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장만을 했다
십 년도 넘게 사용하던 전자렌지가 고장이 나서 낡은 제품 수리비 지출도 새삼
아깝다 싶어 고장난채로 몇 달을 방치하고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금 나와라 뚝딱 요술을 부린듯
식탁위에 디자인도 색상도 세련된 최신형 전자렌지가 올려져 있었다
옛 어른들 말씀에 딸은 살림 밑천이라 하시더니
그말이 맞는지 딸 아이의 이쁜짓이었다
예쁜 딸!!!
대학 졸업 전 해운 선박회사에 취직이 되어 인턴 사원을 거쳐
졸업전 정식 직원 발령을 받고 사회 첫 발을 아주 순탄하게
시작했던 예쁜 딸
또래 직원들과 마음도 잘 통하는지 퇴근 후 모임도 많고
집안의 어려움에 맘 고생도 솔찬이 많았던 딸이여서
엄마된 입장으로 사회 생활에 적응 잘해가는 딸 아이를 보노라면
내심 얼마나 흐믓하던지...
월급타면 적금도 알뜰하게 붓고
취직전인 친구들에게는 아깝지 않게 시샛말로 밥도 잘 쏘고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첫 번 월급부터 생활비에 보태라며 금일봉으로
살림에 실질적 도움을 주던 예쁜 딸
하지만 밝고 명랑하던 딸아이 얼굴에서 어느 순간부터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불어 닥친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경영난에 시달리던 회사는
급기야 급여까지 반으로 나눠 지급되고 직장에 정들은 동료들이
차츰 하나 둘 퇴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의 송별회를 하고 늦은 귀가를 하던 날
딸 아이는 내게 심각하게 의논 겸 통보 겸
\"엄마 나 직장 그만 두려고 하는데 딱 3개월 정도 쉬면서 취업 준비하고
다시 취직 할거야~\"
나는 안다
딸 아이가 퇴사 결정을 하고 내게 속내를 들어내기 까지
여러 번 입안에서 맴맴거리다 내 놓은 말이라는 것을~
50을 넘어 선택의 여지없이 일하는 엄마를 곁에서 바라 보면서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연장까지 하며 취업 준비를 하였지만
아직도 취업 전인 오빠를 답답한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 보면서
결코 마음 편한 결정이 아니였으리라는 것을~
딸 아이는 나름대로 고심 끝에 퇴사를 하고 쉬는 날 없이 바로 다음날 부터
종로 토익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아침에 나가 학원 수업을 듣고 학원생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귀가를 하면서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보냈다
딸 아이가 직장을 그만두자 곧 바로 직장 의료보험 상실 통보가
집으로 전해지고 내 밑으로 20대 장년의 아들과 딸이 나란히
올려진 보험 카드가 새로 만들어져 왔다
딸 아이는 그랬다
\"엄마 이렇게 쉴때 엄마와 나 중국 상해로 여행 갈까?
비행기 표만 끊어서 내가 중국어 소통 가능하니까 가이드 할게~\"
그러나 딸도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냥 날만 잡다가 여행 계획은
그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하니 왜 그때 계획을 밀고 나가지 않았나 후회 막급이다
서너달 정도 재 취업의 시간을 계획했던 딸
하지만 한 달이 조금 지나
딸 아이는 아주 멋진 홈런을 치면서 재 취업에 성공을 하였다
국내 최대라고 자부하는 D증권사에 이천명도 넘게 지원한 공채에
최종 합격하여 3주간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어제부터 정식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전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연봉도 많고
직원 복지도 탄탄한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재 취업 기념으로 연수 교육 무사하게 끝내고 집에 오던 날
예쁜 딸은 사진에 보이는 전자렌지를 사들고 집에 와 깜짝 살림 장만을...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뭉쿨합니다
정겨운 에세이방님들 제 기분 어떤지 여러분 아시죠?
PS--한동안 에세이방에 걸음이 뜸했네요 딸 아이도 그렇고 아들 녀석도
그렇고 청년 실업의 심각성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었네요
전에 더 마음 쓰리고 아프던 날에도 술술 풀려 나오던 글이
왠지 답답하게 써지지 않더군요~ 그동안 모두 안녕들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