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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가다


BY 카라 2010-05-06

어린이날, 아이들을 데리고 인천에 있는 수도국산 박물관을 관람했다.

그 지역의 60~70년대 달동네를 재현해 놓은 곳인데 부엌을 포함한 집, 이발소,

동네 구멍가게, 골목길 벽의 포스터 등이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구멍가게 안을 들여다 볼때는 아 맞다 저것도 있었지! 하면서 놀라게 되는데

추억의 쫀드기, 눈깔사탕, 삼양라면, 양초, 그 밖에 많은 군것질거리들이 그 시절의 향수를 자아낸다

부엌을 들여다 보니 노란색 양은 찬합이 눈에 띈다.

엄마는 어릴적 운동회날에는 어김없이 거기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셨지.

가족 나들이를 갈때도 늘 함께 했던 양은 찬합...

60~70년대라 부엌이 주로 아궁이형태였는데 내 어린시절엔 석유풍로를 주로 썼다.

 

지나가다 보니 골목길엔 연탄도 쌓여있다.

우리집 난방도 그때는 연탄보일러여서 하루에 몇 번씩 갈던 기억이 난다.

불꺼트리면 번개탄을 가져다 불 붙여서 연탄 밑에 깔았었다.

매케한 연기에 기침을 연발하면서 하던 그 일이 왜 그리 귀찮았는지...

연탄 갈기 체험도 있었지만 그냥 패쓰~

저걸 뭘 체험씩이나 하랴. 너무 지겹고 귀찮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난 싫여~

이 다음에 울 애들 크면 실컷 체험시켜주리라.

친정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엄마뱃속에 있을 때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하마터면 일가족 모두 저 세상으로 갈 뻔 했다고 한다.

다행히 주인집 아줌마가 발견하여 빨리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뻔 했다고. 배속에 있던 나도 유산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무사했단다.

아무튼 나도 어릴 때 연탄 갈다가 가스마시고 쓰러진 적도 있어 그 놈은 도무지좋은 기억이 아니지만,

물가와 가스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엔 농장을 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시 연탄이 난방 연료로 인기를 얻고 있다니 미우면서도 한편으론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어느 집 안을 들어가보니 마루가 있고 벽에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이 걸려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조부나 조상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 없지만 사진을 통해서라도 매일 우리에게도 존재의 근원이 있음을 매일 느낄 수 있었지.

요즘은 명절 때 차례상에서나 느낄 수 있지만...

이런 집 구조는 아직 우리 시댁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전시를 해놓으니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건넌 방에 다리 네 개에 문이 달려있는 텔레비전을

보니 아!저거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어릴 때 아버지가 밭일 나가시면서 매일 문을 잠그고 나가셨다고 한다.

우리집엔 문이 없는 그냥 텔레비전이었고 친구집에 가면 늘 봤던 것인데 아마도 문이 달린게 더 비쌌던 것 같다.

 

다시 조금 걷다보니 빨래를 하는 뒷켠이 있고 사다리가 놓여 있는 옥상이 보인다.

옥상 빨래줄에 바람에 흔들리는 옷가지들과 빨래집게에 하나씩 걸어놓은 생선들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언제였던가 속초 여행을 갔을 때 집집마다 한치와 생선들을 빨래줄에 걸어놓은 것을 보고 재미있어서 바로 밑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왠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비릿함과 함께 정겹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식탁위에 구워지는 그날까지 사람들과 동거동락하다 결국엔 입안의 맛있는 기쁨을 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마지막엔 기념품 판매점에 들렀다.

가위질을 좋아하는 아들넘에게 종이인형을 사줬다.

원래 공룡을 좋아하는데 여자아이와 옷이 그려진 종이를 무척 좋아했다.

집에 가서 가위질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젖어서..

짜식 어릴때부터 분홍색 좋아하더니 취향이 여성적인 것 같다.

사내아인데도 피부가 하얘서 분홍색 티셔츠가 잘어울려 자주 입혀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천원짜리 뽑기를 했는데 1등 상품이 못난이 인형, 2등은 추억의 뽑기도구(달고나)다.

못난이 인형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상품은 쫀드기와 돌사탕 3개다.

아이 둘과 남편이 한개씩 입에 넣었는데 돌사탕이라 아무리 깨먹어도 안깨진다며 결국은 빨아먹다 남편은 뱉고 아이들은 신나게 빨아먹는다.

 

박물관 들어오기 전 밖에서 풀이 난 계단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었다.

아침에는 안먹길래 남은 거 그냥 싸왔는데 아이들이 아주 잘 받아먹고는 더 없냐며 도시락통을 기웃거린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들도 아침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이 차타고 걸으면서 허기져서 잘 먹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말했다.

“지들이 배가 고파봐야 먹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요즘, 배고픔의 고통을 잘 모르는 요즘의 아이들이 그 시절의 빈곤하고 녹록치 않은 삶을 어찌 이해할까마는

가끔 이런 곳을 방문하여 그 시절을 느껴보고 자원과 물건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좋겠다 싶다.

 

오후 점심은 느긋하게 바닷바람 맞으면서 회를 먹었다.

서비스로 산낙지가 나왔고 개불,멍게가 나왔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아이들은 칼국수를 먹으며 식당안을 뛰어다닌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손가락으로 양눈 끝을 삐죽 올리며 장난하는 딸아이에게 ‘사과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미운 얼굴을 하던 딸아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손을 반짝 반짝 움직인다.

비뚤어진 눈이 금새 예쁜 눈이 되어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