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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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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개(犬) 사랑, 올 여름엔 그만......


BY *콜라* 2010-06-26

개를 아주 아주 사랑하는 친정 식구들.  

아버지, 엄마, 큰 오빠, 작은 오빠, 언니와 형부, 그리고 두 올케들까지...

결혼할 때 키우던 개도 예물로 데리고 갔으니 나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때 우리 집 대청마루 밑에 진을 치고 살던 개들의 숫자는

암 + 암+ 숫 혹은  암+숫+ 숫, 기본이 세 마리였다. 

 

새끼라도 낳는 날이면, 순식간에 열 마리 이상으로 늘어난 개로

집안은 완전 개판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을 거쳐간 그 수많은 개들의 이름은 \'해피\' \'메리\'

딱 두 가지 뿐이었다. 

  

해피가 새끼를 낳으면 해피 큰 놈, 해피 작은 놈, 해피 눈 큰 놈

메리가 새끼를 낳으면 메리 큰 놈, 메리 작은 놈, 메리 통통한 놈……

 

등허리에 번들번들한 기름기 흐르는 털을 휘날리며

엄마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던 놈들은

툭하면 어디서 배 불릴 짓 하고 와서 새끼를 많이도 낳았다.

 

사람이나 개나 할 일 없으면 엉뚱한 생각 하기 마련.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가난한 집에 애는 왜 많았을지 알만 하다. 

 

놈들이 빗자루 만한 꼬리를 흔들면 \'아이구 우리 새끼...우리 새끼\' 하면서

쓰윽쓰윽 쓰다듬어 주시던 엄마.

나는 그렇게 개와 한 솥밥을 먹고 자랐다.

 

개들을 보살피는 엄마의 손길이 바빠지는 기색이 보이면

필시 며칠 이내 놈들 중 누군가 새끼를 낳았다. 

생쥐 만한 것들이 꼬물대는 광경이란 신비하다.     

새끼들을 혀로 핥으며 모든 인간과 동물의 접근을 강력히 거부하는 어미의 눈빛에는

결연함 마저 감돈다.

 

돼지 등뼈와 북어 대가리를 고아 만든 국물에 밥을 말아서 수시로 대령하며

보살피는 엄마의 손길은 딸의 산간하는 친정어미 못지 않다.

 

열 놈이 빨아댄 젖꼭지가 헐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며

엄마 젖 독차지하는 힘 쎈 놈들을 떼어내고 허약한 새끼에게 젖 물리느라

밤엔 손전등을 비춰가며 감시했다.

 

새끼들이 눈을 뜨고 마당을 헤집고 다닐 즈음

엄마는 어미 품에서 새끼를 떼어내어 읍내 5일 장에 내다 팔 준비를 했다.

 

밤낮 거두고 먹이며 애정을 쏟을 때와 달리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끙끙대는 어미의 슬픈 눈빛 따윈 안중에도 없이

인정사정 없이 빨간 딱지 딱딱 붙이고 떠나는 집달관처럼

냉혹한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을 나는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주인에게 새끼를 빼앗긴 어미는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새끼를 찾아 구석구석 체취를 맡으며 헤매는 모습은

짐승이라 무시하기엔 모정이 너무 커 보였다.  

 

나는 새끼를 팔고 돌아오는 엄마의 손은 언제나 빈 손인 것이 그리 서운했고

돈의 행방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일은

해마다 삼복날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복날 아침이면, 마당 가운데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고

엄마는 시내에 사는 삼촌들과 고모, 동네 어른들까지 모두 불러들여

\'복 따름\'이라는 잔치를 벌였다.

 

그날은 더위에 기력을 더하려는 노인들과 삶에 시달려 기운 떨어진 중생들을 위해

해피와 메리 중 한 놈이 장렬히 가마솥으로 몸을 던져

뼈와 살은  보신탕이 되고, 껍질은 훈제된 별식으로 상에 올려졌다.

 

더운 날씨에 혼자 그 많은 손님 치르느라 엄마는 허벅지가 쓸려 아파했지만

나는 방문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엄마를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며 좋아하던 해피

해피를 딸보다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부르며 입에 든 고기도 뱉아 주던 엄마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피를 살해(?)한 다음

직접 대파에 부추, 깻잎 넣어 부글부글 끓여 사람들에게 나눠 먹이는 걸

도저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국민학교 5학년 여름,  개 죽이지 말자고 사정하는 내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메리 한 마리가 감나무에 매달려 죽던 날, 가출을 했었다.

도저히 저런 엄마랑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이 이유였다.

가출은 실패로 끝났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대구 시내로 단과전문 학원엘 다녔다.

우리 시골에서 대구 시내로 학원을 다니는 유일한 아이였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장롱 위 빈 와이셔츠 상자에 넣어 둔 엄마의 소장품들 속에서

통장 하나를 발견했다.

 

그간 우리 집을 거쳐 간 수많은 해피와 메리 들은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오빠의 책도 되고 차비도 되고 쌀도 되고

내 학원비도 되고 빨간 엑스란 내복도 되었다는 걸 입출금 내역이 말해 주고 있었다.

 

교육보험증권과 함께 입금 기록이 더 많은 농협 보통예금 통장.

엄마는 해피와 메리도 사랑했지만

내 자식 사랑 앞에서 또 다른 사랑을 포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엄마와 나의 개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 처럼

우리 가족들은 서로 다른 이유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개를 평생 사랑하고 있다.     

 

아버지와 두 오빠, 언니와 형부가 속한 팀은,

개를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피와 살로 함께 살고 싶어

개만 보면 환장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혈질인 세 사람은 자잘한 말 한마디에도 쨍그랑 대면서

자다가도 개 먹자~ 한마디면 단번에 뭉치는 팀웍이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급이다.

 

엄마와 큰 올케가 한 조가 된 팀.

개고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주는 고기 거부하진 않는 회색빛깔이다. 

대신 수육, 편육, 껍질 요리, 내장 요리, 탕에서 냉채까지

개고기만 던져주면 휘날리는 손길로 무궁무진한 맛을 재창출해 내는

우리 이씨 문중에는 그 솜씨를 따라 올 자가 없어

가끔 초빙 보신탕 조리사로 친척집으로 출장 조리도 나간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조카 둘, 작은 올케 팀이다.

이 팀은 뭘 먹어도 \'개 먼저 나 뒤에

외식을 가도 개 한 숟갈, 나 한 숟갈\' 이러니

작은 올케는 여행을 갈 때 돈 보다 개 잘 보살펴 줄 사람부터 구한다.

 

먹거리와 수입원과 가공팀, 대책없는 사랑팀.

그 사랑의 색깔은 참으로 첨예한 대립 구도이지만

슬프게도 \'사랑\'이라는 같은 말로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올 여름에도 개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한 마리의 메리가 잘 먹고 잘 자며 체력을 기르는 중이라고 한다.

 

개 사랑!

피와 살로 한 몸되어 아끼는 사랑은 이제 멈춰야 한다.  

세상에는 몸에 좋은 영양제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왜 하필 인간과 반려하는 동물 중의 으뜸인 개를 온 몸으로사랑하는 지.....

 

그간 우리 집에서 희생된 견공들과

오늘도 어느 보신탕 집 주방에서 대기 중인 많은 견공들이 명복을 빌며    

그리고 누군가의 몸 속에서 피와 살로 남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주길 바라면서

먹는 이들을 대신해 미안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