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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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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향기 2010-07-08

 

 

우리집은 큰 건물 옥상에 있는 높은 2층이다.

작은 시골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집.

여름에는 옥상의 복사열 때문에 엄청난 열기에 열대야를 견뎌야 하지만

그래도 전망이 좋으니 참아야 한다.

 

저지대가 아니니 물난리 때 침수걱정을 안해도 좋으니 그것도 행운이다.

해질 무렵에는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동네 주민들의

두런두런 이야깃 소리도 들리고 집집마다 소울음 소리며 개 짖는 소리도 다 들린다.

넓은 거실문을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 일을 마치고 앞집 옆집 경운기를 몰고 들어가는 저녁 풍경이 다 보이는 평화로움이 좋다.

 

며칠전에도 그런 저녁시간이 좋아 거실문을 열어두고

컴퓨터를 하던 아들이 어떤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다.

집이 높으다보니 이런 저런 소리가 다른 집보다는 빨리 들리는 까닭도 있지만

그 소리가 그냥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다급한 소리였다는 것이다.

할머니들 저녁밥을 해 드리고 2층 집으로 올라 오니 아들이 안 보였는데

한참만에 돌아 온 아들이 경찰아저씨들을 야속하다며 툴툴거리며 들어 왔다..

 

뜬금없이 웬 경찰아저씨?

아들이 들여 준 이야기는 다소 황당했다.

아들이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 앞으로 나 있는 동넷길에서

갑자기 숨가쁜 고함소리가 막 들리고 \"놔라~놔라~\"

누군가에게서 벗어나려는듯한 급박한 소리가 들리더란다.

 

보통은 그 시간에 너무나 평화로운 동넷길인데 웬 고함소린가 싶어서 밖을 내다 보던 아들의 눈 앞에는

덩치 큰 어떤 남자가 작은 남자 한사람을 깔아 뭉개고 앉아서 마구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공격에 깔린 남자는 발버둥도 못 치고 계속 맞기만 하고...

그 순간 아들은 2층 우리집에서 급히 슬리퍼만 신고 한참을 뛰어서  마을 길로 올라갔고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는 남자를 말렸지만 술냄새가 나던 그 남자는 아들의 말을 묵살했고

깔려서 맞던 남자는 우리 뒷집의 장애가 있는 아저씨였다.

 

\"아저씨 ..때리지 마시고 말로 하세요.... 왜 그러세요~~~\"

밀쳐내면서 아들이 말렸지만 술냄새 나는 남자는 계속 주먹질을 해대서 뒷집 아저씨는 피투성이였고

놔 달라며 애원하던 아저씨는 아들을 알아보신 눈치였지만 아들도 덩치 큰 그 남자를 떼 내진 못했다.

아들이 급히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서 폭행사건이 일어나 피가 많이 나니 빨리 출두해 달라고 그랬지만

5분이면 달려 올 거리에 지서가 있었지만 15분이나 더 지나서 경찰차가 왔다니 참....

그 사이에도 술 취한 남자의 폭행은 이어졌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아들 혼자 막아 낼 도리는 없었다.

 

한참만에 온 경찰이 사건 경위를 조사한 결과는 이랬다.

요즘 시골에서는 한창 수확기라 마늘이며 양파를 작업하는데 일꾼들이 태부족이다보니

맞은 아저씨네가 통상 일꾼의 일당보다 웃돈 만원을 더 주고 일꾼을 샀단다.

그러다보니 일꾼들이 다 그 집으로 몰려 가 버려서 일이 제대로 안되어 차질이 생겨 버린 것.

화가 난 그 남자가 한잔 먹은 김에 뒷집 아저씨를 폭행 한 것이었다.

경찰이 와서 신고가 들어 왔으니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자고 하는데 뒷집 아저씨는

처벌은 원치 않으니 그냥 보내주라고 했고 늦게사 집에 안 돌아 온 아저씨가 궁금해서

마을길로 나와보던 아줌마는 노발대발~~~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아저씨를 그리 만들었다고 술 취한 아저씨를 호되게 야단치셨다.

