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50대부터 급격한 여러가지 변화를 경험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리적 물리적 정신적 현상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갱년기 정신적 붕괴현상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던 것 같다
허무함을 채워보기 위한 나의 행각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다
새벽기도에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나와서는
차의 시동을 걸으면 그냥 마냥 지구끝까지 달려가고 싶다
자식들 키우느라 몰두해서 괴로움도 힘겨움도 모른채 남들이 하는대로 흉내내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쫒기다가 어느날 갑자기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펑펑 울어버리고 싶을만큼 답답해졌다
매일 매일 탈출하고 싶으나 탈출할 수 없는 창살없는 감옥에라도 갇혀버린 것 처럼
방황했고 숨가쁘게 삶을 옥조이는 어떤 힘에 눌렸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지나놓고 나니 아무리 허전함을 채우려고 가꾸고 돌아다니고
웃고 울어봐도 텅빈 가슴을 채워줄 것이 없었다
파스칼의 빵세에서 말한것처럼 \"사람에게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공백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드디어 내게서 허구를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과욕으로 옷을 맞춰 입기도 했는데 절제없이 옷장에 둔 옷들이 보기 싫었다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오늘이라도 죽으면 옷장에 있는 죽은 이의 옷들을 치우며
사람들이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옷두 많네 이 옷을 다 못입고 죽어서 억울해 어쩌나? \"
내가 죽은 후 옷장을 열어보고
\" 참 검소하게 살았군!\" 이라는 칭찬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리고는 옷을 거의 해 입지 않았다
있는 옷으로 버티며 깨끗하게 씻고 정결하게 입으면 그만이라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노쇄에 직면하여 처절하게 소멸해가는 젊음을 수용할수 밖에 없었다
원래 외모를 별로 사랑하지 못했던 컴플렉스가 심한 사람이었던 나는
살아있는 하회탈 같은 내 얼굴에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야말로 죽으면 그날로 화장될 몸인데 무엇하러 미리 화장을 하느라 분주하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호박이요! \" 하고
사는게 더 정직하질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화장을 안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어디 아프냐.고 묻더니
얼마간 지나니까 \'보기 싫다고 제발 화장하고 가꾸라\'고들 말한다
되도록 거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던 남편까지
\'나이들수록 가꾸는게 좋지 않느냐\'고 충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과 내면의 정서적 심지는 강하게 \'화장은 이제 끝!\' 을 외치고 있다
그렇게 한 3년을 지다나보니 화장을 안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만 선택하게 되었다
화장하고 갖춰 입고 나가 만나야만 하는 자리는 거절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내게 옷 잘 입고 화장해야 만나준다는 사람들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살기로 점점 마음을 굳혀가고 있다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내가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건만
환갑을 넘은 나이에 머리는 생머리 얼굴은 맨 얼굴 옷은 늘 입던 그 옷뿐
영락없이 몰락해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내면의 이 자유로움을 무엇으로 설명하리?
누가 나처럼 즐겁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내 삶은 아주 단조로워졌고
내 정신력은 훨씬 강해졌다
친구들은 창피하다고 나를 안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농담반 진담일 것이다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나랑 다니는게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느껴지면 나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거북한 존재로 동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벽기도 가는데 발이 시려서 옛날 할머니들이 신고 다니시던
허접한 털신을 구했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권사님 한분이 일부러 찾아서
사다 주었다 그 신을 신은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놀려대었다
\'그런 신이 지금 있느냐\'는둥 \'그걸 신으니 영락없이 할머니\'라는둥
나야 정말 손녀딸 셋이나 둔 할머니인데 할머니 신이 어울리지 않는가?
이신을 신고 어딘들 못갈까 미국도 갈 수 있고 어디든 갈 예정이다
남의 이목도 생각해야지 나만 좋으면 그만이냐고
\'그게 바로 이기주의가 아닌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이기주의가 누구를 괴롭힌다고 생각되면
누군가를 나는 떠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천국에 갈때는 외로운 길이요
내 노년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만 남을것이니
내 외모가 쓸만해서 곁에 있다가 외모가 초라해 지니
부끄러워 상대할 수 없다는 사람들 쯤이야 일찍 포기하는게
훨씬 나증에 충격을 더는 일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천국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마다 천국 가는 길을 예비하는 자세와 방법과 태도가 다를 것이다
늙어지고 추해질수록 더욱 가꾸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남에게 아름다움을 서비스 하는 것도 좋은 예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내 외모때문에 서비스 받는다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청결에 있어서는 상당히 노력하는 편이다
늘 깨끗이 닦고 속옷을 깔끔하게 자주 갈아 입는다
겉옷도 세탁을 자주해서 옷이 더럽거나 추하지 않게 노력한다
다만 유행따라 사치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고
외모지상주의에 도전한다는 것 뿐이다.
아직도 만부득이 화장하고 나갈 곳도 있긴 하지만
점점 그런곳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사는 비결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다
나는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게 주님나라에 갈 준비를 차분히 하고 있다
아직도 붙잡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요원하지만 그러나 기쁘게 나눠주며
나를 비우고 또 비우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가르쳐 주는 교훈에 잘 순응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