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둘째 언니가 전화가 왔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중에 무슨일일까 걱정하며 전화를 받고보니
역시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큰 형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대장암에 다른 장기까지
전이가 되어 금요일에 수술을 할 예정인데 아마도 수술을 한 후에는
의식이 없을지도 모르니 보고싶은 사람들 한번씩 와서 보라는 말입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그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큰형부는 85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테니스를 치시고 항상 어학 공부를 하시고 책도 많이 읽으시고
참 아름답게 노년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시고... 언니랑 재미있게 사셨는데
갑자기 대장암이라니...
구정에도 가서 뵈었는데 우리 처제 왔다며 나를 꼭 안아주시던 큰 형부
친정 아버지 같은 형부는 늘 온화한 미소로 내가 가면 꼭 안아주십니다.
형부 딸은 나보다 한 살이 많지만 난 이모가 된답니다.
전어머님이 아파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가 새엄마로 들어오셔서
우리 사남매와 사남매를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내 자식은 공부를 못 가르쳐도 우리 둘째오빠는 인천 교대까지
공부를 시키신 자랑스러우신 친정 엄마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이쁘고 사랑이 많으신 울엄마가 들어오시니까
너무 행복했답니다.
언니 엄마는 늘 아파서 누워 계셨고 아픈 엄마로만 기억이 되었답니다.
둘째 오빠가 첫 돐이 지난 때 엄마가 오셨으니 엄마는 친아들처럼 키우셨답니다.
내 어릴적 기억은 그 오빠가 군에서 휴가를 오면 하루에 하나 낫는 계란을
아침이면 엄마가 오빠만 젓가락으로 앞뒤를 깨서 주셨습니다.
오빠는 후르륵........ 하고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게 보였던지....
어느날 엄마가 장사를 나가신 후 동생과 나는 닭이 계란을 낳았는데
안낳았다고 하고 둘이 계란에 구멍을 내서 마셔 보았는데
비릿하고 먹을수 없어서 흙에다 묻어버렸다
동생과 나는 엄마 오시면 오늘 닭이 알을 안 낫다고 하자고 했다
저녁나절 엄마가 오셨는데 엄마는 닭장으로 계란을 가지러 가셨다
계란이 없자 어디갔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동생과 나는 닭이 맨날 알을 낫는다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엄마 ! 오늘 알을 안낳았는데요 했더니 엄마는 거짓말 시킨다고
부지깽이로 우리들을 혼내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늘 우리들 보다 둘째 오빠를 사랑해 주셨다
큰 오빠는 6.25 때 의용군으로 북한으로 끌려가 실종 신고를 한적이 있었다
엄마는 큰 오빠가 늘 보고싶다고 했다
사흘밤이면 자고 온다던 큰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는데
남북 이산가족 찾기 3회때 오빠가 북한에서 우리를 찾았다.
롯데 호텔에 가서 마흔 다섯명의 형제자매들이 교대로 오빠를 만나기도 했었다
오빠는 김일성 대학을 나오고 김책 사범대학을 나오셨다고 했는데
3차에 온 사람들 중에 서열이 3위라고 하셨다
오빠를 만나러 갔을때 나에게 글 하나를 읽어주셨는데
싸릿문 나서며 사흘밤 자고 온다던 아들이
오십년만에 돌 아왔습니다.. 하며 서두를 읽는데 오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엄마는 88세의 연세로 그 아들을 만날수 있어서 맘에 한을 풀고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들
사랑하는 우리집 제일 큰 형부가 이제 아프시다
오랫만에 만나도 아버지 같은 사랑을 주시던 우리 형부
어릴적엔 형부가 오시면 수줍어 언니 치맛자락 뒤에서 숨곤 했는데
이젠 형부를 뵈올 날들이 점점 멀어져간다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오늘은 점심 시간을 부랴부랴 마치고 두시간을 달려 인천 병원으로 갔다
형부는 열흘이나 곡기를 끈으시고 드실수 없는 형편이 되셨다.
주사로 영양제를 공급하기에 그나마 기력은 있으셨다
눈감고 주무시는 형부 곁에서 기도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와 조카와 잠시 휴계실로 나왔다
조카는 아버지 앞에서 이모 울면 안돼.. 아버지는 지금 어디가 아픈지 무슨 병인지 모르신댄다.
응.. 안 울께 ..
언니는 복지관에 갔다가 점심이 되면 형부 점심 드리려고 친구들과 커피도 못마시고
부랴부랴 오신댄다.. 그러면서 어느땐 미운 생각도 들고 귀찮은 생각도 들었댄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면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또 약주를 많이드시는걸 보면 또 미웁고 그랬단다
이제는 이제는 함께 할 날이 많지 않으니 어떡하냐고
형부 손을 붙잡고 여보 ! 오래오래 살아 변을 잘 못봐서 옆구리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하는거니깐
힘내요 하며 서로 붙잡고 울었댄다.
부부란 미운정 고운정 그 정으로 살아온 세월속에 부부다
딸 다섯에 아들하나 낳고 선생님 월급으로 힘든 세월을 살아 온 우리 큰언니 형부
큰소리라곤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참 착한 우리 형부 언니
언니 얼굴에 눈물이 맺힌다.
애써 언니...... 힘내
서울로 빨리 달려와야하는 형편에 형부가 일어나셨나 병실로 가보니
잠에서 깨셨다..
형부 저 누군지 아세요? 이름이 뭐지 하고 언니에게 물으신다
효...... 으응 효숙이구나 처제가 아니고 늘 딸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신 형부
우리 남편도 아시고..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
형부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5일후에 보자? 하신다
수술하고 나면 꼭 나을거고.. 다시 운동도 하실 희망이 있으시다.
제발 그렇게 그렇게 되셨으면 좋겠다.
인사를 하고 돌아나오며 형부 .. 힘내세요 . 눈물이 핑 돈다
살아 있음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병실을 나오며 또 다시 힘을 낸다
일해서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칠수 없는 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나는 살아가려고 일해서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지 말아야겠다
그저 살아 있음만도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