당장에라도 경찰서에 가서 벌을 받기를 원했지만 뒷집아저씨가 말렸단다.

그냥 보내주라고..우리가 돈을 더 줘서 그리된거라고.....

참 맘씨도 곱지...온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셨어도 그리 맘을 곱게 쓰시니....

맞은 아저씨가 처벌을 안 바라니 더 이상은 일이 커지지 않았고 경찰도 갔다.

그랬는데 아저씨랑 아줌마는 우리 아들이 아니었으면 죽을뻔했다고까지 하시며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하셨다.

 

그냥...큰소리가 나서 내다 보다가 신고했을 뿐이라고 아들은 돌아왔는데

그 아저씨네는 그 일을 너무 고맙게 생각하셨다.

술취한 남자가 화가 나서 장애가 있는 아저씨를 심하게 팼더라면 어땠겠냐고....

신고 안 해 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시며 뒷날 일부러 내게 인사를 하러  오셨다.

아들한테 고맙다시며 몇번이나 인사를 하시더니 기숙사에 간 아들한테 전해 주라시며

내 손에 돈 2만원을 꼭 쥐어 주셨다.

처음에는 아들을 만나려면 언제 와야 하는지를 여러번 물으셨지만 토요일 밤에 나왔다가

이튿날 일찍 교회갔다가 학교에 도로 가야 한다시니 대신 전해 주라시는데 만류해도 기어코 주신다.

 

더운데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고 공부하라고....

힘들게 농사지으시는 농촌에서는 그 돈 2만원이 얼마나 큰지 잘 안다.

알감자 굵은 거 한 박스값이며 마른고추는 거의 세근 값이라는 거.

메추리알만한 감자 한알도 허투루 안 버리는 농촌에서는 감자 한박스는 아주 큰 농사다.

마른고추 세근을 만들려면 농부의 일손이 수백번도 더  가야 한다는 거....

그런 귀한 걸 팔아서 만든 돈 2만원은 그냥 2만원이 아니라 농부들의 땀방울인 것이다.

 

아무도 안 말려줬더라면 일철에 큰 일 당해서 앓아 누울뻔 하셨다는데야....

학교에라도 찾아가서 선생님한테 이야길 해야 된다시며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만약에 그 술취한 아저씨가 아들을 패기라도했더라면 ...아찔했다.

맞은 아저씨가 처벌을 원했더라면 폭행전과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 화풀이를 아들 탓으로 돌려  나중에라도 할까 봐 아들한테 말은 안했지만

엄마입장에선 뒷감당이 겁이 나긴 했었다.

 

그래도 아들은 남자였다.

불의 앞에서 비굴하게 뒷걸음질을 안 친 작은 남자였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 아저씨가 앙갚음으로 우리집 앞에 진을 쳤다가 해꼬지를 할까 봐 지금도 걱정은 된다.

솔직히 며칠간은 은근히 낯선 남자가 우리집에 올까 봐 슬금슬금 눈치를 보긴했었다.

 

일주일 후 집에 돌아 온 아들한테 포상금 2만원을 전해주니 싱긋~이 웃기만 했다.

경찰아저씨들이 너무 늦게 출동한다고 불평은 했고.

그러다가 진짜로 심하게 폭행하면 사람 죽겠더라고.....

동네싸움이라 그러다가 말겠거니~했던건지.

농촌에는 장정들이 없고 일 철에는 이집 저집 품앗이로 일을 하는 판국이니

다른 동네에서 삯일꾼을 사 오긴 해도 일손은 태부족이다.

나라도 거들어 드리고 싶지만 일년중에 가장 큰 행사가 딱 그 일철하고 맞아 떨어진다.

농부들 못지 않게 이 사람도 바쁘다보니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