안 돼

보여서 결혼해 살면 정성듬뿍 담긴 따뜻한 죽 끓여 드리고

싶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같지 않고 어머님과 친해 지기는

참 어려워 꽤나 오랜동안 시댁이라는 곳은 참 가기 싫은 곳이

였다.남편이 스물 다섯에 해외에 나가 날 만났던 서른살

오 년 여 벌어 남편 이름으로 지어둔 이층 양옥집을 결혼식

올려주고 천만 원의 돈을 받기로 하고 시댁에 갈 때 마다 동생집에

얹쳐 산다며 술드시고 시위 하시는 시숙님께 집 등기를

이전해 드리라는 시부모님의 의견에 한 치의 망서림도 없이

그러라고 허락해 버린 참 철딱서니 없는 여물지 못한 여자 였었다.

자살 소동까지 벌여가며 지능적이셨던 아주버님께 난 애초에

제수씨 대우도 받을 수  없는 애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