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숙제 허라고 허면 허리도 아프고 머리가 아퍼야.\"
\"아따, 그렁께 천천히 쪼끔씩만 쓰시고 쉬셔요. 헤헤.\"
\"나, 이따가 쓸란다. 너는 며느리가 시어미를 시집살이 시키냐?\"
하시면서도 어머님은 웃으시며 볼펜을 놓고 누워 버리셨다.
쉬었다가 하시겠다고.
그러는 할머니의 엄살과 달래며 재촉하는 나를 보며
우리 딸과 아들은 재미있어 했다.
구정 명절 일주일 전이었다.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님을 집으로 모시고 왔다.
할 일이 없으신 어머님께 숫자와 한글을 쓰시게 했다.
이왕 쓰시는 거 8남매의 자녀들에게 개인별로 편지를
써 남기게 하였다.
훗날 모두 어머님을 기억하며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다행히 팔십 넷이 되신 어머님이 쉬운 글자는 읽으실 수 있었다.
그래서 어머님께 죄송하지만 양해를 구했다.
제가 어머님의 속마음으로 편지글을 쓰겠다고.
그래서 어머님이 말씀 못했던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라는 말을
넣어서 각자에게 맞는 상황의 아쉬움과 부탁과 덕담을 썼다.
어머님께 내용을 읽어드리고 어머님의 마음과 일치 되는가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글씨를 크게 확대하여 프린트해서 드렸다.
그 내용을 보시며 한자씩 A4용지에 볼펜으로 옮겨 쓰시게 했다.
그것이 숙제였다. 하루 두사람 것 옮겨 쓰시는 게.
어머님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쓰시다가 한숨도 쉬셨고.
때로는 두 눈이 촉촉 해질 때도 있었다.
일곱 번째이며 셋째 딸의 차례를 쓰시도록 숙제를 드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해서 잘 쓰시는지 보러 갔더니
어머님이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싸고 계셨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니가 숙제 허라고 해서 머리가 아퍼야.\"
하셔서 정말인 줄 알고 진통제를 드렸다. 그리고
\"오늘은 쓰지 마시고 텔레비전 보시며 쉬셔요.\"
했더니
\"응.\"
그러시더니만 5분도 안되어서 일어서셔서 웃으시며
\"나, 머 할 일 없냐? 걸레나 주라 머리끄락이나 줍게.\"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꾀병에 우린 모두 웃겨서 웃어 버렸다.
결국 여덟 번째 막둥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못 다 쓰시고
명절을 맞이 했다.
갑자기 시누이 내외가 명절 전날 내려와 내가 더 바빠지고
설날 점심먹고 시골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 버려서
끝내 막둥이에게의 편지글은 못 쓰셨다.
막둥이 삼촌이 알면 엄청 서운해 할 것이다.
다음 기회를 잡아 다시 어머님을 모시고 오는 날 숙제를 내어
여덟 번째의 편지글을 꼭 마칠 수 있으시게 해야겠다.
이젠 그것이 나의 숙제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