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유난히 추웠던 탓에 결로로 인한 곰팡이가 구석에 많이 생겼다.
게다가 발코니 확장을 했더니 방이 추워서 안되겠다.
고심끝에 단열재를 방마다 보강하기로 결정하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가구안의 옷가지며 이불,책들을 꺼내 박스안에 넣는 작업을 며칠 한 후 공사 기간에는 친정에서 지냈다.
공사 끝난 후에는 가구를 원래 자리에 놓고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남편은 휴가를 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맡긴 후 우리는 오랜만에 단둘이 지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일이 산더미다.
벽지의 풀이 마르려면 오후나 되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주말에 공사하느라 농장에 못갔기에 그 시간에 농장에 가서 잡초나 뽑고 물을 주고 오자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상추와 쑷갓,열무가 그새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옆의 밭의 노부부에게 어찌해야 할지 여쭈었더니 얼른 뜯어주어야 또 자랄수 있다 하신다.
예상치 않게 채소들을 뜯어보니 소쿠리에 한가득이다.
남편이 시골출신이라 철썩같이 믿었는데 밭 갈줄만 알았지 씨뿌리고 거두는 것은 전혀 모른단다.
아주머니께서는 채소 뜯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젊은 사람들이 어찌 밭을 가꾸는 일을 생각했을꼬. 우리 아이들은 이런 일은 아예 할 생각조차 못하는데...상추도 맛있게 잘 되었네”
알고보니 그 부부는 씨를 심어서 아직도 싹이고 우리는 모종을 심어서 지금 먹기좋게 잘 자라 있었다.
상추와 쑷갓을 노부부에게 나누어 드리고 또 절반은 친정집에 갖다 드리기로 했다.
앞으로 1년동안 야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돌아오는 길에 행주산성 근처 유명한 국수집에 들렀다
늘 줄이 길게 서 있어서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런가 했는데 오늘은 줄이 없다.
알고 보니 장사가 너무 잘돼서 옆에 별관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린 그 맛있는 국수를 먹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맛이 특별하지는 않았고 다만 등산이나 자전거 타고 가다 출출할 때
3천원으로 푸짐한 양의 국수를 먹을 수 있는 것이 대박의 요인인 듯 싶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합석을 자연스럽게 요구했고 우리 앞에 어떤 부부가 앉았다
국수 양이 너무 많아 여자가 조금 먹고는 일어난다. 거의 대화가 없는 그들...
그 남편은 좀 떨어져서 여자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자가 남기고 간 그릇안의 국수는 거의 그대로 있었다.
“아휴~ 겨우 요거 먹으려고 왔어?”
나는 세수대야 안의 국수를 거의 다 먹었지만 조금 남겼다.
더 먹을수 있었지만 차마 먹을 수 없었다. 내 마지막 자존심을 국수 몇가닥에 남겨 놓았다. ㅎㅎㅎ
남편은 가끔 애들 어린이집 맡기고 자전거 하이킹 같이 오자고 한다.
신혼때 딱 한번 그랬다. 숙달된 조교, 남편의 코치로 자전거를 열심히 탔었지.
너무 오랜만에 타본 자전거라 타면 바로 픽픽 쓰러져서 둘이 함께 언제 안양천 한바퀴 돌고 오냐며 채근한 남편에게 보란듯이 그날 바로 안양천을 돌다가 왔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땐 언제나 나는 엄마였는데 남편과 단둘이 나오니 문득 내가 누군가의
아내이고 여자이구나 싶다. 1년에 딱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그런 날..
갑자기 얼마전 TV에서 ‘세바퀴“를 재방송한 내용이 생각났다.
“자기야, 얼마전 TV 프로그램에서 내 아내 이런 줄 몰랐다는 앙케이트에서 3위에 올라온게 뭔지 알아?“
“글쎄...”
“내 아내 이렇게 많이 먹는 줄 몰랐다,이렇게 겁 없는 줄 몰랐다,이렇게 코고는 줄 몰랐다 등이 있는데 3위에 올라온 게 너무 충격적이더라구“
“그게 뭐지?”
“글쎄.. 내 아내 친정이 이렇게 가난한줄 몰랐다.. 래.”
남편은 듣고서 너무 웃겼는지 한참을 웃었다.
“하긴..남자들은 집을 얻어야 되니까 형편을 어느 정도 알 수있는데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속보이잖아”
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남편 하는 말,
“나도 내 아내 이런 줄 몰랐다 있는데...”
난 순간 긴장했다.
“응? 뭔데?”
“내 아내 이렇게 요리 잘하는 줄 몰랐다. 난 진짜 결혼하면 제대로 얻어먹으리라 기대도 안했는데 의외로 너무 잘하더라구..“
“아이구, 이뻐라. 그거 칭찬이지?”
오랜만에 우리 부부는 다정한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앙케이트 3위는 치사한 남자의 본색을 보여준다.
이 남편도 겉으론 웃지만 속으로는....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래도 아내에게 절대 들키지 않으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아는 우리 남편,
당신은 센스쟁이 우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