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를 끌고 가다 어느 옷가게집을 무심코 쳐다보게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상상속에서 언제나 입고 다니던 분홍색 땡땡이 원피스가
걸려있는게 아닌가?
한평생 살아오면서 그런 디자인을 실제로 본건 처음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분홍색 바탕에 하얀 땡땡이, 플레어 스커트가 아닌 H형의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주는 심플한 디자인.
너무 진하거나 연하지 않은 정직한 분홍색,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흰색의 동그라미,
자칫 조금만 벗어나도 촌스러움을 마구 풍길 수 있는 위험한 원피스.
하지만,딱 거기서 멈춰준다면 그리고 거기에 진주목걸이 하나 걸쳐준다면
어느 모임에서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코디가 될것임에 틀림없다.
유모차를 돌려 가게 주인에게 묻는다.
“저기요, 저기 분홍색 원피스 가격이 얼마예요?”
조금 뚱뚱한 체격에 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마치 디자이너의 포스를 풍기는 여주인은
나를 훌터보더니
“아..그거요? 6만 9천원이요. 근데 그거 어린사람한테 어울리는 건데...
좀 있으면 괜찮은 원피스 많이 들어오니까 그때 다시 오세요“
멍~ 마치 둔기로 얻어맞은 듯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그 원피스를 상상했던 건 10대 후반부터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내 나이를 잊고 있었구나. 그 여자 눈에는 아이를 끌고 화장도 안하고 부스스한 중년의
아줌마가 어울리지도 않는 원피스를 탐내는 걸로 보였겠지...
그래도 그렇지. 불과 4년전만 해도 나는 아가씨였고 저것보다 더한 원피스도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았는데.. 몇 번 입지도 않고 옷장속에 그대로 있는데...
이건 너무해..내 꿈에 대한 테러야..
집으로 오면서 너무 속이 상했다. 왜 그때 당당하게 되받아치지 못했을까?
“에이, 저게 뭐 어린 스타일이예요? 약간 광택도 나고 H형이라 딱 아줌마가
입으면 어울리겠구만“ 내지는
“나이 들수록 젊은 사람 옷을 입어야 한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죠.
장사하기 싫으신가봐요“ 이렇게 말할수도 있었건만..
말 한마디도 못하고 내 꿈과 현실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으니.
내일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옷을 입어보고야 말겠다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혹여 입다가
늘어난 뱃살에 걸려서 개망신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여 혼자서만 끙끙거린다.
내 아무리 발버둥쳐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구나
조금이라도 젊은 이때가 입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꿈의 원피스여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가?
인생에 있어 늦은 나이가 없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지.
난 지금 분홍색 땡땡이 원피스가 입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이 많다고 포기하라는 말에 오기가 생겨서 이러는 것일까?
문득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날개를 달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지금
‘할 수 없을 것이다’란 말에 갈등하며 주저하고 있는 나자신을 곰곰이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