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무례하고
무례하면 용감할 수 있다.
명언 중에 명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사 하와를 만드셨으나
남편 밥 해결사로 만드신 건 아닐진대
국 없는 아침 밥 먹지 않는 한국 남편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분들이라면
헛! 돌 던지는 남정네. 게 멈춰라.
이국 땅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 식사......
식사는 커녕 커피에 빵 한 조각의 허술한 브런치조차 건너 뛴 샐러리맨들이
허기진 눈빛으로 한바탕 쓸고 간 레스토랑의 오후는
신문을 읽거나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다소 느긋하게 티 타임을 겸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 사이로
햇살조차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3시..
드문 드문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던 고객들 사이로
서 너 명이 줄을 섰다.
한 남자...
추가 ... 추가... 추가.... 옵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은근 짜증이 난다.
물 한 모금도 공짜가 없는 이 나라에서 추가 옵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추가 요금이 부가 되고, 고로 내게는 매출로 직결되는 바
그저 감지덕지 해야 할 일.
그러나 물려 줄 새끼도 없고, 재주 없어 애인도 없는 아줌마에겐
나른함이 온 몸을 기절시키는 오후의 이런 손님...
귀찮음이 더 큰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자고로 식성 까탈스런 사람들이 성격도 까칠한 건 세계공통인 듯.
우리 집 메뉴는 모든 재료와 소스가 본사로부터 공급되는 패스푸드지만
채식주의와 웰빙족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라는 특성때문에
쿠킹 레서피가 매우 까다롭고, 고객들의 취향도 까칠해
소금 한 톨이라도 본인 의향 묻지 않고 넣었다간
바로 본사 홈페이지 고객불만 게시판에 내 이름이 드높이 걸린다.
그래서 컵라면 팔다가 발각되어 한국인의 가맹계약이 취소된 \'팀 호튼\' 커피전문점과 함께
계량화 되지 않은 \'손 맛\'으로 저울 삼는 한국인들에게
최근부터 가맹점을 주지 않는 캐나다 회사 가운데 한 곳이다.
상황이 이러니 내 자본으로 장사하면서도 괴팍한 홀 시어머니 모시는 외며느리가 따로 없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레서피의 정량을 초과한다던가
빼달라는 재료를 그대로 넣게 되면 여지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고
다시 만드는 번거로움과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때문에
음식을 만들 땐 가능한 딴 생각을 잠시 접어야 한다.
이 남자....
특히 요구 사항이 많아 집중을 해야 하는 까닭에 달달 외운 레서피지만 곁눈질 하는데
앉아 있던 여자들이 갑자기 그 남자에게 몰려드는 게 보였다.
저 여자들과 동행이었나?
무심히 눈길을 거두려는 순간
꺄악! 꺄악!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의 표정이 장난이 아니다.
\"쟤 머냐? 왜 저래??\"
직원에게 눈 짓을 보냈더니 그 친구들도 사태파악이 되질 않아 뜨악한 표정.
전체 줄거리 대강 정리로 보는 그림은 이랬다.
남자를 중심으로 앞으로 뒤로 옆으로 돌아치며
팔짱을 낀 혹은 팔로 어깨를 감싸안은, 혹은 양쪽에서 얼굴을 맞댄 채 포즈를 취하는 여자들...
남자는 몇 개의 카메라가 동시다발로 찍어대는 상황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바꿔가며 멀쩡한(?)표정이다.
호기심 천국 콜라...
참을 수가 없다.
완성된 음식을 받으려고 내 앞으로 온 남자
서양인 치고 그리 크지 않은 키, 얼굴....다시 봐도 평범 그 이상이 아니다.
\"여자들이 왜 너랑 사진 찍으려고 난리야? 너 뭐하는 사람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남자,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뮤지션(가수).....\"
\"가수? 무슨 노래 불렀어? 이름이 뭐야?\"
뭐라 뭐라 하는데 통 모르겠다.
\"여기다 써 봐\"
손님들 비자 카드 사인용지를 뒤집어 내밀었다.
\'마이클 부버\'
아하! 마이클 부버~.
아니... 마이클 부브러...
그 남자가 내 발음을 고쳐주고 또 보자며 손을 흔들며 나갔다.
여자들은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황홀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날
동계 올림픽으로 바빠진 일손을 돕겠다며 본사에서 매니저가 왔다.
\"어제 우리 집에 어떤 뮤지션이 왔었는데 여자들이 사진 찍고 난리던데,무슨 노래 했는 지 혹시 알아?\"
\"누군데?\"
\"마이클 부버인가 부벌인가 그렇대나?\"
매니저...
입을 딱 벌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래서... 그래서... 너도 사진 찍었어?
아니~ 여자들이 찍길래 내가 이름만 써달라고 했지
그 사인 종이는 어딨어?
쓰레기 통에 버렸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흥분의 도가니 탕이 되어 말을 잇지 못한다.
남자가 남자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는 걸 보니 참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급히 띠띠띠띠 전화를 걸더니 현재 상황을 전한 뒤
영문도 모른 채 멍하게 바라보는 한국인 우리에게
자신의 아이폰에 저장된 사진 하나를 보여 준다.
\"마이클 부벌.... 캐나다 톱 가수야... 넌 캐네디언이면서 캐나다 문화에도 관심을 좀 가져..\"
언젠가 또 유명한 하키 선수가 자기가 있을 때 우리 가게에 와서 말 해줘도 내가 \'몰라\' 하더라나?
디랄... 남자라면 내 남편 속 하나 알기도 벅차다.
이번 2010년 동계 올림픽 개막전 무대에서 노래하던 가수며, 미주 투어에선 여자들이 쓰러져 죽는단다.
그러니까 매니저 말은 종이에 써 준 친필 사인도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고
직접 만났지만
쓰러지지도 죽지도 않은 난 여자도 아니란 말?
그리곤 차로 달려가더니 CD를 챙겨 왔다.
무지 노래 잘하고, 그래서 무지 인기 많고 따라서 무지 유명하다는 캐나다 톱 가수...
그가 그 바쁜 스케쥴 속에서도 우리 회사 음식을 좋아해서 다운타운점 단골이었는데
지난 여름 문을 닫아 우리 매장으로 온다는 것.
그러고보니 사진 속의 남자 얼굴이 조금 낯이 익다.
두 어달에 한 번쯤? 왔었던 듯 하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뭐 조용필이 왔는데 \'너 뭐하는 남자야?\" 물어보고
이름까지 써 달라고 해서 이름만 확인하고 친필 사인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는.....
매니저가 두고 간 CD 몇 장을 한꺼번에 트랙에 걸어 놓고
어제, 오늘 종일 들어보니 정말 노래를 잘 한다.
역시 최고는 무언가 .... 다른 구석이 있긴 하다.
다시 오면 꼭 취조를 해야지 .....
한국 아줌마 스타일로..
동생~ 내가 누나 같아서 물어 보는 거니까 오해는 말고...
나이는 몇 살이야? 고향은? 어느 학교 졸업했어? 양친은 살아계시구? 결혼은? 아파트는 몇 평에 살아? 학교 다닐 때 노래한다고 부모 속 많이 썩혔지? 그래도 한 우물 파서 성공했으니 됐다 야..
아, 마이클 ....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 너를 인정하기로 했다.
아컴에서 니 인기가 내 인기를 잡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만
노래 하나는 정말 잘 한다는 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