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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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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조리사 3수생의 변명.....


BY *콜라* 2010-07-01

 

 

 2001

구청에서 운영하는 한식과 일식, 출장요리사반을 다녔다.

결혼하면 멸치볶음, 된장찌개, 콩자반 아닌

요리책 사진처럼 차려 주는 줄 알았다는 남편의 떠밀림이라고 봐도 좋겠다.

 

실습을 핑게로 먹는 것에 정신 팔렸던 날라리 학생이었지만

재미로 본 이론 시험이 합격하자 은근 욕심이 나서

이른 바 조리사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론에 합격 후 만만한 한식부터 접수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 입구 서점에서 하얀 가운이랑 앞치마, 두건을 규격품으로 구입,

어리버리한 폼으로 들어 간 시험장엔

21조로 200명이 한꺼번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조리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내 수험번호가 적힌 자리를 찾아, 행주와 키친 타올, 가위, 이쑤시개, 과도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비장한 각오로 섰다.

 

그런데, 옆 사람 준비물을 보던 나

깜짝 놀라고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생겼다.

 

, 가장 중요한 식칼이 없다.  
조리사가 식칼 없으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감하다.

 

좌우에는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인 듯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남자애들이 눈짓 교감을 하는 폼이

자신 만만해 보이는데 자신감마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오른쪽 녀석에게 어떻게 좀 친한 척 해서 칼이라도 빌려 볼 요량으로

작은 목소리로 \'요리 잘해요?\' 물었더니 잘 모르는데요한다.

 

시험과제를 본 나는 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만두국과 도라지 무침


만두를 싫어해 만두국을 강의 하던 날 결석까지 해서

태어나서 한 번도 만두피라는 걸 직접 만들어 본 적도 없고

 

게다가 나는 물에 빠진 만두, 절대 거부하는 사람이다.

 

, 과도로 야채와 마늘 고기를 다질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애를 썼지만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런데 오른쪽 샌님 머슴아가 갑자기 재료판을 엎어 쓰레기통에 쓸어넣고

황급히 짐을 챙기며 나가려는 찰나!

 

야아... 칼 좀 빌려 줄래?…”

짜슥, 두 말 않고 칼을 툭 던져주고 나가버렸다.

 

 

~~
겨우 한 숨돌리며 엄니랑 형님이 만두를 어째 빚더라
. 떠올리려 애쓰다가

하는 수 없이 가스레인지를 함께 사용하는 짝꿍 머슴아를 컨닝 하기로 했다.

누나 , 그것도 이쁜 누나가 좀 보는 낌새면

잘 보이도록 비켜 서 주고 보여주는 게 뼈대 있는 가문의 머슴아 아닌가.

 

근데…… 이 얄미운 놈가스레인지를 함께 사용하니까 지가 간장 넣을 때

내 만두국물에도 슬쩍 한 숟갈 넣어줘도 되고

반죽할 때 물 양도 슬쩍 좀 보여 줘도 되는 분위기인데

물어봐도 입 꾹~~~~~~~ 다물고, 팔꿈치로 슬쩍 슬쩍 가리기 까지 한다.


시험관에게 들킬까 콩알만한 목소리로 콩닥거리는 가슴 진정하며

게다가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묻는 이 누나의 물음에 즉각 대답해야지

여기. 만두국물에 간장 넣었어요? 했더니 
~

달랑 한 마디다. 나쁜 시키.

하는 수 없이 가자미 눈으로 훔쳐보며, 짜슥이 물 올리면 나도 물 올리고
 
지가 반죽하면 나도 반죽하고, 소금물에 도라지 담그면 도라지 담고

자르는 대로 어림잡아 자르고
..

 

이 한식조리사 시험이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조리과정도 채점 대상이므로 무면허 운전 10년 하던 사람이 면허시험 떨어지듯

그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었다.


완성된 만두의 직경이 5센티 크기로 다섯개 빚으라는  과제에

만두피를 5센티로 잘랐으니 꼬마 물만두가 되어 버렸다.

그 녀석 만두는 딱 정확한 크기로 다섯 개, 누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부랴부랴 다시 만들어서 어째 어째 내긴 했지만

하두 곁눈질을 했더니 나중엔 머릿골이 아팠다. 

으이그~ 컨닝 인생
..


누나 좀 보여준다고 자기 점수 깎이는 것도 아니고

만두 크기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완벽하게 빚은 하얀 만두 다섯 송이 딱 제출하는 얄미운 시키~~~!!\'
짜슥미워지려고 했다.


그런데 갸가 미나리를 삶기에 나두 삶았는데
마름모꼴로 작게 잘라두기에 저게 뭐 하는 거지??? 무지 궁금하더만
내가 자세히 보기 전에 작품을 제출한 뒤라그 용도가 무지 궁금해서

집에 와서 확인 한 결과, 그것이 미나리 \'초대\'란 걸 알았다.
ㅎㅎㅎ

 

그래도 누나 체면을 살려 준건 계란 지단이다.

젓가락 하나면 끝나는 지단은 매끈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

그 녀석 지단은 공기구멍 뽕뽕 나게 만들었지만

그건 화력의 조절이란 걸 모르더라는 것. 그러게 나이가 공짜로 먹는 게 아니라니까.

흐흐


\"물 얹으면 물 얹고, 도라지 두드리면 도라지 두드리고
 다지고 김치 다지고 고기 두드려 다지고....그걸 왜 안 보여주려 하냐고.

시험 떨어 진 후 투덜댔더니 

남편은 더 내 편이 아니다.

 

시험인데 보여 주는 게 어딨냐

그럼 시험이니까 보려는 거지, 먹을 거면 내가 지보다 더 잘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떨어졌다. 화양적에서 또 표고전에서.

그 사이에 본 일식은 단번에 합격해 놓고, 우습게 본 한식조리사에서 3수생이 되었다.

 

2010, 바야흐로 주부 경력 100단인 콜라, 이제는 자신 있다.

기다려라, 한식조리사 대한민국 국가고시야.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