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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까 혜선이


BY 봉자 2009-11-10

\"히~힝!\"

혜선이는 여섯 살 여자아이,

봉자네 가게에 들어오면 오백원을 먼저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서야  과자를 고른다. 그리고는

은방울처럼 터뜨리는 저 웃음 한방으로 봉자와 계산이 끝난다.

 

사회적 약속이자 음성기호인 말소리가 아닌

혜선이의 저 웃음 소리에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의미가 담겨있다.

 

\'나 돈 있어요.\'

\'골랐어요.\'

\'계산해줘요.\'.......까지.

 

 혜선이와 거래를 트기 시작한  오개월여 동안,

구멍가게 아줌마의 통밥으로 해석한 유의미한 거래 내용인데

 

봉자 또한 과자값을 계산해 거스름 돈을 내주는 것은 기본이요,

액수에 합당한 과자를 고를 때 까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주는 것은 옵션에 해당한다. 

요즘은 어딜가나 옵션이 대세다.(ㅜ.ㅜ)

 

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서던

혜선이를 처음 봤을 때, 봉자는 짜장 소녀 뿌까를 떠올렸다.

 

까무잡잡한 피부, 통통하고 둥근 얼굴에 눈썹이 유난히 짙은 혜선이는

괴력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나면 홀로 \'히~힝\' 하고 웃는,

생김도 표정도 만화 속 캐릭터 뿌까와 사정없이 닮았다.

 

그런 혜선이가 이튿날 부터 오백원, 천원을 손에 쥐고 혼자 가게에 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마다 가진 돈 액수보다 훨씬 비싼 과자를 골라 봉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가야, 이 돈으로는 이 과자 못사거덩. 다른 걸로 골라와.\"

 

하지만 혜선이는 계속 가진 돈과 맞지 않는 비싼 과자만 골라 왔다.

 

 \"오잉? 이것도 안돼, 이것도, 이것도, ......\"

 

간혹 물건 값과 액수를 못 맞추는 어린 아이와

지루한 실랑이를 벌일 때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원하는 게 아니면 곧바로 울거나 생떼를 부리는 아이에게는

평소에 점잖던 봉자도 얼렀다 달랬다 요령껏 쌩쑈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봉자는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새댁들에게 외치고 싶다.

\'제발, 손가락 곱아 열은 헤아릴 정도가 되면 보내시오들~!!\'

 

그런데 혜선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말 없이 내가 골라주는 것을 쉽게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그 놈 참 순둥이구만....\' 싶다가도

점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봉자가 어른이라서,

덩치 크고 분별력이 더 있다는 이유로

값만 맞으면 적당히 과자를 골라주는 이 짓은

결국,

코흘리개 돈을 도모해야는 비루한 구멍가게 주인 행세를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봉자의 미안함이 진정성으로 바뀌지 않았음에도

어김없이 혜선이는 매일 가게에 들렀고....

 

그러던 어느 날, 어스름 저녁 쯤,

가게 뒤 골목에서 누군가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혜선이 외할머니집 앞이었다.

봉자는 화장실 창을 통해 무슨 일이 났는 지 붕어눈을 하고 내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경찰차가 한 대가 와 있었고, 혜선이 외할머니가

마주서 있는 경찰관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아, 지 어미가 데리고 있는 것이 무슨 문제라고 이 난리를 쳐, 치기를....!\"

억울해 하는 말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우렁우렁 공중에 퍼져나갈 뿐 경찰들은 애써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할머니는 경찰차에 태워져 관할 경찰서로 출두하게 되었다.

 

혜선이 엄마는 혜선이가 오기 전 부터 혜선이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봉자네 가게는 아주 가끔 왔기 때문에 개인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혜선이 아빠와 진작 헤어졌지만

아이 양육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어른들끼리 옥신각신 하던 상태였단다.

 

그래서 혜선이는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살고 있었는 데,

외할머니가 혜선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통보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온 바람에 아빠 쪽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어린 혜선이, 엄마가 보고싶어 자주 운다는 소식에,

법도 무엇도 모르는 늙은 외할머니가 측은한 생각에

무작정 외손녀를 데려와 같이 살 궁리를 했던 모양이었다.

 

물리적인 수단으로 모녀간을 떼어 놓는 일이나,

자식을 두고 한치 양보 없는 어른들의 이기심 속에

어린 혜선이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

 

아이들 맘이 아무렇게나 던져도 좋을 주사위가 아닐 진대

그동안 아무거나 쥐어줘도 말 없이 웃기만 하던 뿌까 혜선이를

봉자 또한 만만하게 대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 동안 혜선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보름 후,

마침내 혜선이가 봉자네 가게에 나타났을 때,

예의 \'히힝\' 웃고는 가만히 기다리는 혜선이를 잡고서

 

\"혜선아 아줌마가 골라주는 거 말고 혜선이가 골라봐\" 하였더니

혜선이 표정과 눈빛이 박꽃처럼 환하게 피는 걸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겨우 오백원 짜리 과자 하나 선택하는 것에 

저렇게 행복해 하는 데, 그동안 봉자같은 어른들은

그 마음을 몰라줬으니......

모르는 게 아니라

어른이란 권력으로 모른 척, 애써 무시한 게 아닐까.

 

이제 혜선이는 웃음 보다 먼저 \'짠\'하고 뛰어들어온다.

어떨 때는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올 때도 있다.

 

하지만 혜선이....

여전히 지닌 돈과 과자값이 상응해야하는 이유를

모르는 채, 오늘도 봉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는.....ㅎ

 

열 번 물어 한 번 대답이 나올까 말까하고

고개를 외로 꼬은 채, 수줍은듯 웃기만 하는,

 

오동통 소녀, 귀여운 뿌까 혜선이에게

봉자 아줌마가 바라는 게 하나 있단다.,

 

\'짜장소녀 뿌까\'처럼 좋아하는 소년 \'가루\'를 위해

악당을 물리치고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있는 소녀로 커길 진정으로 바랄게.

 

그리고 지금처럼

외할머니, 엄마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