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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 그러니까 당신 꼭 살아.......


BY *콜라* 2010-04-17

온라인 동호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쌍둥이 엄마. 

정작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그녀보다 그녀의 남편이 먼저였다.

 

가정과 직장, 안팎으로 올곧은 삶을 살아가던 대한민국 보통의 30대 부부로

결혼 수년만에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낳은 쌍둥이 아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마침 무슨 일로 쌍둥이 엄마와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데 연락이 되질 않더니

기침 때문에 진료하러 병원에 갔다가 잠시 입원 했노라는 전화가 와서

핑게김에 푹 쉬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쌍둥이 아빠였다.

정밀검사 결과를 해봐야 알지만 폐암이라는 1차 진단이 내려졌다는 뜻밖에 소식이었다.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한 달.

상관없는 이들에게 겨우 30일인 그 기간이 그 남편에겐 영겁의 세월로

나 또한 남편인 그에 비해서 적다고는 하지만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

두렵긴 마찬기지였지만 괜찮을 겁니다.위로하며 자위했던 기억이다.

 

재입원해 조직검사, 다시 심층검사로 입원 날짜가 늘어나면서 불안함이 마음을 짓누를 때마다

나보다 천배 만배 큰 두려움에 떨면서도, 병마와 맞설 용기를 다지며 간간이 절망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갈 그 남편을 생각했다.

 

모든 첨단 장비와 현대의술이 동원된 검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와 수술일자가 잡혔다.

수술을 집도할 이름 모를 의사와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며 쌍둥이 아빠의 전화 오기만 기다렸다 

 

지나가는 큰 차의 우르릉 대는 소음에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하루가 다 지날 무렵

전화 벨이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확인한 발신자 이름이 쌍둥이 아빠다. 

 

\'열어보니 손을 쓸 수 없어서 덮었다...\'

 

숨이 막혔다. 기적 외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남편은 쌍둥이 아들을 먼저 떠올리며 절망했을 테지만 

나는 그녀의 찬란한 서른 다섯살이 억울해 가슴이 미어졌다.

 

죽음은 아직 남의 이야기처럼 실감 나지 않는데, 그 남편은 아이를 갖기 위해 배란촉진제를 맞으며 아내가 마음고생, 몸 고생하면서 몹쓸 병을 얻은 게 아닌가 하는 자책과 회한으로 

그 또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야기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신의 경지에 도전하며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현대의학의 한계가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수술밖에 방법이 없는데 그 마지막 희망이 잘려나갔을 때 환자와 그 가족이 느낄 고통은 차라리 죽음보다 나을 게 없는 듯 보였다.   

 

아내의 치료에 도움 될 처방을 구한 날은 한껏 달뜬 목소리였다가

효험이 없다 싶으면 다시 절망하는 목소리로 바뀌며

순간 순간 인간적인 나약함에 흔들리면서도 쌍둥이 두 아들의 아버지로 의연함을 잃지 않던 그는

경황 중에도 아내를 살리겠다는 의지하나로 직장 근무를 병행하며 

세상 어딘가 있을 명약을 찾아 다니며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했다.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광주의 어느 산사에서 요양 중이던 쌍둥이 엄마를 만나고 돌아서던 날

혹시.... 이게 마지막이 아닌가....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며

인생의 덧없음과 무상함에 한동안 내 마음도 갈피를 잃었다.  

 

폐에 좋다는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에도 감격하는 쌍둥이 아빠의 전화가 오면

함께 기뻐하며 찾아 낸 의학정보를 분석하며 시간이 흘러 

나는 외국으로 왔다.

 

오진이었어....

그녀가 활짝 웃으며 \'짜잔\'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길 기원하며

외국에서도 늘 궁금하고 걱정되었지만 몇 년간 나는 전화를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는 쪽에 더 가깝다. 행여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 두려웠다.  

 

몇 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다이얼을 돌렸더니

뜻밖에(?)쌍둥이 엄마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수술할 시기도 지나 열었다가 덮은 말기의 폐암을 이기고

환하게 전화를 받는 그녀 목소리에 감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이고 쌍둥이 엄마 고마워.. 살아있어 준 것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우린 그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국제전화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그게 또 3년 전이다.

 

그런데 어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쌍둥이 아빠란 말에 다시 호흡이 멎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 일까.... 0.01초 단위로 수 많은 상상이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

감각의 더듬이를 날카롭게 세워 유추하는 가슴이 떨렸다. 

 

\"쌍둥이 엄마는요.....\"

\"건강합니다. 잘 지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암세포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진행도 되지 않은 채

하루에 세 번 홍삼을 마시고, 은물을 마시며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전화기를 받아 든 그녀에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단 말은 차마 못하고 반갑다고 했더니

늘 자기를 잊지 않고 사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더 고마워한다.  

 

그랬다. 워낙 착한 심성이 상대방의 보잘 것없는 친절과 작은 배려나 마음씀에 고마워하며

늘 감사하며 사는 삶, 그게 그녀의 치료제이고 보약이었으리라.

 

그 사이 쌍둥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사춘기 티가 물씬 난단다

내 마음엔 녀석들의 소식과 그녀가 건강하게 녀석들의 엄마로 살아 있어주는 것이

좋은 소식, 기쁜 소식, 행복한 소식 그리고 고마움일 뿐이다.

 

쌍둥이 엄마, 그러니까 당신 꼭 살아!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