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는 요리하는 아빠들의 모임, 바꾸어 말하면 요리하는 남편의 모임이 있다.
내가 이렇게 침 튀기며 글 머리를 열고 있는 건, ‘결혼 후 가사노동을 도와줄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콜라의 남편도 이 살생부(?)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들을 위해 지지고 볶으며 요리하는 모습….
이게 꿈이런가 하노라.
지난 주, 정기모임을 가기 위해 출발 직전 하늘이 컴컴해 지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까닥 하지 않고 남편들이 만든 요리를 뷔페로 먹을 수 있는
진기명기 모임에 날씨가 대수랴. 날개라도 돋힌 듯 차를 달려 도착했다.
자격은 부부가 원칙이지만 기러기 엄마가 많은 이곳의 특성상 아들과 참석한 사람도 있고
엄마나 아빠만 참석하기도 하지만 여자들은 오직 관람자라는 것.
서로의 집을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 날짜가 공지되면
남편들은 자기의 요리메뉴를 게시판에 올려 중복되는 메뉴가 없도록 조절하고
재료에서부터 양념,조리 도구까지 각자가 준비해서 모인다.
익숙하게 앞치마부터 꺼내 입은 남편들은, 주부 우리처럼 자녀들 소식과 안부를 물으며
양념을 정리하고, 사전 메뉴 정보 교환을 통해 불을 사용해야 하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는다.
넥타이를 풀지도 않은 채 앞치마를 두른 남편, 트레이닝 복 차림인 남편...
각양 각색의 앞치마를 입고 진지하게 요리에 임하는 모습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다. ㅋㅋㅋㅋ
\"아고~ 거기 소금 간 하믄 안.....돼.... 는데...... 어짜꼬… \"
\"기름은 쫌만 넣지... 느끼한데..... 포도씨유 한 방울 넣던가...\"
집에서 가족들에게 리허설을 겸한 1차 자녀들에게 평가회를 마치고 오지만
한식이 어디 레서피대로 넣는다고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그러니 언제 남편들 손에 밥 얻어먹으며 산 경험이 없는 한국 아줌마들이 그들을 믿을 수가 없어
이 마누라 저 마누라 번갈아 자기 남편에게 훈수를 두다가
결국 단체로 2층으로 쫒겨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 집 부부 침실까지 구경하며
본격적인 여자들만의 티 타임을 즐기고 있을 무렵, 아랫층 남편들이 부른다.
와우~
깐풍기, 해파리냉채, 돌솥 알 밥, 스테이크, 샐러드, 파인애플 볶음밥, 오향족발에 생선찜...
메뉴는 매월 달라지지만 우리에게 무엇을 먹느냐는 중요치 않다.
남편, 그들이 만들어 준다는 게 소중할 뿐.
마누라 앉혀 놓고 찬 물에 밥 한 술 말아주는 일도 쉽지 않은 남편들이 차린 식탁은
무엇을 올려도 근사하다. 신난다.
이런 아이디어 떠 올린 대장 파파를 업어주고 싶어 진다.
요리는 커녕 설거지 한 번 시키면 싱크대 앞에 의자 가져다 놓고 앉아서
온 주방을 물바다 만드는 거, 혹시 그거 자주 시킬까봐 작전 아니었을까.
처음, 남자가 무슨 요리는 요리냐고 펄쩍 뛰던 남편..
쉰 줄의 연장자들이 아내와 가족들을 위한 사랑의 표현으로 시작한 요리 모임 취지에 감동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벌써 다음 메뉴 걱정하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사실 남자들 메뉴 웃긴다.
레서피라고 할 것도 없는 것들을 마치 실험실 쥐 다루듯 재료 다듬어
계량 스푼에 주부저울 측정해 가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저렇게 쉬운 걸 못하나 싶어 아이큐도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아내 마음에 늘 부담주는 남편의 식사 준비하는 우리가 하루 세 끼, 한 달에 90끼라고 가정하면
기껏 한 달에 한 끼 얻어 먹고도 이리 희희낙낙하는 내 아이큐가 더 낮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